이정도 배우를 모아서 이런 허술한 작품을
7명의 비서가 힘을 모아 불의한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기본적인 구성이나 진행이 워낙 일반적인터라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괜찮게 모아놓기는 했는데, 스토리나 연출이 밋밋하고 구멍이 많은 드라마다. 보기에 힘들정도로 나쁜 드라마는 아니지만 매우 재미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웰메이드라 칭하기도 어렵다.
<스포가 매우 많으니 읽는데 주의를 요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의 재현
이 드라마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화라 하겠다. 이를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도 유명한 영화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 잭 스나이더도 크게 영향을 받은 영화이다. 사람들을 모아 정의를 위해 싸우는 포맷은 이후 널리 사용되는 포맷이 되었다.
7인의 비서에서는 현대에 맞게 우선 성별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었다. 영주를 모시던 사무라이의 역할을 현대는 기업주를 모시는 비서들로 바꾸는 설정이다. 과거 사무라이의 무력은 현대 여성의 작전으로 대체된다. 히로세 아리스의 역할은 미후네 토시로가 떠오르게 하고, 에구치 요스케의 케이타로 반 역할은 시무라 타카시의 시마다 칸베에 역과 매칭이 된다. 아라이 나나오의 경찰 역할은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인물로서 미야구치 세이지의 큐조 역과 매칭이 된다.
느슨한 구성과 스토리
1화는 잘 만들었다. 탄탄하게 구성이 되었고 긴장감이나 장면들의 찰진 맛이 있었다. 문제는 2화부터이다. 2화부터는 탄탄한 줄이 축 늘어지는듯한 느슨함을 보인다. 닥터X의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단화를 만드는데는 재주가 있는데 긴 스토리와 복잡한 구성을 짜고 연출하는데 있어서는 빈틈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8화 밖에 되지 않아서 펼쳐놓은 스토리나 캐릭터를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급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시즌이 계속 이어지면 보완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기대하기는 좀 어려워보인다. 이미 이번 시즌에서도 펼쳐놓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준이 나락이었기 때문이다. 한 화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짜임새있게 진행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전개가 되고 처리가 된다.
빈약한 캐릭터성
보통 이렇게 여러명의 주인공들을 배치할 때는 각 캐릭터마다 스토리를 구성하기 마련이다. 스토리를 보여주기는 하는데 이게 영 보여주다마는듯한 어설픈 스토리로 마감이 잘 되지 않았다.
메인 주인공인 키무라 후미노의 치요 역의 경우 작중에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듯 보이지만 정작 그 역할이 돋보이지가 않으며, 개인적인 스토리도 너무나도 빈약하다. 실종된 오빠를 찾는 미스테리가 처음부터 등장해서 끝까지 가는데, 오빠를 찾는 과정이나 만나는 씬이나 허전하기 그지없다. 치요가 전체적인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치요가 작전을 구상하거나 지휘하는 모습에 대한 연출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치요의 역할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오빠도 그 오랜 시간 내무대신의 기사로 일해왔는데 결국 아무 역할도 못하고, 그저 치요의 오빠로 등장하는 것으로 소모되고 만다. 오빠의 원한 같은 부분도 너무나도 빈약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오빠와 치요의 원한을 해결하려는 동력이 없어서 드라마의 힘이 빠지는 부분이다.
심은경은 차라리 다른 인물들보다 비중이 있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배신을 하는듯한 모습에 대한 묘사나 그것도 이중 스파이였다는 식의 연출이 너무나도 허술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내무대신의 비서로 들어가서는 그걸로 정보를 캐거나 하는 역할은 없고, 굳이 그렇게 비서로 들어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컴퓨터 해킹 역할만 계속 하고 있다.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은 심은경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아까울 정도로 쓱삭하고 지나가 버린다. 아버지의 눈물 연기는 엑스트라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역할의 배우도 연기에 집중을 못해서 눈동자가 방황을 하고 있다.
기자의 경우는 터무니가 없는데, 1인 다역을 하는듯이 그냥 필요한 부분에서 자기 역할만 수행하고 일관적인 캐릭터성이 전혀 없다. 보통 기자가 등장하면 끝까지 늘어지면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하는데 기자가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물리적 해결사 노릇을 하는 양아치로 변신한다.
닥터X와의 비교
닥터X는 사실 스토리나 구성 중심의 드라마가 아니라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이다. 닥터X라는 중심 캐릭터가 워낙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요네쿠라 료코가 워낙 캐릭터를 강하고 분명하게 잡아주어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어 준다. 스토리는 사실 의료 드라마인만큼 반복적인 구성에 단순한 스토리에 파편적인 디테일들이 추가되는 정도이다. 드라마 전반을 꿰뚫는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고, 그 스토리 또한 내러티브성보다는 캐릭터성이 훨씬 강조되는 드라마이다. 거기에 코믹물이라 개연성도 별로 의지하지 않는다.
7인의 비서는 닥터X에 비해서 훨씬 진지한 톤을 유지한다. 물론 중간 중간 개그적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그 개그적 요소마저도 전체적인 진지한 톤에 녹아져버린다. 이런 진지한 톤에서 개연성의 부재는 매우 심각한 불편함을 주기 마련이다.
닥터X가 가지는 기본적인 구조와 구성 속에서 일본 조직 사회에서의 부조리를 일본 특유의 디테일한 리얼리즘으로 보여주었지만, 7인의 비서에서는 굵직한 국가적 부조리를 보여주면서도 그 처리에 있어서 화끈한 방법이나 연출이 없어서 뭔가 엇나가는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국가적 부조리나 큰 부정을 처리하는 연출에 있어서는 한국의 굵직한 연출과 진행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와 연기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한 정도를 보였다. 사실 드라마의 진행이 그렇게 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매우 뛰어난 연기를 보여줄만한 씬 자체가 없다고 본다. 다만 키무라 후미노는 이번 역할에서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단아한 표정이나 의상 등이 키무라 후미노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약간 붙은 볼살로 인한 얼굴형도 역할의 진중함에 도움이 되었고, 감정적 과잉 없는 절제된 연기 또한 자신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히로세 아리스는 딱 본인의 스타일 그대로를 보여주어서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다만 어찌보면 메인 주인공일수도 있는 역할이었는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심은경은 허탈할 뿐이다. 심은경의 연기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고, 전체적인 캐릭터성이 통일되지 않고 진행되면서 깨져나가는 캐릭터성에 심은경도 제대로 캐릭터를 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일본 캐릭터들의 그 특유의 속성에 적응을 하지 못해보이기도 하다. 정극적인 연기가 장점이라 그런 부분들에서는 순간 돋보이나 전체적으로는 연기가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