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가족으로 보여주는 권력과 언어
정치 비판 블랙 코미디
간단히 보면 세상은 위험하니 가족을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그린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제에 매우 극단적인 설정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우화로 본다면 정치가 위험을 피하기 위한다는 구실로 얼마나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벌이는가를 비꼬는 패러디로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가 북한이라는 위험을 상정하고 그 쪽에 대한 일방적인 단절을 통해 불합리하고도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이 떠오를 수도 있는 영화다. 이런 해석이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영화이고, 이런 해석 하에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다른 해석을 말해보고자 한다.
송곳니의 상징
감독이 제목을 송곳니로 했고 송곳니를 뽑음으로 가족사회에서 벗어나 일반사회로 나간다는 설정으로 봐서는 송곳니는 동물의 흔적으로 상징하는듯하다. 즉 송곳니가 있는 영화 내에서의 가족사회는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곳이고 송곳니를 빼는 것은 인간이 드디어 동물적 존재성을 버리고 인간으로 이성과 윤리를 획득해가는 것으로 상징한듯 하다.
단독자와 세계와의 관계
고민의 지점은 단독자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단독자가 세계의 규칙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규칙들을 창조하며 살아갈 때 세계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모두가 자신만의 규칙대로 살아간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들이었다. 이 영화는 단독자가 세계와 단절하여 자신만의 규칙 세계를 만들어갈 때의 희안한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다. 단독자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았고, 그러한 세계와 단절된 단독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런 내용이 영화로 나온 것 같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계의 규정들과 규범들을 거부하는 단독자가 자신이 창조한 규칙과 규범대로 살 때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창조적 단독자의 삶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극한까지의 상상을 하지 않은 탓이다.
단독자를 한 명으로 구성하게 되는 경우 이미지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이 대표적인 경우일텐데, 그런 경우 무인도에서의 생존 문제가 우선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단절을 개인을 넘어서 세계와 단절된 가족으로 그린다. 어쩌면 한 단독자 안에 구성되어 있는 세계를 가족으로 나타낸 것일지 모르겠다.
독자적인 언어의 창조
시작은 독립되는 언어부터 보여준다. 언어는 가장 극명한 세계의 체계에 대한 상징이자 표상이다. 시작부터 이 영화의 주제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다른 언어를 창조하여 쓰고 있는 가족이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이란 노래를 틀고는 가사를 아버지가 자기맘대로 번역해서 말한다. 되도 않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자면 매우 코미디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세계에서 독립해서 창조되는 단독자의 모습은 비합리적이고 모순되고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언어를 창조하는 것은 아버지가 독점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이름 조차 없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주체가 되지 못함을 상징한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언어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브루스와 등이란 이름을 갖고자 한다. 브루스는 드디어 자신이 이성적 언어적 주체로 서고자 하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을 규정하는 자가 곧 권력을 장악하는 자이다
외부와의 접촉의 독점과 이성의 거세
아버지는 유일하게 세계와 가족 세계를 오가는 인간이다. 외부 세계에 접하는 아버지라는 이성적 존재와 그것이 규정하는 것에 그대로 따르는 가족들과 같은 내부 존재들이다. 이것은 이성에 대한 우리들의 과거 생각들을 보여준다. 이성은 현실 세계를 넘어서 이데아적 진리의 세계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독점적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지배의 상징은 바로 이성의 지배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성이 거세된 가족들은 단순하게 이성을 따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본능적 욕망을 보인다. 닫힌 가족세계 내에서만 존재한다면 가족 간에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의 삶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것은 섹스, 식사 그리고 폭력이다. 아무리 세계와 단절되고 창조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요소다. 그렇게 인간 본연의 본능인 성욕과 식욕 등은 유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덧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