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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가원 Aug 04. 2024

자아 성찰의 시간

소문의 원인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지만, 한가해진 시간의 시작으로 인해 직원들은 관리자들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소규모로 모여 일상의 지루함을 한순간에 날려주는 이 재미난 사건을 쑥덕거리며 즐기기 시작했다. 짐작하고 있던 이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듯 소문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하며 이들의 관계성을 입으로 퍼 날랐으며, 이 직장 신파극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들을 반짝거리며 후속작을 기대했다. 훌팩은 둘 다에 해당했다.     


“ 왜 하필! 제일 재미있을 땐데 안타깝네! ” 훌팩이 즐겁다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이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 다 들려요! ” 시미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이 듣기라도 할까 조용히 속삭였다.


“ 들으라고 말하는 거야.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주변 사람 신경 안 쓰는데 구경밖에 하지 않은 우리가 조심할 필요는 없지 ” 훌팩은 미소를 띠면서 대답했지만, 시미나의 불편함을 신경 써서인지 목소리를 조금 줄여줬다.


“ 시미나 씨는 사람이 너무 좋은 게 문제야. 그렇게 살면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아? ” 뜬금없는 훌팩의 이야기에 시미나는 잠시 대꾸할 타이밍을 놓치고 침묵했다.     


“ 시미나 씨는 자기 자신한테 너무 엄격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 그런데 왜 타인한테는 또 관대한지 모르겠네. ”


“ 제가 어딜 봐서요? ”


“ 어디긴, 지금도 봐! 모런 하소연 다 들어줬지, 나프니아가 행패 부리는 거 다 받아줬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소음 만드는 데도 가만히 있고, 관리자들한테 이야기 안 했지? ”


“ 어, 그건 그냥 말하는데 귀찮아서......” 시미나는 이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고 살지 않냐고 생각하며 부정했지만 훌팩은 받아주지 않았다.


“ 오늘 일만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관리자들이 일정 문제 있으면 시미나 씨한테 제일 먼저 일정 변동 협의 이야기할걸. 자기는 한번 스케줄 고정하면 잘 바꾸지도 않잖아. 웬만하면 다 바꿔주고, 성실하고. 저번에 수당 계산 착오 관련도 시미나씨가 경영지원팀 통화해서 싸우고 해결한 거 다 알고 있어. 팀장이 자기가 돈 문제 관련으로 말하기 불편하다고 직원들한테 직접 전화하라고 떠넘긴 거잖아. 그러고 해결되니까 혜택은 다 같이 적용되고. 불편한 점 관련 이의제기도 그래, 다른 사람들은 저것들 연애한다고 난리 치고 있을 때 벌써 몇 번씩이나 항의했어. 관리자들은 하도 나프니아 관련 항의가 많이 들어와서 불러서 혼내는 것도 포기한 거 같더라. 아주 제 맘대로야! 나도 여러 번 항의했어! 메신저 있는데 가서 이야기할 필요 없잖아. ”


“ 다들 그러고 살지 않아요? 나만 귀찮은 건가? 남의 일이잖아요 ” 시미나의 소심한 항의에 훌팩의 어이없다는 눈초리가 날아왔다.


“ 무슨 소리야? 여기만큼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어디 있다고? 나한테 피해 주면 내 일이지! 나만 해도 이번 달에 일정을 몇 번 바꿨는지 알아? 저번에 보니까 안셀라네도 개인적인 일 있다고 2주 가까이 연차를 쪼개서 반차로 쓰던데, 난 안셀라네 그만둔 줄 알았잖아 바쁜 시기에 하도 안 나와서. 미리드는 또 어떻고, 직원들 일정 관리 때문에 지난달 휴가 승인 안 된다고 조정하자고 했더니 관리자랑 싸우고 난리였잖아. 자기 권리인데 왜 안 되느냐고, 고용 관리청에 신고하겠다고. 귀찮아서 외면하려면 다 외면해야지 중요한 건 왜 같이 해결해 줘? 스케줄 조정은 왜 해주고? 여기는 고객도 직원도 자기 욕구대로 사는 덴데? 입으로는 귀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제일 귀찮은 건 다 해준다니까. ” 훌팩은 오랫동안 생각해 둔 이야기인 듯 숨도 쉬지 않고 할 말을 쏟아냈다.      


“ 시미나 씨 마음은 피곤하지 않을까? 선택적으로 귀찮은데? 귀찮은 게 성격이면 일관성 있게 귀찮아야지! 본인 마음은 신경 안 쓰고 내버려 두면 그건 누가 달래줘? 내 마음인데 내가 알아줘야지! ” 훌팩의 잔소리를 들으며 시미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 내 마음은 나한테 외면당한 걸까? ’ 시미나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평소에 보기 힘든 큰 사건으로 시작된 사람들의 소소한 일탈과 훌팩의 지적으로 생긴 깊어지려는 시미나의 생각은, 새로 들어온 전화로 인해 끊어졌다. 시미나는 별거 아닌 전화를 종료하고 대기를 하려는데 사방에서 쪽지가 날아오고 단체 메신저 방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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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라는 데요?

] 반말하지 말라고 하고 어떤 부분 요구하는지 명확하게 물어보세요.

) 대꾸하지 마세요

] 본인확인 안 되면 진행 안 된다고 하세요.


전쟁처럼 메시지들이 갱신되는데 그 와중에 중간중간에는


> 술에 취한 사람이라서 그래요

] 개선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고 정중하게만

) 이전 상담 무시하고 본인 것만

] 본인 확인되면 이름 확인 가능하다고

] 녹취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너그러이 양해 부탁

) 빠르게 전달하겠다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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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게 글들이 순식간에 밀려 올라가고 정신없는 순간들이 지나갔다. 시작이 어떤 문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한 고객은, 업무시간 내에 일어난 상담에서 불만이 있었는지 영업시간에 다시 문의하라는 안내를 받자마자 이전 상담사 누군지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난리였다.     


개인 연락처라니! 개인정보 보호에 관련된 내용은 대전쟁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오래되다 못해 화석 수준의 법인데!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으면 화도 나지 않는 법이었다. 이 고객은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끊임없이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며 같은 요청을 반복했다. 처음 통화한 상담사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중간에 지나간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친절한 상담 직원의 이름을 물어보고 10번이 넘는 반복과 1시간도 더 지난 긴 시간 이후에 더는 전화하기를 포기한 고객의 패배로 끝이 났다.     


“ 미친 거 아냐? ” 여러 차례 반복된 알맹이 없는 안내로 진이 빠져버린 누군가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 외로워서 그래요, 외로워서! 평소에도 저 상태로 대화하면 누가 상대를 해주겠어! ”     


“ 개인 연락처를 묻는 건 정말로 신선했어요! ”     


“ 저 정도로 집착하는 거면 이전 상담사랑 대화하는데 꽂힌 거 아닌가? 너무 잘 받아줬다던가? ”    

 

“ 낮에는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더 바쁜데 잘 받아줬을 리가! 낮에도 우리 상담소에서 도움 줄 일 아니라고 안내받고 화풀이하려고 전화한 거지. ”      


“ 아니 무슨 우주 상담소가 민원 센터인 줄 아나? 도대체 이웃집이랑 밤에 싸워서 벌금 부과된 걸 통보 없이 부과했다고 우주 상담소에 전화하는 건데? ”      


“ 집이 달 지구에 있다잖아요, 지구 위성 행성이니까 우주 관련 상담 맞는다는 거지! ”      


“ 진짜 참신한 의견이네요! ”      


“ 이 밤에 전화해서 자기 억울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는 거지. ”      


여러 직원의 전화 후기가 공유되고, 불쌍하니까 우리가 참자는 자기 위안 후에 짜증이 나 있던 직원들의 폭소와 함께 고요함이 찾아왔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당연히 그 대상자가 아니니 해결될 수 없다. 우주 상담소 관련 업무가 아니므로 당연히 이곳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데, 밤에 전화 통화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집착에 사로잡혀 이 밤이 거의 다 지나가도록 전화를 끊고 다시 걸기를 반복하는 고객 덕분에, 시미나의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안전한 집에 처박혀서 자신을 가두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기 시작한 일의 원인도 어떻게 생각하면 별거 아닌 일 이었다. 믿었던 동료와 친구의 뒤통수가 뼈아픈 실패인 것은 맞았지만, 시미나의 인생 전체를 통해 길게 보자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이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일이었다. 조금 이르고 늦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맞닥뜨린 것이 행운인 것을 세월이 좀 더 지났더라면 아마 시미나도 쉽게 깨달았을 것이다.      


시미나의 괴로움은 주체 자체가 잘못되었다. 가해자인 그들은 발을 편히 뻗고 미래의 희망으로 잘 지내고 있을 텐데, 정작 피해자인 시미나는 인간적인 배신감에 괴로워하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두려워 있었다. 괴로워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대상을 잃은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은 밤새도록 전화를 해대는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사소한 어떤 것에 사로잡힌 것이 한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고 괴롭게 하는지, 길을 잃은 분노의 대상으로 인해 편안해야 할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괴로움의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 톨의 가치도 없는 시간 낭비였다. 그들이 시미나의 괴로움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만족하며 지금보다 더 기뻐할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잘 못 한 것이 없었고 제대로 살아왔다.  

    

한 발 떨어져서 보니 이렇게 쉬운 답을 찾기 위해 왜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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