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나가 뜻밖에 찾아온 자아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든 말든 하루는 잘 흘러갔고 열렬하게 기다릴 때는 느리게 오던 퇴근 시간도 심심할 틈 없는 여러 사건으로 인해 성큼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
------------------------------------------------
] 시미나씨 안 바쁘면 잠깐 13번 회의실로 오세요.
------------------------------------------------
파트장의 호출이었다. 시미나가 근무하는 이 상담센터의 정확한 명칭은 아-유지구 16920 세타 상담소였는데, 상담소의 최고 우두머리인 소장은 시미나가 이곳에서 일을 할 동안은 전혀 마주칠 필요가 없으므로: 대기업 사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직급이 있었지, 정도의 존재였고, 크게 나누면 소장-센터장-파트장-팀장 등으로 나누어지는 직급들이 존재했는데 수많은 팀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센터에서 최말단에 중에서도 가장 하단에 있는 시미나의 위치상 파트장 이상의 인물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센터도 세타 지역 관리센터 12지구 4센터 등의 이름으로 나누어지는 데다가 각 센터도 수십 개로 나누어져 있는지라 실제로 어떤 팀이 있는지도 해당 부서가 아니면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 한 톨 같은 위치였기 때문에 시미나가 파트장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 것은 입사할 때 파트장과 입사 관련 서류작성과 입사 축하 인사를 위해 한 번 정도 대화해 본 것과 수습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걸린 불친절 민원 때문에 집중 면담을 받았을 때 이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파트장과는 퇴사를 위해서가 아니면 절대 다시 마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말단직원이 상급 관리자와 대화가 필요할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 13번 회의실은 오픈 형태의 사무실이라 따로 방이 없는 관리자들이 직원들과의 면담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야간 팀이 주로 사용하는 자리 바로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 뭐야 뭘 잘못한 거지? 가능한 한 존재감 없이 깃털처럼 살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시미나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러댔지만,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 뭐 실수한 게 있었나? 민원 걸릴 일은 없었던 거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부른 거지? ’ 시미나의 머리가 파트장의 호출에 대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회전했지만, 호출의 이유는 도통 짐작도 되지 않았다.
“ 어서 와요,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죠? ”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주한 파트장의 얼굴은 시미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르게 좋아 보였고 심지어 상냥했다. 파트장의 하늘을 찌를듯한 드높은 짜증스러운 목소리와 마귀할멈같이 변한 표정을 주로 봐왔던 시미나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잠깐 버벅댔다.
“..... 네…. 네. ” 업무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거의 하지 않는 극 효율을 추구하든 삶을 살아왔던 시미나지만, 지난 1년 가까이 되는 상담센터의 경험으로 사회성을 조금 탑재하게 된 시미나는 파트장의 가벼운 근황 이야기에, 왜 불렀는지 묻고 싶은 것을 눈알만 굴러대며 꾹 참고 기다렸다.
“ 시미나 씨 우리 팀 근무한 지 1년쯤 됐죠? 지금까지 너무 잘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잘할 거로 생각해도 되죠? ” 파트장은 간단한 칭찬과 함께 이제 다음 달이면 근무한 지 1년이 되는 시미나의 퇴직금 설정 관련해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제야 혼이 날 일이 아니라 서류작성이 필요해서 부른 것을 알게 된 시미나의 표정이 풀어졌다.
‘ 벌써 일 년이나 됐네, 이제는 수틀리면 아무 때나 그만둬도 되겠군.’ 이라고 생각하던 시미나의 표정이 만족스러움에 부드러워진 것을 확인한 파트장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 시미나 씨 팀장들이랑 관리자들 사이에 평이 좋은 거 알고 있죠? 그래서 말인데, 에이더 - 최말단 관리자 - 해보는 거 어때요? ” 시미나가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머릿속으로 써 내려가던 시나리오상에서는 우주먼지만큼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제안이라 반응은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 제가 관리자를 어떻게…? 전 상담소 근무도 여기가 처음인데요? ”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한 시미나의 즉각적인 반응에 파트장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시도했다.
“ 근무 경력이 중요한 건 아니죠, 시미나 씨 근무 평가표도 그렇고 이 시기에….” 파트장의 이야기가 길어지려는 순간 소음 소리와 함께 시미나는 잘 마주칠 일이 없는 주말팀 담당 팀장이 노크와 동시에 들어왔다.
“ 파트장님, 급한 일 아니시면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주말팀 담당 팀장은 외견상으로는 키와 몸집이 크고 근육질이어서 위압적이었으며, 신입사원들이 많은 주말팀을 다루다가 성격이 파탄 났는지, 성격적으로는 급하고 팀원들에게는 권위적인 타입이었지만 상사에게는 아부하는 타입이라 파트장이 다른 직원과 면담을 진행할 때 막무가내로 들어올 유형은 절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한 분위기에 호기심이 폭발한 시미나는 주말팀 팀장의 뒤로 가려져 있는 바깥 상황을 엿보고자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 무슨 일인데? 거의 끝나가는데 조금만 있다가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야? ” 파트장의 의아한 목소리에 팀장은 문밖을 슬쩍 돌아보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저, 그게, 나프니…. ” 팀장이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어수선함과 함께 여자 두 명의 고성과 둘을 말리는 모런의 소리가 함께 밀려 들려왔다. 파트장은 나프니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치를 챘는지 팀장보다 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시미나 씨, 제안 진지하게 잘 생각해 봐요. 먼저 나가보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 파트장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시미나에게 손짓했다.
시미나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그 잠깐의 시간도 참지 못했는지, 나프니아와 미리드는 거의 머리채를 잡을 듯한 험악한 분위기로 회의실로 밀고 들어오면서 서로를 비난하며 소리를 높여댔다. 그 와중에 제일 황당한 것은 시미나와 눈이 마주친 모런이었다. 모런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로 인해 싸우고 있는 여자 둘을 보며 지친 듯 흥분된 듯 알 수 없는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끌려가는 듯한 표정으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시미나는 훌팩이 이야기한 자기 욕망에 가장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의미가 이해가 갈 듯도 한 것 같았다.
대단한 연애 놀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