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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가원 Aug 04. 2024

당신의 소망도 이루어지기를

오랜만에 만난 것 때문인지 입에 맞는 음식이 반가워서인지 그녀들의 수다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 팀장님, 근데 시그마 에너지 이야기는 들었어요? 디놀드 사장 투자금 들고 날랐다는 이야기요! ” 몇 달 사이에 이전 업계 동료 중 연락한 사람이라고는 엘리슨밖에 없었던 시미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투자금을 들고 날랐다고? ”     


“ 네, 거기 직원들 월급도 다 떼먹고 프로젝트 여러 개 돌리면서 예산 돌려막기 시전 하다가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 3개인가 수주받고 그 계약금 들고 날랐대요. 얼마 전에 업계에 소문 다 나서 공장 막고 암튼 난리였다고 하더라고요. 팀장님 뒤통수치고 아이디어 훔쳐서 독립하더니 2년도 못 채우고 끝장났더라고요. 요새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발디한테 연락을…, 그럴 거면서….” 엘리슨의 계속되는 수다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그제야 얼마 전 뜬금없이 발디에게서 온 연락이 이해되었다.     


“ 발디도 돈 못 받고 나왔대? 저번에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전화를 받지는 못했거든. ”     


“ 어휴 말도 마세요. 발디는 돈 못 받은 것뿐만 아니라 디놀드 사장이 빚도 일부 떠넘기고 갔나 봐요. 요새 일손 너무 부족해서 연락해 봤더니 그 상태더라고요. 돈을 필요하지만 일은 못 하겠다고 하던데 거의 폐인 같더라고요. 팀장님 쉬고 있는 줄 알았으면 이번 프로젝트 같이하자고 연락할 걸 너무 아깝네요, 저 이번에 진짜 힘들었는데! ” 엘리슨의 수다는 계속되었고 시미나의 잡념도 깊어져 갔다.     


디놀드도 발디도 한때는 시미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울고 웃고 했던 친구이자 동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배신은 시미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고 더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스스로 새장 속에 가두었다. 잘못은 배신당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배신한 자의 것이었는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시미나는 그들의 몰락을 듣고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제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분노도 화남도 모두 인간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친분에서 생기는 것이지 지나가는 남보다 못한 사이에 생길 감정이 아니었다. 


긴 점심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만남을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길에 시미나는 계속 예전 기억이 났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과거의 슬픔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잊은 척 기억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묻어둔 상태였다. 깊디깊은 구덩이 속에 숨겨서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얕게 묻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그 형체를 짐작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시미나는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슬픔도, 힘듦도, 지침도, 기쁨도, 모든 희로애락이 존재했던 시간이었지만 시미나의 열정과 꿈이 함께했었다. 그녀의 성취와 함께한 미련이었다. 배신당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괴로웠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미련에 빠져있던 과거의 자신을 떠나서 현재를 살 준비가….     


시미나는 단 한 순간도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늘 왜 이럴까 ‘라고’ 자책하던 그 모든 순간을 돌이켜보면 결국 자신의 욕망조차 외면하던 스스로가 있었다. 자기 마음의 소리조차 들어주지 않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리가….     


이제 더는 존중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을 위해 아까운 낭비를 할 필요가 없을 시간이었다.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었을 뿐이니, 그 시간을 함께 울고 웃었던 인연들과 작별을 고하고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가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좀 더 나를 사랑해 줄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시미나가 개선의 거리를 지나 평화의 광장을 지나갈 때쯤이었다. 오랜만에 울리는 전화에 마음이 수런거렸다.     

“ 어 ”     


“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도대체 어디야? 이번에도 전화 안 받았으면….” 오랜만에 들리는 잔소리가 반가움에도 속이 울렁거렸다.     


“ 나 배고파, 자기 집 근처에서 저번에 먹었던 '고요한 달이 오면' 먹고 싶어. ” 전화 반대편에서 긴 한숨이 들렸다.     


“ 어딘데? 그 망할 다이어트는 이제 안 하려고? ” 비꼬는 듯 날 선 듯한 목소리에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 여기 달 지구… 평화…. ” 이야기하다 말고 울먹거리며 대답하자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평화의 광장이라고? 왜 울어? 진짜 우는 거야? 자기야 무슨 일 있어? 내가 금방 갈게 10분만 기다려 내가 잘못했어! ” 라고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열렬히 사과하는 통에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 나는 도대체 중요한 사람들을 두고 뭘 한 걸까? ’ 시미나의 자아성찰은 얼른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그날 조프리가 광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평화의 광장 사연녀로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화재로 남았다. 물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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