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통하는 사람들을 위한 16920번째 우주 상담소
관리를 100년은 하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포니테일 남들 눈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직장인의 옷차림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릎 튀어나온 후줄근한 체육복 바지에 편안이라 말하기 애매모호한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의 시미나는 오늘도 촘촘히 줄지어져 있는 칸막이들의 구석진 자리에 영혼 없이 앉아있었다.
평상시에도 딱히 일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은 도통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옆자리의 직원이 혼잣말하며 중얼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때마다 음 소거 버튼을 눌러가며 중간중간 욕을 하고 통화를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몸을 까딱일 때는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지르고 싶었지만 몇 달 만에 집에서 나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장점 하나만으로 선택한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시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라 마음을 다잡고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시미나는 그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듯이 다시 밀어 넣고 음악 소리를 최대한 높이기 시작했다.
시미나가 사는 이 세상은 예전에는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은 태양계에 속해있는 16920번째 번호의 행성이다. 지정된 번호를 포함하여 여전히 지구별이라 불리는 이 별은 우주개발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딱히 여러 종의 관심을 받지 않던 낙후된 행성이었으나 과학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인해 인간종들의 우주탐험이 시작되었고 이미 우주개발을 시작한 지 몇만 년은 앞서가던 다른 은하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인간들은 본인들이 최고의 지성체로 살던 행성에서의 먹이사슬의 최고 단계에 있다는 만용으로 인해 다른 종들과의 교류에 우위를 두고자 하였으며 이로 인해 발발하게 된 오랜 우주전쟁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퇴보를 겪었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도전으로 태양계가 속해있는 NGC 4161 은하단과 메시에 86 은하단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행성 연결 허브로 발전해 왔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시미나는 다양한 우주 종들이 거쳐 가는 이 행성에서 태어났으나 오랜 기간 외지에서 생활해 왔고 지금은 수많은 우주 종들이 몰려들고 거쳐 가는 허브 행성으로 변모한 이 행성에 적응하고자 하는 반쯤 현지인이었다.
지구는 인간들만 살던 시절에는 지리학적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구분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는 데 오랜 우주전쟁과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현재는 사대양 삼대주로 나누어져 있다.
정식으로 지칭하는 태양계 전쟁의 명칭은 NGC 4261 은하단 우주 대전쟁으로(태양계 주민들은 약칭 대전쟁이라고 부른다) 명명되었으며, 간단하게 태양계 우주전쟁이라고 알려진 이 전쟁 이전에 지구를 지배하던 시기에는 인간종들이 명확하게 구분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지구에 거주하는 지성체들은 생물학적으로는 토착종과 이주 종으로 구분 되어있으며, 지정학적으로는 관광지구, 산업지구, 허브 지구의 거주민으로 세 개 대륙의 주력 산업으로 구분되고 있다.
시미나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이전에는 아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불리었던 지역으로 현재는 그 이름을 따 아-유 지구로 불리는 곳으로 행성 간 연결 허브 산업이 주력인, 수많은 외행성 종족이 거쳐 가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인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이민자들도 많아서 거리 자체가 여러 행성 스타일로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졌는데, 초기 이민자들이 정착 당시에는 전쟁 후의 복구에 급급 하느라 지구가 이 정도로 발전할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건축 허가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졌었다. 지금에 와서는 계획 없이 발전한 도시가 각 행성의 고유문화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건축양식들과 분위기를 형성하여 행성 간 교통수단을 위해 거쳐 가는 곳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은하 간 이동 시 꼭 들려야 하는 관광 허브 행성으로의 면모를 보이는 중이었다.
다양한 행성에서 경험으로 인해 타지인들과 섞여 지내는 데 익숙한 시미나였으나 이렇게 정신이 나갈 것 같이 복잡해진 행성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시미나는 본인도 제대로 적응되지 않은 이 복잡한 행성의 원활한 적응 및 안내를 위한 상담소에 심야 시간에 근무하고 있는 전화 상담원이었다. 낮과는 다르게 시미나는 밤에 근무하기 때문에 정해진 자리가 없었고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하필 오늘은 그녀가 선호하던 문과 가까운 구석 자리는(칼퇴근이 매우 쉽고 관리자들의 눈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리이다) 낮 상담원이 늦게 퇴근하느라 앉을 수 없었기에 창문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는데 불운하게도 옆자리가 퇴사를 부르게 만드는 빌런이 앉게 된 것이었다. 밤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주 상담소는 지구 대륙마다 크게 나뉘어서 몇십 개씩 존재했으며, 옛 그리스 숫자를 딴 이름으로 된 명칭이 상담소 앞에 붙어서 구분되었다. 시미나가 근무하는 이곳은 일반적으로 세타 상담소로 불리었으며 말 그대로 지구에서 8번째로 설립된 곳이었다. 이곳은 야간에도 상담이 가능한 24시간 상담소로 지구에서는 매우 큰 상담소 중의 하나였고 시미나가 일하는 팀은 일반적인 이주 상담보다는 주로, 행성과 은하 간의 지역 행성 은행끼리 처리할 수 없는 계좌연결 거래와 행성 이주와 관련된 서류처리 및 행성 간의 긴급한 사고 신고를 돕는 업무를 진행했다. 그 방대한 업무답게 상담소는 층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었고 빽빽한 책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상담원이 고객들과의 전쟁을 치르는 곳이지만 오늘은 같이 일하는 동료와 싸우게 될 판이었다.
시미나는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 달 생활비를 생각하며,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에 대해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악’ ‘악’ ‘악’을 백번쯤 내뱉고 나자, 정신을 나가게 하던 중얼거림도 잦아들며 주변공기가 차단되어 옆자리의 악당과 나 사이에 공기로 된 벽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에 추가금을 내고 인내심을 증진 시키는 향을 넣어달라고 주문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오늘은 시작도 전에 험난한 하루가 될 조짐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전화가 들어올 때만 적당히 집중하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딴짓에 빠져있었지만, 오늘은 매뉴얼을 꺼내 다시 읽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왠지 뒷골이 싸했다. 시미나는 촉이 좋은 편이었다.
“22시” 관리자들이 소리 높여 시간을 외치고 전화 대기를 하자마자 전화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 지구별 16920 세타 상담소 시미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아이 씨발, 이 거지 같은 기계 어쩔 거야!!!”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과 함께 반말이 들려왔다. 시미나는 한숨을 참으며 차근히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일진이 나쁠 조짐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인공지능이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하고 행성 간 교류가 옆집 가듯이 편한 이 시기에도 전화상담실은 왜 Ai 센터가 아니라 지성체가 직접 답을 하는 이런 구시대적인 센터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일이 시미나의 생활비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상냥함을 쥐어짜 내 답을 했다.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 시미나는 지침서상에 있는 불량 고객 해당 사항을 읽으며 차분히 고객이 어떤 대응을 할지 기대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눈치 빠른 고객이었다. “ 씨발 욕한 적 없어, 화나서 혼잣말한 거야” 여전히 약해진 욕설과 반말로 대답했지만, 불량 전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몰상식은 아니었다.
우주 상담소는 지구 대륙마다 몇십 개씩 존재했으며, 옛 그리스 숫자를 딴 이름으로 된 명칭이 상담소 앞에 붙어서 구분되었다. 시미나가 근무하는 이곳은 일반적으로 세타 상담소로 불리었으며 말 그대로 지구에서 8번째로 설립된 곳이었다. 이곳은 밤에 상담이 가능한 24시간 상담소로 지구에서도 그 규모가 매우 큰 상담소 중의 하나였고 시미나가 일하는 팀은 일반적인 이주 상담보다는 주로 행성과 은하 간의, 지역 행성 은행은 처리할 수 없는, 은하 간 계좌연결 거래와 행성 이주 관련 서류처리 및 긴급한 사고 신고 등을 돕는 업무를 진행했다.
그 방대한 업무답게 상담소는 층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었고 팀별로 수십 개씩 나뉘어져서 빽빽한 책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문의 하는 곳이지만 질문의 80퍼센트는 밤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거나, 설명을 해주어도 자신들의 배경지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상담사에게 해결 못 한다고 화를 내거나 술에 취한 자들의 하소연이었다.
오늘의 고객님은 듣지 않을 준비가 매우 잘 되어있었다. 이 우주 상담소가 아무리 24시간 운영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인건비는 무한한 재화가 아니었고,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결국 이용자가 줄어드는 밤에는 해결이 안 되는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연한 이치를 거부하는 고객이었다.
“ 고객님, 우주선 자동 항법장치 고장 문제는 평일 업무시간에 문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부서에서 기술자 연결을 도와드릴 겁니다.”
“ 나는 지금 출발을 해야 한다고, 지금 출발 못 한 손해는 그런 네가 책임질 거야? 어? ”
“ 고객님, 지금은 야간시간이라 우주선 수리 관련은 상담이 어렵습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지만, 그 건 관련은 낮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재문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이 항법장치는 지구에서 구매했다고! ”
“ 고객님, 정말 급하시면 우주선 정박지 사무소에서 수동 항법장치 대여를 하시거나…. ”
“ 새것을 장착한 건데 왜 다른 걸 대여해야 하는데? 그러면 대여비랑 수리비는 우주 상담소에서 해결해 주는 거야? 지금 바로 해결해 달라니까! ”
“ 고객님, 지금 시간에는 기술자 연결은 어렵습니다. 불편하겠지만…. 무한 반복의 시간이었다. ”
지성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건 당연히 틀린 정보라고 생각하고 정보를 알려주는 상대방을, 이해를 못 한다고 비난하거나 짜증을 내기 일쑤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는 자기 확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틀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상대방이 틀렸고, 상대방이 여러 차례 설명해 주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으면 내가 모를 수는 없으니, 설명해 주는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다시 자세하게는 의미가 없는 말이다. 나는 이미 듣지 않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을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어야 진행이 되는 것이라 생각보다 매우 일방적이다. 온갖 우주 종들이 거쳐 가는 이곳에서는 당연히 본인의 상식과 다른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알던 상식은 상식이 아닐 수 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은 적응할 수 없다. 그래서 이곳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상식 없는 자들의 세상 속에서 시미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