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꼬마가 피아노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시점이 되자 나는 다음 단계의 액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본격적으로 노래라는 영역에 한 발 다가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노래라는 브로드 한 영역은 점차 합창단이라는 키워드로 구체화가 되었다. 이 녀석을 가수의 길로 인도한 다면, 합창단이라는 것이 그 가능성을 높여 주는 필수 선행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합창단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과천시 소년 소녀 합창단에 지원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불렀고 그 뒤에 반주자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음을 맞추는 형식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한 명씩 방에 들어가서 오디션을 본 것이 아니고, 대기하는 전체 인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었다. 그날 내 보호자로 참석했던 고모에 말에 의하면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 준비 없이 도전했던 나는 이변 없이 탈락했다.
그런데 같이 시험을 봤던 같은 반 친구는 합격을 한 것이 아닌가. 그때가 난생처음 '부러움'이라는 개념을 몸소 알게 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선생님도 예뻐하시던 친구였기에 그 친구가 이 기회를 더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 합창단에서 학교에 지금 말로 레퍼런스 체크를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 말이다. 여하튼, 그 친구가 합창단 활동을 하고 심지어 해외 공연까지 다녀오는 것을 보면서 엄청 엄청 부러웠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그 합창단 활동으로 노래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중학교 때부터 가수를 지망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연습생이 되었다. 한국,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 3인조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팀을 홍보하는 영상까지 봤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데뷔 직전 무산되었다. 그다음에는 그 당시 5인조 활동하던 여성 그룹에서 두 명이 탈퇴하자 두 명을 새로 선발했는데 거기에 합격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확정 직전 그냥 3인조로 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결국 그 친구는 가수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그 후 VJ 선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을 시작으로 리포터 활동을 이어 갔고 그 분야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친구가 가수가 된 것은 아니였지만 옆에서 지켜봤던 나에게는 그 친구가 했던 모든 도전들과 폭넓은 경험들이 합창단으로부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였다. 내가 합창단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된 것이. 아직 우리 꼬마는 미취학이었지만 나는 몇 발 앞 미래를 보고 있었다. 언젠가 이 녀석이 유명한 합창단에 들어갈 것을 꿈꿨기에 지금부터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다니고 있던 음악 학원과 별개로 한 가지를 더 진행하기 위해 합창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감사히 집 근처에 사설 어린이 합창단에서 마침 키즈(5세-7세) 반을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지금은 연음 소년 소녀 합창단으로 서초 그랑자이 상가에 자리를 잡은 합창단인데 그때는 오픈 초기였던 건지 예술의 전당 앞 어느 지하 공간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예술의 전당 앞 빌라가 빼곡한 그곳은 주차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차가 힘든 탓인지 여태 까지 내가 하는 모든 교육적 결정에 이의가 없던 남편이 처음으로 이걸 꼭 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한예종, 연세대를 나오셨다고 했는데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굉장히 전문적인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셨고 단호하시기도 했다. 그 당시 연음 어린이 합창단은 꽤 인원이 있어 보였지만 키즈반은 나와 내가 끌어들인 내 동생의 애기까지 두 명이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몇 달을 보내면서 느낀 건데, 선생님의 가르쳐 주시려는 열정과 고급 지식에 비해 아직 이 꼬맹이들이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 같아서는 미취학 때부터 소리는 내는 법이라던지 이런 것을 일찍 일찍 배웠으면 했는데 아이는 공부 같이 느껴지는 이 학습을 버거워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달크로즈 교육이라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뛰어노는 것을 실컷 했는데, 갑자기 정자세로 가만히 서서 노래를 본격적으로 배운다고 하니 살짝 음악에 거리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결국 동생 아이가 먼저 그만하겠다고 했고, 결국 수강생이 한 명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우리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이 합창단이라는 아니 그 당시 아이가 느끼기로는 추가되었던 한 가지 학원을 통해 아이가 음악의 기초도 배우고 더 나아가 무대에 서보는 경험도 기대해 보았지만 이 역시 내가 아이를 잘 모르고 너무 발 빠르게 움직였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후회할 땐 하더라도 하자라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일단 시도해 보았던 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무리 좋은 것도 맞는 시기에 진행되어야 약이 된 다는 것을 또 배웠다. 사실 노래는 찾아보면 꼭 합창단이 아니어도 배울 수 있는 레슨 선생님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탐이 나던 한 번이라도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무대 경험은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