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삽질과 방황 후 나는 결국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이돌이 되는 것이 어떨까 라는 건 내가 이 아이를 관찰해서 내린 나의 중간 결론일 뿐이지, 사실 아직(?) 그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 과정을 위해 노래를 제대로 배웠으면 해서 지원했던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도 말이다. 아이는 이제 3학년으로 많이 큰 것 같지만 아직 무언가 간절함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부모의 매니징 능력이 너무나 필요한 시기였다.
돌아보니 내가 이런 일들을 꾸민 것은 조금 상투적이지만 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결국 행복이 무엇이었나라고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좋은 대학교 졸업하는 것? 좋은 직장에 가는 것? 혹은 연봉을 갱신하며 이직하는 것? 좋은 집에 사는 것? 나도 그런 것들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조금 과장을 보태 부질없었다. 나는 내 인생 통틀어 작고 깜깜한 방에서 스탠드 하나 켜놓고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행복했고, 그 글이 책이 되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물론 그것이 이퀄 경제적 보상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내가 망치라면 못을 박을 때 내가 태어난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것 같이, 나도 글을 쓸 때 신이 내게 맡겨 주신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어떤 객관적 지표로 사람들은 내가 행복한 지 아닐지 가늠할지 몰라도 정작 나의 행복은 그곳에 없다는 것을. 나는 내가 받던 연봉의 두 배를 올려 이직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멋진 곳이었지만 그곳에 들어갈 때 투잡 금지 계약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작가 활동은 할 수 없었고, 점점 나는 시들어 갔다. 물론 시들어 간 이유가 그것 한 가지 때문 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퇴사했고 운명의 장난처럼 퇴사 직후 두 번째 책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돈 보다 더 중요한 삶, 신이 나를 만들어 주신 방법대로 사는 기쁨을 내 아이에게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아이돌이 된다면 아이에게 좋은 점은 많은 인기를 얻는다거나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얻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더 크게 이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쓸 기회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점이 가장 크다고 보았다. 자신이 명백히 재능이 없는 것을 평생 해야 되는 사람의 괴로움 그리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만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겪어 보았기에 혹은 겪고 있기에 굳이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게 돈이 되면 더 좋겠지만, 돈이 되지 않아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큰 후회가 남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만끽했으면 했다.
앞서 잠시 말했듯이 이 녀석에게 신이 주신 장점은 엄청나게 작은 머리에 호감형 외모, 미성의 목소리 그리고 무대 체질이었는데 이 세 가지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정말 많은 삽질을 해야 했고, 그중에서 내가 했던 최대의 삽질을 이 챕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적 검증을 먼저 해 나가던 나는 될 듯 말 듯한 기로에서 좌절을 맛보자 방향을 틀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무대체질 즉 카메라 체질에 대해서 체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잡지나 광고 모델 쪽으로 흘러갔다.
사실 대부분은 모델에서 아역배우로 커리어 전환을 지향하지만 내가 이 분야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내 목적은 정말 한 두 개의 광고 현장만 경험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 두 개의 광고 따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 텐데, 내가 이 세계를 몰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경험이 나를 만들어 가는 자산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이한테도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 주려고 정말 내 한 몸 불살랐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키즈카페라는 공간이 집과 다르게 낯선 공간이라서 좋아한다는 점을 착안해서 집을 키즈카페 같이 느끼도록 낯섦을 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가구배치를 바꿨다. 그렇게 라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자극과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주고 싶었던 경험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이었다.
키즈 모델 등으로 검색을 하자 몇 개의 키즈 전문(?)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이 검색이 되었다. 홈페이지 등을 방문해 보고 한 군데를 이메일로 컨택을 했던 것 같다. 오디션을 볼 테니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이에게 여차 저차 설명을 하고 토요일 오후 사무실을 방문했다. 미리 주소를 받아서 예상은 했지만 사무실은 공유오피스였다. 흠, 그때부터 뭔가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이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같이 온 마당에 그냥 돌아가긴 뭐 했다.
그래서 오디션이라는 명칭으로 어떤 중년의 남자분과 마주하게 되었다. 본인을 이 업계의 대부라고 소개하셨던 것 같다. 말을 너무 잘하시는 것 보아서는 약간의 영업 느낌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 남자분은 아이에게 대사 몇 줄을 읽어보라고 하더니 잘한다, 잘생겼다, 잘해보자 등의 말을 하면서 계약을 하자고 했다. 당연히 그분의 말을 덥석 믿고 옳다구나 하진 않았다. 당연히 영업성 멘트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아이에게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면 조금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감수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참 부모라는 게 알면서도 자식 일이라면 이렇다.
그렇게 계약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매니징 비용이 있다고 했다. 그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아이가 중간에 하기 싫다고 하면 계약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 차원에서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비용은 물론 아이를 매니징 하는데 쓰인다고 했다. 촬영에 나가게 되면 따로 드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 비용은 1년에 80만 원, 2년에 150만 원이라고 했다. 다만 보통 2년 단위로 계약하는 것이 1년이면 뭔가 계약 10개월 차쯤 되면 재계약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애를 캐스팅하느니 마느니 그런 논란이 있으니 안전하게 2년으로 가야 캐스팅이 많이 된다고 그러셨다.
흠, 뭔가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라는 사람이 말하니까 다 그런가 보다 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내야 된다는 것에 맘이 불편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을 1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돈을 낸다는 결정을 했다. 등록하겠다는 결정을 하자 그 아저씨는 한 가지 더 설명하게 있다고 했다. 방금 등록한 건 회사에 소속이 된다는 것이고, 또 협회라는 것이 따로 있는데 여기도 등록을 하라고 그러셨다. 협회는 키즈모델이라는 지위를 만들어 주기 위한 자체 단체로 보였다. 거기서 발행하는 잡지에 아이를 소개하고 1년에 한 번 패션쇼에 세우고 이런 취지였다. 분명 옵션이라고 설명하셨지만 딱 알 수 있었다. 그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회가 더 적게 올 것이라는 것을. 가입비가 50만 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늘 내 의견에 따르던 남편이 그날은 웬일로 협회까지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자리가 마무리되었고, 나는 다시는 그분은 만날 수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2년 간 단 한 번의 기회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오디션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그분을 다시 만난 적도 없거니와 혹은 담당 매니저 같은 것도 없었으며, 현장 오디션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 문자가 와서 어떤 포지션이 나왔으니 신청하라는 공지가 있어서 들어가 보면 거의 아이의 나이에 맞지 않거나 '경력자'를 뽑는다는 말이 있었다. 1년이 넘어가자 답답해서 전화를 해보니 어떤 공고가 나면 회사에서 1차 후보를 추려서 광고주에게 2차를 올리는 거라고 했다. 즉 회사 안에서 누가 1차 후보로 추려지는지는 정말 깜깜이 인 것이다. 정말 세네 번쯤 '오디션에 신청합니다.'라는 이메일만 보낸 것이 그 회사와 우리의 역사 전부로 기록되었다.
내가 2년간 그 회사 홈페이지를 매일 들어가면서 보면서 알게 되었던 점 몇 가지는 중간에 도메인이 만료되어서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는 것, 중간에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한다는 건지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것, 정말 한 달에 한 두 개쯤 외부 광고 포스팅이 올라오는데 대부분 찾는 나이가 영유아라는 것 마지막으로 가끔 확정되었다고 올라온 명단을 보면 전부라고는 내가 확언할 수 없지만 그 마지막에 권했던 협회에 가입된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50만 원 더 내고 더 호구가 될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150만 원에 기대했던 것은 단 한 번의 광고 촬영 현장 경험이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도 단 한 번의 현장 오디션 기회라도 있었다면 허무하지 않았겠지만, 정말 허무했다.
이렇게 내 또 한 번의 삽질은 막을 내렸다. 아이는 가끔 나에게 묻고는 했다. "엄마, 그 아저씨가 말하던 건 언제 하는 거야?"라고 정말 너무 미안하고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아카데미(학원)에 갔으면 뭐라도 배우는 것이라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회사 자체는 법을 준수하면서 했을 테고 나한테 작정하고 잘못한 건 없지만, 그리 좋지 못한 경험으로 남아버렸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의 최대의 흑역사 중에 하나이다. 참 한 단계 한 단계 난코스다. 그중에 가장 어려운 건 아이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를 검증하기 위해 외부적인 툴을 많이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 사이 아이는 조금씩 자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몇 가지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임원 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