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이 아이돌을 접하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언니, 오빠, 형, 누나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첫째 아이가 세븐틴을 좋아하게 되자 이 녀석도 심지어 엄마, 아빠인 우리도 세븐틴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집 곳곳에는 세븐틴의 흔적이 가득했다. TV에는 언제나 세븐틴 무대가 틀어져 있었으며, 밥 먹을 때 세븐틴 노래를 들어야 했다. 벽에는 세븐틴 포스터로 도배가 되었고 세븐틴 굿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븐틴의 매력에서 빠져나갈 래야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해, 첫째가 세븐틴에 입덕한 시기는 '손오공'을 발표했을 때였는데 내가 봐도 세븐틴은 정말 멋졌다. 요즘 아이돌들은 정말 육각형인 것 같다. 외모, 춤, 노래 세븐틴은 심지어 자체 프로듀싱까지 빠지는 것이 하나 없다. 세븐틴을 점차 알아가면서 점점 아이돌의 기준이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건 나에게도 중요한 안건이었다. 내 아이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가 내 아이 실력 있는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로 업그레이드돼야 할 모먼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들의 무대도 엄청나게 매력적이었지만, 우리 가족 특히 이 녀석이 세븐틴을 롤모델로 삼게 된 것은 단지 무대 때문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븐틴은 '고잉 세븐틴'이라고 부르는 자컨이 있다. 자컨이라는 용어가 낯선분들 위해 아주 쉽게 설명을 하자면 자체 컨텐츠의 약자로 자체 예능이다. 더 쉽게 말하면 멤버들끼리 즐겁게 노는 것을 찍어서 공개하는 것이랄까? 물론 세븐틴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지만 시청자들 눈에 그들은 그들끼리 즐겁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컨의 역할은 팬서비스를 넘는다. 자컨을 통해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멤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되면서 팬들은 그들과 더 친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지금 마치 승철, 정한, 지수, 준, 호시, 원우, 우지, 명호, 민규, 도겸, 승관, 버논, 디노라는 13명의 친구를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는 이 부분에서 세븐틴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12명의 형, 동생과 저런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의 머리에는 세븐틴이라는 폴더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 폴더에 담기는 세븐틴 노래들을 부르고는 했다. 각 잡고 노래를 했다라기 보다는 흥얼거릴 때가 많았다.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 최종 단계에서 탈락한 이후로 그 녀석의 노래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안 했지만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떠나서 그 녀석은 노래할 때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이녀석은 세븐틴 노래 중에 '아주 NICE'를 가장 먼저 마스터했다. 그리고는 '손오공' 노래도 종종 부르고는 했다. 이 모먼트들이 이 녀석이 가요를 처음으로 제대로 접하게 되었던 순간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가요에 그리고 아이돌에 관심을 갖게 되자 또 살짝살짝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에 이르렀다. "그래, 아이돌은 포지션이 있는데 꼭 모두가 메인 보컬처럼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 라며 말이다. 참, 내 아이 아이돌로 키우기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마치 밀물과 썰물 같다. 언제 빠져나갔지 싶으면 또 언제 들어온다. 폭풍이 몰아쳐서 한 번 방파제를 팍 넘어줬으면 좋겠건만 아직 그런 순간들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라고 던지고는 했고, 아이는 예전과 다르게 살짝 고민하는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븐틴을 알게 됨으로 '아이돌'이 된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온 것이다.
이 시기에 아이는 학교에서 상장을 하나 받아왔다. 아이가 가방에서 꺼낸 상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확신의 센터상'
너무 웃기고도 기특했다. 모범상도 몇 번 받은 적 있었지만 이 상 보다 더 기쁘진 않았던 것 같다. 히스토리를 알고 보니 교생 선생님들이 한 달간 반에 있다 가셨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그 아이에게 맞는 상을 하나씩 만들어서 주고 가셨다는 것이다. 한 달이라는 잠깐의 시간을 봤음에도 이 아이에게서 이런 모먼트를 발견하셨단 말인가 하고 놀랍고 감사했다. 이 상을 받고 나서 아이는 살짝 자신감이 올라간 듯했다. 물론 내가 이 상장을 코팅해서 벽에 걸어준 것도 있고 말이다. 이 상장은 어떻게 보면 그냥 귀여운 해프닝 정도 일 수 있겠지만 흔들리고 있던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잠깐 본 사람들에게도 이런 피드백을 듣는 다라. 고민이 깊어갈 때쯤 한 가지 해프닝이 하나 더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거기 아저씨 한 분도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보더니 "야, 너 잘생겼다. 연예인 해야 될 것 같다. 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내리시면서 "나중에 TV에서 보자." 하셨단다. 뜬금없게 그냥 지나가다 시민 한 분한테 저런 피드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그냥 별생각 없이 아이에게 덕담을 건넨 걸 수 있지만 아이는 이 해프닝을 계기로 부모가 만들어 줄 수 없는 자신감 한 스푼을 추가한 것 같았다. 부모가 아무리 너 머리 엄청 작고, 호감형이야 라고 말해줘도 시큰둥하던 녀석이었는데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이 말한 건 더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한 듯했다.
이렇게 작은 물방울 하나 하나가 모여 바위에 구멍이 생길까 말까 할 때쯤, 구멍이 생기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한 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경험이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
때는 어느덧, 5학년 3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