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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누가 누가 잘하나 예심부터 방송까지

by 스테이시

KBS에는 노래 좀 한다는 초등학생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954년부터 지금 까지 방영되고 있는 '누가 누가 잘하나(이하 누누잘)' 라는 동요 프로그램이다. 나이 제한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동요로 제한되고 있는 만큼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주 출연자이다. 기본적으로 출연자들이 나와서 동요를 한 곡씩 부르고 MC가 이끌어가는 토크가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튜브에서 동요 제목을 넣고 검색하면 가장 먼저 누누잘 영상들이 뜨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요를 널린 알린다는 누누잘의 제작 목표는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누누잘의 오디션은 예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현재는 현장 예심이 사라지고 동영상 예심만 존재하고 있다. 가로로 된 동영상으로 아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예심에 지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뽑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직접 세어 보았는데 매달 예심에 지원하는 인원은 매달 최소 150명 정도이고, 뽑히는 인원은 30명가량이다. 단순한 수치로는 5 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선발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는 누누잘 여러 번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보인다.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이하 서소합) 1차를 합격한 이후, '어? 애 노래에 진짜 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곧 이어서 누가 누가 잘하나에도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얼마 전 봤던 세븐틴 부승관 씨 누누잘 영상도 영향이 컸다. 물론 누누잘 출연이 부승관 씨의 직접적인 데뷔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으나 유명한 가수, 게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세븐틴이 걸어갔던 길이라면 한 번쯤 가봄직 했다.


그래서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사실 아이에게는 그 이유를 미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예심에 제출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괜히 아이가 기대했다가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상을 찍을 때 피아노 반주 혹은 MR을 깔고 불러야 했기 때문에 그냥 노래 한 번 불러줘라고 넘어갈 수 있는 안건도 아니긴 했다. 누누잘 홈페이지에 가면 '무료 동요 반주 음원'이 있으니 웬만한 곡은 거기서 MR을 찾을 수 있다.


"KBS 동요 프로그램에 제출하려고 하는데 한 번만 각 잡고 불러줘."


라는 이야기를 아이가 듣더니


"엄마,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


이라고 망설이던 아이에게 나는 이게 그렇게 쉽게 붙는 게 아니니 방송 출연 할 걱정하지 말고 한 번만 부르자라고 설득을 했다. 그런데 영상을 찍을수록 어느 한 부분 씩 음이 틀리는 게 보였다. 정말 영상이든, 음악이든 편집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아무리 1분 이어도 원테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데 만족스럽기가 쉽지가 않다. 여러 영상을 보면서 이 부분하고 저 부분 하고 잘라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10번쯤 하자 아이가 지쳐 가는 게 보였다. 결국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하고 게 중에 나은 영상을 골랐다. 한 켠으로는 한 군데 틀리긴 했지만 아마추어 노래인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는 살짝의 방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누누잘 홈페이지에 예심 영상을 남겼다. 나는 새로운 예심이 시작하는 초기에 업로드했는데 그 뒤로 몇 번이나 홈페이지를 찾아 최종 몇 명정도가 예심에 신청하는지 남자아이는 몇 명 정도 되는지 가늠을 해보았다. 이름만 봐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150명이면 30명 정도가 남자 이름인 걸로 추정되었다. 1달 동안 누누잘 결과를 기다리던 그 사이, 서소합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 발표가 우리에게 왔다. 그 날 만큼은 승리에 취해서


"서소합이 됐는데, 누누잘은 당연히 되지 않을까."


라며 살짝 자만하기도 했다. 누누잘 1차 발표는 예정일 오후 5시에서 5시 30분에 나온다. 이미 이전 정보를 학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아침부터 홈페이지를 켜고 새로 고침을 눌렀다. 오후가 되자 이전 회차 예심 통과자 리스트 조회수가 막 올라갔다. 다들 나같이 기다리다가 예전 글을 눌러보는 것 같았다. 결국 발표는 5시 15분, 시간을 꽉 채워서 났다.


리스트 된 아이들 이름을 눈으로 따라 내려갔다. 번호는 점점 끝을 향하고 아 역시 1번에 되긴 어렵나 보다하고 낙담할 때쯤, 아이의 이름이 눈에 보였다. 와! 1트만에 합격이라니. 그 순간에는 정말 우리 아이가 노래를 잘하는 건가라고 착각을 해도 좋을 듯했다. 태어날 때부터 어떻게든 음악과 엮어보겠다고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어쩜 서소합 합격보다 더! 방송은 부담된다던 아이는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에 합격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그렇게 합격을 하면 KBS에서 오픈채팅방에 들어오라고 문자를 보내준다. 거기서 반전이 한 번이었다. 예를 들어 6월에 예심에 합격하면 7월이나 8월쯤 방송날짜를 지정해 준다고 생각하고 오픈 채팅방에 딱 입장했는데 오픈 채팅방에는 300명 가까운 인원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입장하고 대화명을 "예심합격한 달_ 아이 이름"으로 변경하라고 하는데 멤버 리스트를 봤더니 1월, 2월이라고 쓰여 있는 분도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딱 감이 왔다. 잘못하면 예심 자격 만료기간인 6개월까지도 대기해야 될 수 있다는 것을! 방법은 이러했다. 오픈채팅방에 합격한 인원을 모아놓고 2주일에 한 번 방송날짜를 주면서 출연을 희망하면 구글폼을 작성하라고 했다. 신청자가 많으면 그 안에서도 뽑히지 않을 수 있고 즉, 출연자로 선정될 때까지 계속 신청해야 되는 구조였다. 6개월 동안 그 오픈 채팅방에서 지지고 볶아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그 다음날, 2주 뒤 방송 출연 예정자가 급 취소를 했는지 1명을 모집한다고 해서 재빠르게 '손'을 들었다. 그렇게 2주 만에 방송 날짜를 받았다. 아마 예심 합격 후 한 달안에 방송 까지 나간 케이스는 우리아이가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날짜를 받으면 같은 날 방송 나가는 학부모님들끼리 단톡을 파준다. 거기서 방송에 대한 공지사항이 오고 간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었다. 예심 때 불렀던 노래라고 다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였고 직전 4개월 동안 누누잘에 안 나왔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게 우리가 아는 웬만한 동요는 4개월 안에 다 이미 나온 거라. 근데 다행히 아이가 예선에 불렀던 '겨울나무(정세문 곡)'은 선택이 가능했다. 그렇게 쉽게 쉽게 갈 수 있는 길 앞에서 나는 조금 더 어려운 길을 가보기로 했다.


'겨울나무'는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 오디션 지정곡이기 때문에 그 곡을 검색해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한정적일 것 같았다. 그러면 누누잘 녹화 이후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략적으로 대중성 있는 곡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곡은 출연이 결정되고 거의 한 시간안에 결정했어야 했는데 짧은 순간 많은 계산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누누잘 유튜브 조회수 Top 5안에 있는 '문어의 꿈'을 발견하게 되고, 촉이 왔다. 그래 이거다! 다만, 이 노래 원곡은 걸걸한 보컬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운 목소리를 가진 우리 아이와 어울릴지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그 당시 모험의 영역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곡을 할지 물어보고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돌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그림을 그렸을 때,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곡과 대중적인 곡 중에서는 후자를 선택하는게 후일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녹화를 기다리면서는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출연자 단톡방이 모아진 뒤로는 곡을 선정하고 어떤 키로 부를 것인지 정해서 악보도 올렸고, 당일 무대 의상 사진도 올렸고, 무엇보다 사전 인터뷰도 작성을 했다. 우리 아이가 출연한 회차 주제는 '어, 생각과 다르네?'였고 그것과 관련된 질문들을 써서 냈다.


- 첫인상과 달랐던 사람

- 갖고 싶었는데 갖고 보니 별로였던 물건 (경험)

- 좋다고 생각 못했는데 해보니까 좋았던 것들

- 우리 가족이 생각과 다르게 보일 때

- 장기자랑 (희망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지금 내 글에서 한 단락 길이로 각각 써서 내야 했다. 정말 시험 보듯이 열심히 써서 냈는데 생각보다 대본에 분량이 적게 반영되어서 나왔을 때는 조금 아쉬웠다. 중창단까지 하면 출연자가 11명이었기 때문에 내가 쓴 답변이 모두 반영되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 꼭 나왔으면 하는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일단 장기자랑은 20초 내외라고 해서 두 가지 버전을 냈고 가요를 부르고 싶다고 했는데 가요는 안 되는지 반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답변들을 작가님의 언어로 변환해서 16페이지짜리 대본을 방송 이틀 전에 준다. 그럼 그날부터 학원도 빠지고 달달 그것을 외워야 한다. 다만 현장에서는 MC 분들이 아이의 순서가 되면 아이 이름을 불러주셔서 생각보다 인터뷰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방송국 가기 전에 또 준비해야 했던 부분은 의상과 응원도구였다. 의상은 한복부터 교복까지 다들 다양하게들 입었지만 해당 사항이 없던 우리는 셔츠에 바지를 각각 구매했다. 남색, 검은색은 얼굴이 어둡게 나온다고 절대 금지라고 해서 샛노란색을 샀더니 아이가 너무 어려 보이긴 했다. 아, 참! 화장은 절대 금지라고 쓰였었는데 현장에서 보니 색조화장이 아닌 이상은 묵인이 되는 것 같았다. 응원도구는 인터넷에 누누잘 응원이라고 하면 나오는 마이크 피켓과 얼굴모양 손간판을 했다. 응원도구에 쓰는 문구로 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벽에 붙은 아이가 받아온 상장중에 '확신의 센터상'이 눈에 들어와 '확신의 센터 000'으로 피켓을 제작했다. 나중에 방송에 나온 것을 보니 얼굴 피켓은 조명에 반사되서 보이지 않았다.역시 방송에는 유치 찬란해도 반짝이가 최고라는 것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그렇게 녹화 당일 KBS에 도착했다. 우리는 프롬프트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현장에 그런 건 없었다. 녹화 현장을 보니까 데뷔(?) 무대가 MR도 아닌 AR도 아닌 오케스트라 반주에 인이어 없는 생라이브라니라고 생각하니 하드코어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프로 가수들조차도 인이어 끼고도 라이브 해도 음이 나가는데, 음악이라는 길 초장부터 정말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것아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아침 9시 30분이 되자 출연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공통적으로 아이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이 정도 무대쯤이야 이런 느낌들이랄까. 드디어 출연자가 다 모여서 오프닝 곡을 다 함께 불러봤는데 그때 느낌!


"와, 우리 애 빼고 다 프로네!"


카톡방에서 부모님들 사진을 봤을 때 다들 마이크 들고 대회에 나간 사진들이 하나씩 보였는데 이제야 그 모든 사진들이 이해가 되었다. 다들 프로무대러 같았다. 어쩜 그렇게 떨지도 않고 목소리도 쨍하게 큰지. 노래를 잘하는 건 덤이고. 무대라는 것에 서 본적도, 마이크로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 것도 처음인 우리 아이만 뭔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이 한 단어가 뭉글뭉글 가득 차 올랐다.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그 어렵다던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도 합격했지만, 도대체 우리아이가 누누잘 예심은 어떻게 통과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른 참가자들을 보니 누누잘 심사위원들의 안목은 정말 인정할 만했다. 함께 출연한 아이들은 정말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수준급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 녀석의 리허설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서소합 붙은 지 3주 차, 아직 발성이나 호흡 등도 본격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무대라는 것에 서본적도 없는 아이인데 내가 너무 서둘렀나 하는 생각에 죄책감 마저 들었다.


한 번뿐인 리허설에서 목소리가 들릴 동 말 동했던 아이는 본 무대에서는 이제 마이크를 쓸 때 어느 정도 목소리 크기로 해야 하는지 적응이 됬는지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긴 했다. 정말 노래가 끝날때까지 가슴을 졸인다는 표현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맞았다. 제발 틀리지마라 틀리지마라라고 주문을 걸면서 보던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 때, 아이는 '참 우울해' 라는 마지막 가사를 뱉었고, 마지막 글자 '해'의 음정이 살짝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그 때 나는 정말 눈썹이 움찔 했다. 이 녀석, 그렇게 노래할 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말라고 당부했건만 마지막 음에 가니까 살짝 긴장을 놓은 듯 했다. 아이도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그 애기를 하더라.


"마지막음 아쉬워."


방송을 보니까 아이도 마지막 음을 뱉은 순간 흔들린 것을 느꼈는지 마지막 음 뱉은 후, 앗차 싶은 표정이 지었더라. 나는 아이와 누누잘을 준비 하면서 역사가 되려나, 흑역사가 되려나 장난을 치고는 했는데 결과는 우리의 손을 떠난 것 같다. 토크를 할 때는 MC 두 분이 현장에서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장난을 잘 추셔서, 아이들이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토크를 먼저 해서 긴장을 풀고 무대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녹화 순서는 노래를 순서대로 다 녹화하고, 토크를 몰아서 찍었다. 오케스트라 스케줄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9시 30분에 시작된 녹화는 1시 30분쯤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우수상'이라고 찍힌 '참가상'도 모두 나눠 받고 예쁜 MC들과 사진도 찍었다. 아, 그리고 중요한 것! 출연료가 있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번 돈, 3만 원! 여러 가지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누누잘이었다. 아이가 진짜 아이돌이 된다면, 자료 영상으로 쓰이게 될 한 장면, 누누잘! 안 그래도 작가님이 그러시더라.


누누잘의 최고의 아웃풋이 부승관 님이시라고.


아이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는데, 나에게는 서소합 최종 합격과 누누잘 예심합격으로 한창 올라있던 아이의 노래에 대한 믿음을 오히려 다시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실제 이 정도로 잘하는 아이들을 이렇게나 많이 본 것도 처음이었고, 도대체 이 녀석의 노래는 어느 날은 "오~" 싶었다가 어느 날은 "아..." 싶은 걸까. 언제 누가 들어도, 노래가 안정적일 수는 없는걸까. 그게 연습으로 되는걸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노래는 시켜야 해 말아야 해, 아니 아이돌은 될 수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의심이 들 때는 증명을 위한 실험을 계속 이어나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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