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홍해가 갈리기 시작하 듯,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한 해였다. 서초 어린이 예술제 합창단 선발,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이하 서소합) 선발, KBS 누가 누가 잘하나 방송까지. 단 몇 달 사이 외적으로 보자면 우리 가정이 돈과 시간을 쓰는 분야가 바뀌게 되었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이제 자신의 꿈은 노래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공고히 해가는 것 같았다. 그 시점,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창단 속성 과외와 방송 준비까지 하면서 우리는 아이의 공부 학원(영어, 수학)들을 잠시 멈춰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결정해야 했다. 한정된 자원을 다시 원래 루틴으로 돌아가 공부 학원에 쓸 건지, 진짜 미친 척 음악에 써 볼 건지 말이다. 참 우스웠다. 난 서소합이 무료 음악 교육이라고 너무 좋아했는데, 서소합에 붙고 나자 돈을 써서 본격적 음악 교육에 나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말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아이가 더 재미있어하는 것에 조금 과격한 말로 베팅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음악 쪽 학원을 보내 자는데 1차적 합의에 이르렀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믿어주고 더 나아가 밀어주었다는 경험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씨앗만큼이라도 가진 노래에 대한 마음에 물을 콸콸 주고 싶었다. 물론 너무 콸콸 주면 부작용이 있어 밀당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음악성을 키운다 = 아이돌이 된다
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둘 중에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두 가지 다 충족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아이돌이 된다면 메인보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래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메보'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가장 먼저는 보컬 전문 학원에 오디션 준비반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 사실은 아이를 통해 서소합 입시 준비해 주신 레슨 선생님께 들어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노래를 잘하고 싶다면 지금 기교를 배우는 가요를 배울게 아니라 호흡이나 발성 같은 기본을 배우는 성악을 시작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요와 성악, 두 가지 재질이 너무 다른데. 지브리와 디즈니 재질이랄까. 흠. 혼란스럽긴 했지만 일단 보컬학원부터 먼저 상담을 가기로 했다.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학원을 가야 할지 막막하긴 했지만, 신사역과 논현역 언덕 중간에 있는 학원에 상담을 예약했다. 단순히 상담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레벨테스트 같이 노래를 두어 곡 불러볼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하셨다. 사실 그때까지 아이가 가요를 흥얼거리기는 했지만 한 곡을 완창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무슨 곡을 준비해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세븐틴의 '아주 Nice'와 아이브의 'I AM' 가사를 프린트하여 준비해 주었다.
학원에 들어서자 학원 출신 가수들의 앨범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원에 돌아다니는 중, 고등학생 남짓 되어 보이는 학생들 중에는 얼굴이 특출 난 학생들도 있고 느낌이 힙한 학생들도 있었다. 먼저 신청서를 섰고 취미반, 입시반, 오디션 준비반 중에 나는 오디션 준비반에 동그라미를 크게 쳤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데려가서 노래를 들어보시겠다고 하시고 데려가셨다. 10분 정도 뒤 선생님께서는 돌아오셔서 노래를 두 곡 부르고, 청음 시험을 봤다고 하셨다. 그리고 피드백 주시기로는 일단 청음은 모든 문제를 맞혔고, 노래는 음색이 곱고 고음이 잘 올라간다고 하셨다. 아직 기교나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레슨 받고 배우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 가능성은 아이돌 오디션에 합격 가능성을 말하는 거였다.
물론 학원은 어떻게든 등록을 시키는 게 목적일 테니 그 말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이러저래 등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런 질문도 했다.
"솔직히 노래도 외모도(학원에선 이걸 매력도 라고 표현한다) 정말 정말 영 아니면 등록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나요?"
선생님은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는 듯이 웃으셨다. 일단 보컬 레슨은 일대일 레슨으로 진행되고 1회에 11만 원이었고 한 달에 44만 원이라고 하셨고 댄스와 같이 들을 경우 한 달에 70만 원이라고 하셨다. 댄스도 해야 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는데 그때 이것도 엄청난 규모의 예산의 투입이 필요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방 오디션은 한 달에 8회 정도 진행하는데 오디션 준비반을 수강 한지 2달 이상 지나면 오디션 참여를 권장한다고 했다. 보통 기획사에서 선호하는 나이대는 초6에서 중2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직 초5니 빠르게 결과를 내려는 마음보다는 일단 실력을 키운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이돌 오디션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가장 좋은 나이는 초5구나 하고 말이다. 초5부터 시작해서 실력을 쌓아야 초6부터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두드려 볼 수 있는 구조구나 싶었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어때? 학원 다녀보고 싶어? 근데 이건 그냥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고 오디션에 계속 도전한다는 뜻이기도 해. 아이돌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마음이면 하고 그 정도 마음이 아니면 하지 말고."
라고 조심스레 묻자, 아이는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 해보고 싶어!"
그 순간이었다. 내 아이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의 주체가 바뀐 순간이. 아이는 합창단 입시 준비부터 조금씩 쌓아왔던 자신감을 기반으로 자신의 꿈은 가수라는 명제를 완성한 것이었다. 그렇게 보컬레슨이 시작되었다. 강사로는 K-POP 스타 출신의 여자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안 그래도 방송 때 보고 너무 목소리 좋다고 생각해 왔던 분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보컬 레슨은 시작이 되었고, 성악 선생님을 만나 볼지도 고민하다가 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보자 하고 방배역을 거점으로 활동하시는 성악선생님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보시더니 대뜸 자기 제자 중에 아이돌 연습생이 있는데 그 친구보다 잘생겼다며 성악 말고 아이돌 쪽 준비하는 게 낫지 않냐는 말씀부터 하셨다. 선생님께서도 성악가로 살아오셨지만 성악가로 사는 삶을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유학까지 다녀와도 교수가 되지 않는 이상 떠돌아다녀야 하는 봇다리 장수 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성악가가 되려는 사람만 성악을 배웠지만, 자신이 뮤지컬학과 강사로 출강 중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뮤지컬 배우들도 기본기 때문에 성악전공자에게 배운다는 말씀을 건네셨다. 그리고 아까말한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친구도 계속 자신한테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하셨다. 그 친구도 성악가가 되려는 것보다는 예중입시(예원학교, 선화예술중학교)를 위해 배운다고 말씀하셨다. 성악가가 되지 않아도 예중에 가는 건 큰 스펙이나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였다.
아이의 가요와 동요를 들어보신 선생님께서는 혹시 성악곡 불러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아이는 성악에 대한 경험은 전무한 상태였다. 즉석에서 선생님은 한 마디씩 피아노를 치시면서 "Tu lo Sai"라는 성악곡을 따라 부르게 해 보셨고 뭔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아이는 노래를 이어갔다. 그렇게 대략적인 상담을 마치고 나왔다.
정리하자면
1. 성악을 배운다는 게 성악가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시대는 지났다.
2. 만약 (성악가가 꿈이 아니어도 특별한 경험을 위해 ) 예원학교 또는 선화예중에 가고자 한다면 초5 때 성악을 배우기 시작해서 초6 입시를 치르게 된다.
3. 뮤지컬배우들도 성악가에게 강사를 만날만큼 성악이 주는 기본기는 의미 있다.
였던 것 같다.
"엄마, 이것도 재미있는데?"
라고 말했고, 나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럼, 이것도 배워볼 테야? "
이것은 우리 가정 회계지표에 빨간불이 켜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을 줄여야 할까? 커피? 외식? 아무리 떠올려도 무리스러운 영역이었지만 아이가 이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맑게 말하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이성을 이겨버렸다. 결국 성악도 일단! 수강해 보기로 했다. 다만 성악가가 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성악은 쭉 고정이라기 어느 시점까지만 해보기로 가족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했다.
그렇게 노래를 배운다는 팩트로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을까 했는데, 왠 걸! 우리는 배운다는 것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치열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바로 끝없는 아이돌 오디션과 성악 콩쿨들의 향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