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학원에 전화 문의를 했을 때, 수강 한 지 두 달 이상 되면 내방 오디션 (기획사들이 학원을 찾아오는 형태)에 참여할 것을 권장한다고 안내를 받았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세 달째부터 오디션에 계속 참여하면 너무 떨어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상담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러했다.
"학원생들에게 떨어지는 건 너무 흔한 일상이라서요. (아무렇지 않아요) 오디션 현장도 자꾸 경험해야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냥 자꾸 참여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땐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학원 생활이 두어 달쯤 지나자 무슨 말인지,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 명칭은 거창하게 오디션 준비반이지만 일주일 겨우 한 시간 보컬 레슨을 받는다고 눈이 번쩍할 만큼 드라마틱하게 실력이 향상될 리는 만무했다. 실력이 는다 라는 말보다는 오디션 준비가 되어간다는 말이 더 적합했는지도 모르겠다.
보컬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라이즈, 보넥도, 투어스 등 5세대 남돌의 노래 중에 하나를 골라보라고 하셨고 그중에 청량 콘셉트를 가진 투어스의 '내가 S면 넌 나의 N이 되어줘'를 첫 레슨곡으로 선택했다. 참 곡 선정은 어렵고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이게 발라드를 부를게 아니면 대부분 그룹의 노래고 그 노래들은 원래 최소 6명에서 10명씩 나눠서 부르는 노래인데 혼자 부른 다는 것이 참 멋지고 잘 불러지기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에 이 곡을 골랐을 때는 나도 이 노래를 외워서 아이의 연습을 도우려고 이 노래만 하루 종일 들었다. 일주일쯤 지나니까 300번 플레이 횟수가 될 정도였다. 절대음감이 아닌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멜로디가 잊힐 수 없을 만큼 많이 듣고, 외워서 가장 비슷하게 카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노래를 마스터한 나는 이 녀석이 음정이 틀릴 때마다 잔소리를 참기가 힘들었다. 내가 잔소리하면 이 녀석은 연습하기가 싫어지고 무한 굴레를 돌다가 나는 내가 이 녀석의 오디션곡을 더 마스터해 버리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알수록 잔소리를 참을 수 없어져서.
이 노래를 두어 번 배웠을 때 선생님께서는 아이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며 한 곡을 추천해 주셨다. 아이유의 'Love wins all'이었다. 어려운 노래긴 했지만, 내가 들어도 아이 목소리와 너무 잘 어울렸다. 느낌이 있었던 이 곡은 아이가 첫 오디션을 볼 때 부르게 된 노래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이 곡을 부르는 녀석의 모습은 내 눈앞에 늘 선할 것 같다. 녀석은 아직 변성기 이전이기 때문에 이 곡을 원키로 불러댔다. 노래 자체도 너무 좋아서 준비하면서 즐거웠던 곡이었다.
그 뒤 준비했던 곡은 저스틴 비버에 Baby였다. 선생님께서 글로벌 감각을 요구하는 기획사들이 있으니 영어로 된 곡도 준비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준비한 곡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오디션에서 가장 많이 부른 곡이기도 하다. 다만 딱히 고음이 있는 곡이 아니어서 조금 무난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 7-8번 레슨을 받고 두 달이 지나자 암묵적으로 오디션을 참여하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학원에는 매달 8개 정도의 회사가 내방 오디션을 오는데 모든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떤 회사는 여자만 원하는 회사도 있었고, 중학교 이상이라던지 나이 제한이 있는 회사도 있었고, 댄서들이 많이 소속된 댄스를 중점으로 보는 회사들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렇게 첫 오디션을 신청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당일 학원에 갔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와 전혀 달랐다. 관계자 분이 오셔서 학생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종이에 막 쓰시고 혹은 질문도 하시고 그러나 싶었는데 웬걸, 아주 젊은 학생 같아 보이는 분이 오셔서 그냥 카메라를 세워 놓고 아무 커뮤니케이션 없이 한 명씩 들어가서 1분 정도 노래하고 바로 나오고 그런 형태였다. 아마 막내 직원이 와서 영상을 찍어서 가져가면 관계자분 들이 검토해 보겠다 이 정도 느낌 같았다. 그 뒤로도 이런 느낌의 오디션은 종종 있었다. 영상 오디션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시간. 그렇지만 지원자들에게는 이 기회조차도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디션은 면접과 매우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불합격은 굳이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디션을 보고 아무 말이 없으면 그냥 또 일상을 살다가 또 오디션을 보는 삶. 만약 불합격이라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말조차 사치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Love wins all'을 목석같이 서서 불렀고 그렇게 첫 내방 오디션이 흐지부지 지나갔다. 잔뜩 긴장한 녀석을 보니 오디션을 보는 것 자체도 훈련이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오디션을 즐기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것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뒤에도 내방 오디션을 몇 차례 참여하였다. 역시 몇 군데는 커뮤니케이션 전혀 없이 영상만 찍었고 간혹 관계자 분이 진심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오디션도 소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번째 참여한 오디션에서 처음으로 아이는 질문을 받았다.
"노래는 얼마나 배웠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저 질문의 정확한 목적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처음으로 관심을 받았다는 데서 한 걸음 내디딘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는 아주 조금씩 자신감과 실전 감각을 쌓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바로 다음 오디션에서는 한 걸음 더 진전이 있었다. 바로 오디셔너들의 희망, 추요(추가 요청)를 받은 것이다.
"노래는 얼마나 배웠어요?"라는 뭔가 공식 질문 같은 것을 받은 후 또 다른 노래가 있으면 불러보라고 했다. 녀석은 첫 곡으로 Baby를 부르고 추요로 Love wins all을 불렀다. 그 뒤 관계자 분은 한 번 더 추요를 하셨는데 그게 바로 춤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띠로리!
녀석은 춤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춤을 앞으로 배워볼 의사만 있다고 표명한 채 오디션이 종료되었다. 그때 참 한 대 딱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노래가 되면 춤은 크게 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플랜을 짜고 있었는데... 아이돌을 꿈꾼다면 춤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방 오디션들 외에도 엔터 대기업 들에는 주기적으로 혹은 상시적으로 영상 오디션들이 열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오래된 대기업 상시 카톡 오디션에 'Love wins all' 영상을 제출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카톡 오디션은 회신 올 확률이 극악하다고 했다. 대부분 읽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지나고 답장이 왔다.
"학생이 어려서 내년에 다시 한번 지원해 주세요."
흠, 일단 답장이 와서 놀라웠고 나이 제한이 있는 건지 묻자 그런 건 아닌데 영상 속 학생을 보고 한 피드백이라고 하셨다. 일단 요약하면 불합격에 대한 통지라고 봐야 하나 싶었는데, 내년에 다시 지원해 달라고 하니 이건 뭔가 싶기도 하고 남편은 아마 관용적 인사 같은 것일 거라고 했다.
그다음에는 다른 대기업에서 한 번 제출하면 전 계열사에서 다 검토하겠다는 영상 오디션을 진행하였다. 찍어 놓은 영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것과 누가 누가 잘하나 예선에 냈던 동요 영상을 냈다. 내고 나서도 스스로도 우스웠다. 동요 영상을 내다니. 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누가 누가 잘하나 방송 출연 영상을 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그냥 내보는 거지 이걸로 뭔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그 메일이 오기 전 까진.
그 회사 이름으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귀하를 모시지 못해 아쉽다.'라는 상투적 불합격 안내까지 해준단 말이야 하고 친절 하구만 하고 이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대면 오디션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