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by 월요희비극

첫눈에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에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 다른 말을 찾아 헤매다가도, 결국 다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존재가 생겼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사랑이 귀한 줄 몰랐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다짐하지 않았고, 너를 사랑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너에게 사랑을 약속하지 않았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너의 기쁨이 나의 행복이 되었다. 돌아보면 신기한 날들이었다.

너는 틈만 나면 내게 몸을 기댔다. 그럴 때면 네 무게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호흡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는 몸과 따뜻한 체온, 작은 움직임 같은 것들도. 살아있는 너의 실감은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까지 일깨워주었다. 병든 나를 파고들면서 아직은 살아야 한다고, 살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게 해줬다. 그게 네가 준 사랑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너를 잃고 난 뒤에야 그동안 네가 준 사랑에 익숙해졌다는 걸, 그래서 너라는 행운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행운은 귀해서 행운이지. 당연하면 행운이 아니지. 너를 만난 것, 너를 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해준 것.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너를 잃었다. 행운은 드물어서 너를 잃고 난 뒤에 네가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너만 없고 모든 것이 그대로다. 평화롭다. 네가 있던 자리에서 네 흔적을 찾으며 사실은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음을,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음을 자꾸만 깨닫는다. 이해하지 못한 공식을 암기하는 것처럼. 모르지만 안다. 알지만 모른다. 그 괴리에서 자꾸만 멀미가 난다. 공식은 정확해서 내 이해와 상관없이 답을 내놓는다. 답지에 적힌 정답은 나는 너를 잃었다는 것.

나는 너를 잃었다. 나는 너를 잃었다. 성실하게 흐르는 시간은 너를 당연하게 여긴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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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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