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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갖고 싶은 건

영원의 교환일기 제10편 _ 영에게

by 무늬

안녕 영!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계절의 한 페이지가 또 스르륵 넘어갔구나 느꼈어. 하루 사이에 그새 10도나 떨어진 거 있지? 어찌나 추운지, 버버리 코트를 힘껏 여민 채 오들오들 떨며 출근을 했어.


그거 알아? 우리가 이 교환일기를 쓴 지 어느덧 열 번째야!(짝짝짝) 블로그에서 교환일기를 쓰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스무 편이라니, 우리 꽤 꾸준하지? 앞으로 결혼 준비부터, 신혼 일상까지, 우리의 발자취가 이 일기에 차곡차곡 쌓이겠지. 영과 함께 써 내려가는 이 기록이 내겐 참 소중해.


지난번에 영이 그랬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니고, "우정, 사랑,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요즘은 또 한 편으로는 돈이라는 가치에 자꾸 휘둘리는 느낌이 들어. 결혼과 신혼집 계약이라는 큰 산 앞에서, 돈이라는 현실이 나에게 계속 선택을 요구하는 것 같아. "등산화 신고 오를래, 케이블카 탈래?"하고.


나는 지금 애인과 함께 8평 남짓한 원룸에서 살고 있어. 작지만 애정을 담아 꾸민 이 집이 난 참 좋아. 하지만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방이 하나는 더 있었으면 해. 두 사람의 살림을 합치니까 짐이 많아져 정리가 잘 안 되더라고.

이왕이면 노란 장판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화장실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정도로는 넓었으면 좋겠고, 베란다 밖이 막혀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렇게 점점 희망사항이 하나둘 늘어다나 보니,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갖춘 집은 그만큼의 값을 요구하니까. 그래서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월세, 전세, 매매, 대출'같은 회색빛 단어들로 가득해.


어린 왕자가 네 번째 별에서 만났던 사업가 기억나? 별을 세고 또 세며 별을 그것을 '소유한다'라고 말하던 사람. 별의 아름다움은 보지 않고 숫자와 소유에만 집착하던 사람. 이렇게 돈만 생각하다가는 그 사업가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어.


참 신기하지.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 같아. 돈이 가장 중요하면, 남들도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가 가장 먼저 보이고, 외모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하나하나 뜯어가며 비교하니까.


나도 그런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작은 평수에 살면, 구축 아파트에 살면, 인테리어가 예쁘지 않은 집에서 살면 타인에게 얼굴을 붉힐까 봐. 사실은 내가 먼저 세상을 돈의 기준으로 바라봤던 거지. 그렇지만 영이 말했듯,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건 내가 세운 가치를 이정표 삼아 걸어가는 길이라는 걸 요즘 새삼 느껴.


나무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교환일기를 쓰는 내 앞에는 애인이 우리가 같이 살 집을 찾아보고 있어. 우리 옆에는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밀푀유 디저트가 놓여 있고. 지금처럼 살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인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서로를 부지런히 안아주는 집에서 살고 싶어. 조금 덜 가지더라도,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말이야.


나중에 우리 신혼집에 꼭 놀러 와, 영.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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