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교환일기 제1편 - 영에게
영에게…
안녕, 영. 교환일기를 쓰는 게 오랜만이라 조금 떨리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어. 내게 일 년의 흐름은 두 가지로 나뉘어. 기온이 올라가는 때와 떨어지는 때.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나도 점점 살아나. 반대로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그 날부터 점점 굴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한없이 느려져.
영도 알다시피 난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아. 오늘은 그 이유를 한번 말해볼까 해.
어제 피부과를 다녀왔어.
넓은 대기실에 나 혼자뿐이었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더라.
소파에 앉아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 한참 후, 모니터에 내 이름이 크게 떴어.
진료실에 들어가자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의사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어.
“어떤 일로 오셨어요?”
나는 바지를 걷어 내 종아리를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줬어.
“다리가 이렇게 돼서요…”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양쪽 종아리에는 붉은 반점이 산골짜기 밤하늘 별처럼 가득 박혀 있었어.
원래 겨울이면 피부가 건조해서 종종 긁곤 했는데 작년 겨울에는 유달리 심했어. 긁고 또 긁고, 또 또 긁다가 결국 피부가 다 까지고 피가 나서 바지에 달라붙는 지경이 되어버렸어.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부과를 찾게 된 거지.
의사는 내 다리를 유심히 보더니 물었어.
“흠… 혹시 최근에 면도하셨나요?”
“최근은 아니고… 아, 여름에 한 번 했었어요!”
맙소사. 그제야 떠올랐어. 지난여름, 인스타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샀던 그 면도기.
롤러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며 털을 죄다 뽑아버리는 면도기였어. 면도를 하는 모델들은 하나같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브라질리언 왁싱도 가능하다고 해서 더 혹했어. 이거 하나면 모든 털 고민이 해결될 것 같아 바로 결제했지.
며칠 후 면도기가 도착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면도를 시작했어. 그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 롤러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털이 뽑힌 자리가 미친 듯이 따끔거렸거든.
(이걸로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다가는 털을 다 뽑기도 전에 내 영혼이 먼저 뽑혀나갈 것 같았어.)
그래도 한 번은 제대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다리와 팔에 있는 털을 다 밀었어. 혹시 몰라 소독약도 꼼꼼히 발랐지.
그런데 면도를 하자마자 내 모공이 어디 있는지 다 보일 정도로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어. 하지만 다음 날 괜찮아졌길래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저 예민한 내 피부가 놀랐나 보다 했지.
그런데 그 면도기가 원인이었던 거야.
“면도를 할 때 균이 옮아서 모낭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나저나 이거 색소침착 오래갈 텐데… 스읍.”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어.
"당분간 면도는 절대 하지 마시고요. 먹는 약이랑 바르는 약 처방해 드릴 테니 2주 후에 오세요."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어.
털에 대해 그렇게 오래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어.
'이까짓 털이 뭐라고 이런 고생을 하나.'
털 없는 매끈한 다리를 가져보겠다고 한 면도가, 오히려 이번 여름 원피스를 못 입게 만든 주범이 되어버렸다니.
게다가 이 붉은 반점이 검게 변해 오래 남을 수도 있다니.
털 밀려다가 오히려 털도 못 밀게 된 처지라니.
스스로가 측은하게 느껴졌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의 나를 돌아봤어.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싸우고 있었어.
하나는 외적인 모습이 내 가치를 올려주길 바라는 마음.
다른 하나는 외모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10대 때는 남들이 해주는 외모 칭찬이 기분 좋았어. 그럴 때마다 우쭐해졌고, 외모로 인정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20대가 되고 탈코르셋 운동이 퍼지자 내가 가지고 있던 외모에 대한 관념도 송두리째 달라졌어. 외모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이기기 시작한 거야. 사회가 주입한 미의 기준을 하나둘 벗어던질수록 해방감이 몰려왔어.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나도 모르게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저 사람은 능력보다 외모로 인정받고 싶은 걸까?’ 같은 날이 선 생각이 불쑥 떠오르곤 했어. 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여전히 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나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어.
혹시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라는 영화 봤어? 내가 최근에 본 영화 중,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화였어. 나이가 들어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강제하차당한 여자, 엘리자베스가 다시 아름다워지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야. (하지만 잔인한 걸 못 본다면 추천하지 않을게. 나도 보면서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았거든.)
영화가 끝나고 충격이 가시지 않아 계속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어봤어.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면 안된다”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냐”는 것이었어. 결국, 내가 나의 모습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아름답다’의 뜻을 알게 됐어. ‘아름’은 ‘나’라는 뜻이래. 결국, 아름답다는 건 곧 나답다는 말인거지.
30대가 되면 취향이 확고해지고,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될 줄 알았어. 하지만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야. 그리고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두렵고 신경쓰여.
하지만 하나는 결정했어.
내 다리가 어떻든 간에, 내가 좋아하는 여름원피스는 그냥 입기로.
답장 기다릴게.
2025년 3월 16일
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