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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어떻게 열어요?

영원의 교환일기 제3편 - 영에게

by 무늬

영에게…


안녕, 영!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었네.
7년 동안 우리가 함께한 날들을 모으면 한 달쯤 될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될지도.
아무튼 우리는 혜성처럼 멀어졌다가도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교환일기로 나누는 사이가 되었어.


처음 봤을 때의 영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지만, 요즘의 영은 뭐랄까, 내공이 쌓인 사람 같아.
자기를 잘 아는 사람만이 내뿜을 수 있는 단단함이 눈빛에 깃들어 있다는 게 느껴져.
바깥이 아닌 안으로 시선을 돌려 충분히 자신을 바라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
영이 지난 교환일기에서 이야기했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가꾸는 노력 때문이겠지?


나는 ‘봄’이란 말이 다른 단어와 붙었을 때 풍기는 어감을 좋아해.
봄비, 봄볕, 봄햇살, 봄밤, 봄바람.
싱그럽고 따스한 이 단어들이 내 솜털을 간질이는 것 같아.

일 년에 몇 안 되는, 온도도 습도도 적당한 이 계절에, 나는 봄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지내고 있어.
올해 들어 하고 싶은 일,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죄다 발을 들여, 문어발을 넘어 지네가 되어버렸지 뭐야.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들에 정신이 팔려 살다 보면, 어느새 KO 당하듯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버려.


영이 지난 교환일기에서 나에게 무엇에 몰두하냐고 물었지.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내 숨통을 틔워주는 게 있는데, 바로 요가야.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 어느 날, 문득 요가를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집 앞 요가원의 문을 열었을 때, 짙은 인센스 향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 불 꺼진 실내는 은은한 무드등 덕분에 부드러운 어둠이 깔려있었어. 여섯 명 남짓의 회원들과 선생님이 매트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나도 재빨리 요가복으로 환복한 뒤 빈 매트에 앉아 몸을 풀었어.


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입을 열었어.


"4월은 만물이 생동하는 달입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가슴을 활짝 열고 봄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봅시다. 4월은 가슴 열기의 달입니다."


'가슴을 열라고요...? 제 가슴뼈는 단단히 잠겨 있는데요...'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동작들을 하며 그 말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

두 팔을 뒤로 모은 채 가슴을 벌리고, 허리를 돌려 어깨를 최대한 뒤로 보내기도 하고,
가끔은 기인열전처럼 몸을 꺾으며 가슴을 펼쳐야 했어.

선생님의 설명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옆 회원들의 동작을 곁눈질하며 모양새만 비슷하게 따라 했지.
동작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여기저기서 끙끙대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요가원이 아니라 곡소리 페스티벌이 된 상황이 웃겨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세를 버텨보려 애썼어.

평소라면 절대 꺾지 않을 각도로 몸을 꺾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어.
무엇보다도, 남보다 오래 버티려고 욕심내다 보니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더라.
숨을 멈추니 어지럽고, 어지러우니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어.

결국 자세를 멈추고 영혼이 반쯤 털린 채로 선생님께 토로했지.


"선생님... 너무 어지러워요... 토할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어.


"숨을 참아서 그래요. 아주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세요."


숨을 쉰다는 건, 그 순간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일이었어.
다른 데로 달아나려는 정신을 다시 끌어와 내 몸과 함께 머무는 일.

숨에 집중하며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다른 걱정들이 하나둘씩 멀어졌어. 오로지 나홀로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어.


힘겨웠던 동작이 끝나고 가부좌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가슴을 열면 관대해집니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집니다."


하루는, 도저히 못 해낼 거라 생각했던 자세를 끝까지 버텨냈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인 일상 속에서도, 몸은 나를 따라주었구나.

여러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기만 했었는데, 모든 걸 조금씩 해내고 있는 내가 문득 대견하게 느껴졌어. 가슴을 여니 마음도 조금은 열렸나 봐.


나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고,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어. 결국 내가 겪는 모든 경험이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거라고 믿거든.
하지만 고생도 정도껏 해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

단번에 멀리 갈 수는 없어도,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내 속도로, 가끔은 쉬어가며 나아가야겠지.


영의 모토가 '즐. 건 사람'이잖아?
영은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궁금해.


답장 기다릴게.
그럼 이만, 총총.


2025.4.27.

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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