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며드는 마음에 대하여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애초에 좋아할 마음은 없었는데, 어느새 그냥 좋아지고 마는 그런 순간들.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내 옆에 조용히 자리 잡은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나에겐 토마토가 그랬다. 토마토가 대체 뭐가 맛있다고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고 주스로도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토마토의 치트키라는 설탕을 잔뜩 뿌려도 그 맛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 우리 집 냉장고에서 토마토는 거의 김치와 동급으로 언제나 상시 대기 중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
언제부터였는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날 토마토를 입에 넣었는데 예전만큼 불쾌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아 두어번 샀다가 어느새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을 뿐이다.
이제는 장을 볼 때 야채 코너로 가 자연스레 가장 먼저 토마토을 고른다. 주먹만 한 토마토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딱 아기 볼만한 방울토마토를 집는다. 이 방울토마토는 일주일 동안 샐러드, 반찬, 혹은 후식 등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우리 집에 초대할 때 꼭 소개하는 레시피가 있다. 바로 방울토마토를 제육볶음과 함께 곁들여 먹는 것.
먼저 앞다리살로 만든 제육볶음을 프라이팬 가득 매콤하게 볶는다. 그다음 깻잎을 씻어 물기를 턴다. 방울토마토는 쌈에 들어갈 수 있게 반으로 자른다. 이제 깻잎을 손에 올려 젓가락으로 제육을 보기 좋게 올리고, 화룡점정으로 방울토마토 반 조각을 올려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매콤한 제육과 향긋한 깻잎, 그리고 토마토의 은은한 단맛과 산뜻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처음 이 음식을 대접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다가도,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홀린 듯 쌈을 싸 먹기 시작한다.
이 레시피는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방울토마토를 가엽게 여긴 나머지, 그날 저녁 만들었던 제육과 함께 먹어보자는 가벼운 도전의식에서 시작된 나의 유레카였다.
방울토마토는 언제나 냉장고 한켠에서 발그레한 볼로 수줍게 속삭인다. “이번엔 이렇게 먹어보는 거 어때? 여기 넣어도 맛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오늘도 그 앙큼한 유혹에 넘어가 토마토를 곁들인 신메뉴를 개발한다. 이런저런 레시피를 시도했지만 아직 제육토마토쌈을 이길 대항마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방울토마토는 좀 이상한 존재다. 처음에는 썩 끌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냉장고에 없으면 그 공백이 너무도 선명하다. 아무렇지 않게 곁에 머무르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진부하고도 소중한 방울토마토의 맛.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