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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퇴사한 이유

83년생 이야기2

by 신영환


결국 퇴사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만 62세까지 철밥통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을 말이죠. 많이들 말렸습니다. 그 아까운 걸 왜 포기하냐 말이죠.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모든 것은 각자의 상황이 다릅니다. 상황에 따라 옳은 것도 틀릴 수 있죠.


안정적인 직장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 직장에서 내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면요? 예를 들어, 건강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혹은 급등하는 물가에 맞지 않게 월급이 너무 적다면요? 아무리 오래 일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과연 안정일까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니 이 두 가지가 제가 퇴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삶이 영원히 멈춰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퇴사 전에 몸과 마음이 아파 휴직하면서 원래 제가 승진하면 가게 될 자리에 다른 사람이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가 승진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승진 발표가 나기 전에 이미 아팠거든요. 인사권자들의 마음속에서는 결정이 되었을는지 몰라도 저는 알 수 없었죠. 나중에 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또다시 가슴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왜 ‘또다시’라고 하는지는 기존 작품 《83년생 이야기》의 심장마비 편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승진한 직장동료가 2년 만에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허리가 계속 아파서 ‘디스크’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통증이 멈추지 않아 한참 후에 정밀 검사를 했답니다. 이미 병명을 알아버리면 시한부가 되는 ‘췌장암’이었습니다. 주변에 이 병에 걸리고 나서 6개월 이상 살아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나 직장동료도 병가를 내고 입원하더니 시간이 조금 흘러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일 그가 승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내가 멀쩡해서 휴직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또한 상상해 봅니다. 다가올 운명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감히 ‘만일’을 생각해 봅니다. 혹은 그 ‘만일’이 통해서 제가 그 자리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또 상상해 봅니다. 저 또한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경제적 위기 또한 치명적인 이유였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외벌이로는 먹고사는 게 팍팍했지요. 아이를 낳기 전 일하며 모은 아내의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아파트 대출금 등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항상 적자였습니다.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엔 아끼고 또 아껴봤습니다. 하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월급이 오르는 것보다 물가 상승률이 더 빨랐기 때문이죠.


하루는 아내가 눈물을 보였습니다. 아니 펑펑 울었습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쉽게 진정되지 않더군요. 한참 후에야 ‘퉁퉁’ 부은 눈을 쳐다보며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운수 좋은 날이었다고 해요. 천 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서요. 원래 5천 원 정도 하는 콩나물 한 상자를 싸게 샀으니까요.


덕분에 콩나물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요리를 다 했다고 해요. 콩나물무침, 콩나물국, 콩나물찜, 콩나물 부침개까지 말이죠.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해요. 요리 사진을 자랑하려고 친정엄마한테 메시지로 보냈는데, 답장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해요.


‘그런데 고기는 어디 있니? 애들 한창 클 때인데 고기 먹여야지.’


사실 아끼고 있는 것 안 들키려고 애를 쓰고 있던 터라 더 민망했다고 해요. 간신히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는데 그리곤 울분이 터져버린 거죠. 저를 탓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인이 부럽다고 하더군요. 친한 지인은 정육점에 미리 넉넉히 돈을 적립해 뒀다고 해요. 고기가 당기는 날이면, 지갑이 없어도 언제든 살 수 있었던 거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귀가 새빨개졌어요. 부끄럽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도 나고 동시에 여러 감정이 올라왔어요.


아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독였어요. 하지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잠깐이라도 고민하지 않고, 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죠. 사실 그동안 아이들이 치킨 사달라고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갖지 않은 핑계를 댔거든요. 아내의 축 처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어요. 동시에 아이들에게 거절하던 제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고요. 누군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리적 충격을 가한 것도 아닌데 심하게 아팠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백방으로 추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신분이 자유롭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었죠. 한창 유튜브가 대세일 때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했어요. 하지만 결과를 처참했죠. 시간만 잡아먹고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아내를 극심한 ‘독박’ 육아에 몰아넣기도 했고요. 상황은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하나 있었네요. 성공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하는 ‘독서’를 시작한 일은 잘한 일이었어요.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인 세상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약 80권쯤 읽게 되자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니 무작정 도전을 했습니다. 인세도 어쨌든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으니까요.


120권을 읽었을 때쯤 드디어 첫 책 원고를 완성했어요. 유튜브를 할 때보단 준비가 충분해서인지 운 좋게 출판사와 계약을 바로 했지요.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급 외에 추가로 수입이 생겼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출간되니 강연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배고팠지만, 희망이 조금씩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퇴근 후에 아이를 일찍 재우고 매일 3시간씩 책을 읽거나 글을 썼어요. 3년 정도 시간이 흐르니 책도 계속 나오고 강연도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숨통이 트였어요. 과거에 치킨을 시키기 전에 5초 이상 고민했다면, 이젠 1초도 고민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다만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물이 들어와서 노를 저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았어요. 밖에서 추가적인 일을 하기 위해선 내부에서는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거든요. 직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떠맡아서 했어요. 직장 일에 소홀할 거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도 시선은 달갑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외부 강연 의뢰가 들어와서 허락받으러 가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더 잘 맞는 적성을 찾았어요. 직장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행정업무부터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았거든요. 글 쓰는 일과 강연을 다니는 일은 그렇지 않았어요. 온전히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내가 의견을 내더라도 조율 가능했어요. 위계질서가 있는 직장 분위기와는 달랐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관리자가 반대하면 진행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나도 모르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던 마지막 해에 3개월 가까이 직장 업무만으로도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계속해서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매일 들어오니 고슴도치 내 새끼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요. 게다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도 못 하고, 강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죠.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져 건강을 잃게 되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렇게 사는 거면, 굳이 살아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즉시 퇴사를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로 그만두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으니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든 건강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우선 휴직을 통해 1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꾸준히 맨발로 등산했더니 몇 개월이 지나자 다행히도 건강은 회복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퇴사를 진짜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무한궤도처럼 끝이 나지 않는 고민 속에 매일 잠을 설치며 싸웠다. 하지만 복직할 날이 가까워지기만 할 뿐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동갑내기 지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이유가 있더라도 큰 변화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일 때 일어나는 법이다.


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나는 결심할 수 있었다. 저 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소용돌이 같은 감정에 휩싸여 갑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했다. 준비를 다 마치지 못한 상태로 험난한 세상으로 나왔다. 정글 같은 미지의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엔딩곡)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매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교실이데아

- 1994년 8월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의 4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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