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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올인

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by 신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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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이란 포커 게임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마지막 판에 전부 거는 일을 의미한다. 내 인생 모든 걸 걸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전에서는 ‘특정한 대상이나 일 따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나 시간 그리고 가진 전부를 쏟아붓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행위는 위험성이 큰 만큼 결과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게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돌아오는 게 크다는 의미다.


우리가 인생에서 ‘올인’할 경우가 얼마나 생길까? 커다란 변화를 꿈꾸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존재니까. 과거 아파트 보증금으로 1억 대출받는 것도 벌벌대던 나로서는 서울 상경을 하는 건 사실 ‘올인’이었다. 내 명의의 아파트를 팔고, 타던 차도 팔았다. 심지어 퇴직할 때 일시불로 탔던 퇴직연금까지 깡그리 모아서 이사했으니까.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가 일하는 회사의 성장 기세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기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 생각했다. 앞으로는 더 승승장구하게 될 테니까. 위기보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분명한 건 도박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이다. 분명히 내가 다시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계속 돈을 붓고, 전 재산을 털어서 올인하니까 말이다. 실제 도박만 아닐 뿐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실패한다면, 다시 어딘가 살 곳을 구할 수는 있으니까. 기분만 좀 상할 뿐이지 먹고살 수는 있을 테니까.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대며 합리화했다. 분수에 맞지는 않을지라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선택한 올인은 도박의 올인이 되었다. 1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급성장이 한순간에 멈췄기에. 아니 오히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하강했다. 그것도 내가 이사 온 후부터 회사 매출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할 수만 있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임원이기도 해서 월급이 매출의 영향을 받는다. 매출이 오를 때면, 월급도 조금 오른다. 하지만 매출이 떨어지면, 내 월급도 줄어든다. 온전히 성과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동안은 계속 올라갔으니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더 올라가면 무엇을 할지 즐거운 상상만 하며 살았으니까.


설상가상으로 이사 온 시기가 바로 보릿고개였다. 작가이자 강연가로서 겪는 보릿고개 말이다. 고정적으로 받는 월급도 줄어들고, 외부 일도 3개월 가까이 없으니 조바심이 났다. 후회됐다. 그냥 원래 집에 살았으면, 이렇게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도박처럼 ‘올인’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괴롭지 않을 텐데. 매일 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이사 올 때도 비싼 전셋값은 몇 개월 사이에 몇억씩 오르고 있었다. 2년 후에 재계약을 해야만 할 텐데, 이 상태라면 불가능했다. 모은 돈이 있어야 보증금이라도 올려줄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임대인이 오래 살 수 있다고 기회를 줘도 잡을 수 없는 기회가 될 것만 같았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다시 회사랑 먼 곳으로 이사 가야만 했다. 차라리 그러면 옮기지 말 것을 왜 그리 성급했나 싶기도 했다. 역시나 인생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역시나 도박은 위험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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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서울 사는 게 편하고 좋다는 아내의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각자 방이 생겨서 좋다고 왁자지껄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물론 집에서 일과 쉼과 육아가 분리되지 못하는 것만 빼고는 만족했다. 더블 역세권이라 대중교통도 편리하고, 오히려 동해를 보러 가기도 가까웠기에. 무엇보다 회의하러 10분이면 회사 근처로 찾아갈 수 있으니까 편리했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미소가 금세 사라졌다. 기죽은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 시무룩한 표정이 교차했다.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 치며 이사 안 갈 거라고 꽥꽥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마치 눈앞에 펼쳐진 현실처럼 느꼈다. 잠깐의 상상이었지만, 무척이나 괴로웠다.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으니까.


사옥 완공은 계속 늦춰졌다. 내가 이사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출근 때문이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한 달이면 마무리된다는 공사는 벚꽃이 피고 지고, 초록으로 물든 세상이 되고, 낙엽이 보이는 시기가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11월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다시 으슬으슬한 계절이 되었다. 자주 얼굴을 본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완공되냐고 재촉했다.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모르겠다고만 반복했다. 건물을 지나며 지켜보는 사람 모두를 답답하게 했다.


가끔 회의가 필요하면, 공사 중인 사옥 근처로 모였다. 주차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서울이라 주차비가 꽤 들었다. 밥도 사 먹고, 음료도 사 먹으니 이래저래 돈이 깨졌다. 안 그래도 여유가 없는데, 쓸데없이 돈만 계속 나갔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2년 후의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조바심이 났다.


작은 차는 있었지만, 가족이 편하게 타고 이동할 큰 차가 필요했다. 몇 달간은 어쩔 수 없이 처가 어른들의 차를 빌려서 탔다. 진짜 큰 차였다. 운전을 오래 했으니 어떻게든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주차가 문제였다. 꼬리가 긴 차를 좁은 칸에 넣으려니 기가 막혔다. 한 번에 슉- 하고 능숙했던 내 주차 실력에 문제가 생겼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옆으로 갔다가 계속 영점 조준을 해야 간신히 주차했다.


이사 온다고 익숙한 차를 팔아버리고, 차도 빌려 탔다. 차도 빌리고, 집도 빌리고, 돈도 빌리고, 내 것은 없고 온갖 빌려서 사는 인생이 되었다. 빌리는 것도 능력이라고 누가 그러더구먼. 항상 작년 결과로 자료를 증빙해야 하니 한동안 은행에서 대출하는 것도 어려웠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매년 원천 징수된 결과를 제시할 때는 타노스처럼 손가락 몇 번 튕기면 되는 일이 이제는 그렇지 못했다. 평소 편하게 했던 쉬운 일이 언제든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었다.


올인의 결과는 씁쓸했다. 주식을 할 때 예수금이 있어야 안정적인 것처럼, 올인은 피해야만 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미 엎지른 물이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그다지 주변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나락으로 직행했다. 어디까지 예상을 해야 최악을 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최악의 상황은 회사가 망하는 것이었다. 경제 활동의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으니까. 내 본업은 작가이자 강연가라고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오히려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나았다. 경제적으로 보탬은 되지만, 오롯이 이 일만 한다면 우리 가족은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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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퇴직을 결정한 것도 ‘올인’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뿌리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했으니 말이다. 다행인 건 현실을 빠르게 직시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찾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먹고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서울로 이사하고 위기가 오자 여러 고민이 생겼다. 만일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다. 경제 활동이 멈추면, 진짜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책이 필요했다.


사실 본래 내가 하던 일들은 더 확장할 수 없었다. 경제 활동 비중만큼이나 내가 하루를 쓰는 시간도 한정적이었기에 그렇다. 회사 관련 일을 더 많이 하고, 내가 즐기는 활동은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단행본 출간을 위한 글을 쓰고 싶은데, 수능 관련 교재를 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뢰가 들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이니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회의가 잦았다. 시간 확보가 어려웠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강연은 시간을 쪼개어 가며 나갔지만, 바쁜 시기에 의뢰가 들어오면 나갈 수가 없었다. 내 정체성은 점점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이자 강연가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줄었다.


물론 소셜미디어 등으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런 내 심정을 알 리가 없다.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활동하는 모습만 보게 되니까 말이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내 정체성을 다 포기하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 다시 누군가의 밑에서만 일하는 부품이 될 것이냐 하는 점에서였다. 물론 대표님은 내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수용하고, 칭찬과 격려도 많이 해주셨다.


심지어 건물도 명의만 내 것이 아니지 마치 내 것처럼 편하게 사용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진심으로 나를 대했고, 내가 우리 회사에서 다른 누군가로 쉽게 대체되는 부품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해 주었다. 사실 내가 주요한 역할을 많이 맡고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대표는 아니지만, 대표 마인드로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적 갈등이 있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명히 전 직장을 떠날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한계를 느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울타리를 만들고 살아가기를 희망했지만 쉽지 않았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낸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기에.


자기 객관화를 해보기로 했다. ‘과연 나는 깜냥이 큰 사람일까?’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나보다 더 큰 사람들을 보면 자꾸만 작아진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책임지며 살아가는 대표님들을 보면 더 그렇다.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으니까. 더 얻는 게 많은 만큼 더 많은 책임을 져야만 하는데, 그걸 또 감당하려니 두렵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


원래는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다. 나도 대표님들처럼 대표가 될 수 있는 깜냥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하는 칭찬 중 듣기 싫은 게 있었다. ‘참모로서는 최고’라는 말이었다. 대표는 될 수 없지만, 참모로서는 아주 대단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니까. 내가 지난 직장에서 퇴사한 이유와 또 충돌되는 말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오른팔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가며 살아가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현실 부정은 찰나에 끝났다. 일단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나도 모르게 오른팔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올인하고 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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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마음을 가까운 지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당연한 거라고 했다. 이미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다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그럼에도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했다. 그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오히려 좋은 기회를 잡은 거라고 했다. 거인처럼 거대하고 꽤 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으니까. 관료제가 아니라 내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수용해 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거니까. 모두 맞는 말이었다. 결정적으로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곳에서 대체 불가의 능력자가 되어보세요.”


내가 빠지면, 회사가 망할 정도로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회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기계처럼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부품이 아닌 영향력 있는 중심인물로 살아 보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으니 내적 갈등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실제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재미있다. 내가 기획한 내용이 실제 회사 시스템에 반영되고, 내가 만들고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수천 명에게 적용되어 진행되기도 하니까. 나의 땀과 노력이 온전히 결과에 영향을 주는 삶은 또 단순한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단지 대표(주인공)가 아니라는 이유로 스스로 나를 ‘부품’으로 착각하고 그 틀에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군가를 ‘부품’으로 비하하려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오히려 마음 편히 누가 시키는 일만 하면서 적당히 벌면서 살기를 바란다. 안정적인 직장이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나 사업자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경기에 영향을 받기에. 불안정성과 마주하며 항상 그 불안감을 겪어야 하기에. 오히려 그런 것 없이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그에 맞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결국 사람 성향에 따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 같다.


나는 호기롭게 퇴사한 후에 풍파를 겪으며 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 삶은 ‘희로애락’이 반복한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좋을 때도,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여러 순간을 우리 삶에서 마주한다. 내가 만족하면 행복한 삶이 되고, 내가 괴로워하면 불행한 삶이 되는 것이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내 삶이 된다는 말이다.


회사에서는 몇 달의 노력 끝에 드디어 매출 하락세를 막았다. 매일 회의하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반영하고,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어려울수록 더 일을 만들었다.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일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콘텐츠와 시스템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 회사도 우리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그 마음이 조금씩 전달되었기에 회복세를 탄 게 아닐까 싶다.


한 집단의 대표가 되면, 최후의 책임자가 된다. 매출이 떨어지자 대표님은 월급을 받지 않고 일했다. 직원들의 월급을 우선으로 챙겨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함께 이 위기를 넘겨보자고 말했다. 아무리 큰 규모의 회사라도 고정 지출이 일정해서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살아남는다. 위기가 지속되면 회사는 망할 수 있다. 특히 회사가 망하는 경우는 3가지 경우라고 한다. 대표가 돈 벌었다고 명품(옷, 자동차 등)으로 도배하고, 골프 치러 다니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할 때다. 다행히 우리 회사 대표님은 현재 기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최악의 수까지 계산해서 준비한다. 그리고 힘든 것도 서슴지 않고 말한다.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렇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이 도와준다. 역시 일은 ‘사람’이 만들고 해결한다. 속사정을 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지체된 건물 공사로 인해 회사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손해를 복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표님은 풍파 속에서도 견디더니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시기 함께 견뎌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가끔 대표와 직원이라는 구분을 분명히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올인해도 좋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과거 5년 동안 나를 이끌어준 사람이 있는데 그분도 평생 함께할 사람이다. 지금 대표님은 한창 성장 후에 만났지만, 내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늙어서까지 가까이 함께 자주 볼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 두 사람이 아닐까 싶다. 피를 섞지 않은 사람 중에서 고르라면 말이다.


사실 아내만큼이나 직접 만나든 통화를 하든 자주 대화를 나누며 삶을 나누고 있다. 서로 의지하며 기쁠 땐 함께 기뻐하고, 힘들고 슬플 땐 나누는 그런 형제처럼 말이다. 평소에는 형이었다가 일할 때는 대표님이 되는 재미있는 기업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단단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올인 후 힘든 시기를 겪으며 함께 위기를 겪은 우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나도 더 이상 인생의 주인공이니 대표이니 그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하게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하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이어갈 수 있으니까. 만일 작가로만 강연가로만 살아간다면,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또 다른 현실과 타협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은 행운이다.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없을 테니까.


하루하루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내겐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중해 주니까. 나는 책으로 강연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속한 직장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지금 하는 일에 올인한다면 분명히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엔딩곡)

“그렇게 망친 내 인생 책임져... 그렇지 않아 내 인생 책임져...”


*책임져

- 1996년 8월에 발매된 가수 언타이틀의 1집 앨범 無題(무제)의 2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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