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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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테~니스~ 테테레테테테~니스~ 테니스가 배우고 싶어요. T.E.N.N.I.S. TENNIS!”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유명한 대사다. 개그맨의 리듬감 있는 대사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테니스가 뭔지는 잘 몰랐다. 배드민턴처럼 네트가 있고, 야구공 대신에 던지고 놀던 테니스공을 라켓으로 쳐서 넘기는 스포츠라는 것밖에. 아쉽지만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는 못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축구랑 농구는 주야장천 했지만, 골프라던가 테니스라던가 승마라던가 귀족 스포츠는 내 것이 아니었다.
대신 학창 시절에 좋아하던 축구와 농구를 운 좋게 30대 중반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 직장에 함께 땀 흘릴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만 군대에서 다친 왼쪽 무릎을 보호하려다 오른쪽 무릎까지 망가지면서 모든 운동을 내려놓았다. 우울한 감정이 쌓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할 수 없으니 삶의 낙이 사라진 것이다.
평소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니 살도 조금씩 찌기 시작했다. 그러니 무릎은 더 무리가 갔다. 조금이라도 뛰면, 무릎이 부었다. 통증이 지속되니 운동은 내 인생에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무릎도 허리도 손목도 관절마다 통증이 생겼다. 간신히 걷는 운동이 전부였다. 그나마 걷기로 살도 다시 빼기도 하고, 근육을 길렀다. 하지만 강렬한 스포츠 활동으로 얻는 에너지는 얻을 수 없었다. 아니 에너지는 남아도는 데 쓸데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새롭게 찾은 취미가 독서와 글쓰기였다. 운동할 시간에 책을 읽고, 책을 썼다. 당연히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툴렀다. 그런데 매일 2~3시간씩 3년 넘게 책을 읽거나 쓰니까 습관이 되었다. 처음엔 글 하나 쓰는데도 8시간 걸렸다. 이제는 1~2시간이면 글 하나를 뚝딱 써낸다. 역시 꾸준한 연습으로 숙달되었기 때문이다. 멋지게 꾸며서 쓰는 문장은 아니지만, 일정한 흐름이 있고 메시지가 담긴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3년 넘게 스포츠 대신에 즐기던 독서와 글쓰기를 전 직장 마지막 해에는 3개월 넘도록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일이 몰리고 몰려서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와 급격한 과체중으로 혈압이 높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건강을 잃은 것이 휴직하고 퇴사하는 데 결정적인 트리거였다고 생각한다.
올해 또다시 똑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몰입하면서,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할 시간이 사라졌다. 독서는 어떻게든 10분씩이라도 짬을 내서 하기도 했지만, 글쓰기는 최소 1시간 이상 각 잡고 써야 하니 불가능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스트레스를 풀고 숨 쉴 구멍을 찾아야만 했다. 한두 달에 케렌시아를 찾아가는 것도 바쁘니까 어쩌다 3개월이 밀렸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퇴사 후 첫해 가을을 지나고 있을 때, 내가 기획한 아이디어가 통과하여 실행하는 시기가 있었다. 왠지 많이 바빠질 것 같아서 살기 위해 헬스를 시작했었다. 약 한 달 정도 꾸준히 운동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덕분에 일주일 넘게 15시간씩 매일 일하는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과연 나는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잠들던 시기였다. 체력을 만들어두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 와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지칠 대로 지치고, 체력도 고갈된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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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뇌가 두 가지로 반응한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다. 사실 도망치는 게 가장 속 편한데,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이 오곤 한다. 그러면 죽을 각오로 싸우게 된다. 또 이렇게 숨 쉴 구멍 없이 계속 살아가다간 우울해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지만,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그때 마침 지인이 테니스를 새로 배워서 치고 있는데, 삶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운동을 좋아해서 매일 달리고 있었다. 와중에 테니스를 새로 배우니 틈만 나면 친다고 했다. 사업하면서 육아하면서도 무조건 하루에 얼마라도 자기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아주 현명하다. 그렇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혹은 즐거운 걸 찾아서 해야 더 힘이 나서 일이든 육아든 할 수 있으니까.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강한 깨달음을 얻었다.
테니스 문외한이지만, 한 번쯤 기회가 된다면 배워보고 싶었던 스포츠였기에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테니스장을 찾았다. 5~10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새로 오픈했는지 체험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등록하든 안 하든 일단 체험이라도 해봐야지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아내랑 산책하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
코치님이라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원이니 원장님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테니스 라켓을 빌려 쓸 수 있었다. 운동신경 테스트를 하려는지 공을 던져주시며 받으라 했다. 아내랑 둘이서 번갈아 가며 공을 던지고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테니스 라켓을 들고 자세를 배웠다. 원장님은 우리가 등록도 하지 않았는데, 친절하게 자세한 동작까지 알려주셨다. 아마도 우리가 마음에 들어야 등록할 테니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영업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해왔으니 얼굴 보면서 대화를 조금 해보면 그래도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혹은 진심인지 가식인지 파악할 수 있었기에 그렇다. 한편으론 진정으로 애쓰는 모습에 내 삶이 떠올랐다. 나도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나아지게 해야 하니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니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보다 사실은 원장님의 가르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내가 하는 실수를 내버려 두고, 계속 지켜본다. 그리고 내가 직접 잘 안 되는 부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제 못하는 걸 인지하고 잘하고 싶어지는 동기 부여가 되었을 때, 그때 옳은 방법을 알려준다. 연역이 아니라 귀납으로 접근하는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티셔츠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것도 테니스를 등록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무언가 필요했으니까. 땀을 흠뻑 흘리면 심신 건강에 청신호가 올 기회가 되는 거니까. 그리고 구기 운동이라 농구, 축구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아직 전체 코트를 뛰는 게 아니니 무릎이 아프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수강료가 꽤 비쌌다.
골프, 승마처럼 이것도 귀족 스포츠라고 비용이 조금은 드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비용은 내가 테니스를 등록하는 데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먹는 걸 줄여서라도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취미로서가 아니라 생존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3개월 등록을 하면 5% 할인이 더 되었지만, 그건 부담이 되어 한 달만 등록해 보기로 했다. 혹시 또 중간에 무릎에 무리가 가거나 흥미를 잃으면 그만두어 돈만 날리게 될 수 있기에 조금 천천히 접근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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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때 항상 조바심이 난다. 빨리 잘하고 싶어서다. 언어도 운동도 모두 그렇다. 이미 수준급으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도 처음이 있었고, 오랜 시간 견디며 실력을 늘렸기에 그 경지에 오른 것인데.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들은 중간 과정은 건너뛰고 잘된 결과만 생각한다. 다행히 내가 그런 사람들을 수천 명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마인드컨트롤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흥미가 생긴 운동을 10년이든 20년이든 다리가 움직일 때까지 즐기면서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이 망가져 또 멈추면 안 되니까. 승부욕을 가지고 이기려는 운동이 아니라 랠리만 해도 좋으니 꾸준히 오래 하고 싶은 것이었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고, 무리하게 한 발 더 움직이다가 근육이 끊기는 40대가 되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운동신경이 그래도 있어서 금방 배웠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가며 더 많은 걸 소소하게 배워나갔다. 재미가 배가 되었다. 특히 내가 뭔가 잘 안되면, 이건 왜 안 되느냐 물었더니 원장님은 내가 배운 횟수와 상관없이 다 알려주셨다. 실력이 늘지 않아 처음엔 포핸드만 계속 배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스플릿스텝부터 빠르게 배우고, 백핸드, 포발리, 백발리, 서브, 드라이브, 슬라이스 계속 진도를 뺐다.
원장님도 레슨 할 때마다 말씀하셨다. 내가 너무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하니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고. 그리고 나는 연습 벌레라서 수업이 끝나고 20분 동안 기계로 조금 빨리 배운 동작들은 홀로 연습했다. 당연히 동작만 배운 거라 처음에 잘 안되었지만, 유튜브로도 관련 영상을 틀어 동작을 연구하고 반복해서 연습했다. 덕분에 실력이 빨리 늘었고, 원장님과 랠리 하면서 계속 시도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레슨이 미니 게임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원장님은 3개월 정도 배워야만 올코트에 나가서 랠리도 하고 게임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2개월쯤 되었을 때 올코트에 한번 나가보라고 권했다. 안타깝게도 주말이라 육아해야 해서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내의 배려로 마침내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나갈 기회를 얻었다.
올코트는 생각보다 컸다. 레슨을 받는 공간은 실제의 거의 4분의 1 정도 축소한 거였다. 몸을 풀면서 원장님이 던져주시는 공을 쳐서 네트를 넘겼다. 시합이 아니니 긴장하지 않았는지 공이 잘 맞았다. 포핸드도 백핸드도 모두 좋았다. 내심 다른 기술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몸풀기 때는 정석으로만 쳤다. 아쉬운 마음에 게임 때는 꼭 여러 기술을 써봐야겠다 다짐했다.
마침내 팀을 짜서 복식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서브부터 난관이었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 포즈를 연습하고 세게 쳐서 넘기는 연습을 했으나 실전은 달랐다. 공을 상대편 코트로 폴트가 되지 않게 넘기는 것조차 어려웠다. 연습한 멋진 자세는 어디 간데없고, 공을 살살 던져서 간신히 겨우 라켓에 맞춰서 네트를 넘기고 선은 넘기지 않도록 안전하게 넘기기 바빴다.
그리고 코트가 넓어서 상대방의 공을 받아칠 때는 세게 쳐야만 할 것 같았다. 잔뜩 힘을 주어 공을 받아쳤는데, 이런 젠장, 홈런을 날렸다. 원장님이 라켓을 쥘 때는 날달걀을 가볍게 쥐는 것처럼 살살 잡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레슨을 받을 때 50% 바람이 빠진 공으로 쳤는데, 초보라서 약한 공으로 치는 줄 알았으나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치니까 말랑한 공으로 해야 실제와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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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도 어렵고, 공을 쳐서 네트를 넘기는 것도 어려웠다. 거기에 몸 쪽으로 오는 공을 받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따닥볼’이라고 무릎을 더 낮춰서 빠르게 받아치는 연습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실전은 쉽지 않았다. 드라이브나 슬라이스는 개나 줘버렸다. 야구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홈런이 좋지만, 테니스에서는 홈런보다는 ‘IN’이었다. 코트 안에 공이 들어와야 인정이니까.
라켓을 살살 쥐고, 공도 가볍게 치려고 노력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레슨 받을 때로 돌아왔다. 참여한 사람 중에 1년 정도 배운 원장님 제자가 있었는데, 나랑 또 다른 초보자를 보고 놀랐다. 완벽하지 않지만, 재미있게 게임을 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랠리를 해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수도 많이 하고, 어설픈 것도 많았지만, 흐름이 많이 끊기지 않고 게임이 진행된 것만으로도 잘한 것이라 했다.
2~3개월 레슨을 받은 건 맞지만, 사실 남들 모르는 시간에 집에서 스트로크 동작을 수업이 많이 했다. 스플릿 스텝도 많이 밟고, 서브 동작도 맨손으로 혹은 라켓만 들고 틈만 나면 휘둘렀다. 사람들은 숫자에 민감하다. 그리고 쉽게 평가한다. 뒤에서 남몰래하는 노력을 보지 않는다. 그 정도로 노력했다는 말을 굳이 다 할 필요는 없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고작 1시간 올코트 경험이었지만, 나는 테니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더 실력을 키워서 자주 올코트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졌다.
더 열심히 레슨 받고, 연습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떤 남자분이 레슨이 끝났는데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근처 의자에 앉아 내가 수업받는 걸 계속 지켜봤다. 그리곤 내가 공을 잘 칠 때마다 감탄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아니 이게 3개월 배운 수준이라고요?!”
수업이 끝나자 갑자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나랑 대화가 하고 싶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불쑥 핸드폰을 내밀더니 내 번호를 찍어달라고 했다. 이유인즉 자기도 3~4개월 정도 배웠는데, 올코트에 나가서 같이 칠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나도 함께 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옳다구나 번호를 찍어드렸다. 조만간 약속을 잡아보자고 하면서 말이다.
이상하게 연락이 계속 오지 않았다. 밀당도 아니고 이게 뭐람. 우물도 급한 사람이 파는 거니까. 내가 먼저 연락했다. 돌아온 답변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운동하다가 그만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는 것이다. 몇 주는 푹 쉬어야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주변에서 테니스 같이 칠 사람을 구하는 게 은근히 어렵다고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더 즐겁게 올코트에서 테니스를 칠 생각에 기대감이 충만했기에 실망감이 컸다. 하지만 아프다는 데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오히려 어서 회복하기를 기도나 해야지.
열심히 테니스 기술을 배우고 연습하고 있지만, 실전에 써먹지 못하니 답답했다. 그때 마침 오랜만에 나에게 테니스를 추천한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이미 함께 치는 사람들이 여럿이라고 했다. 나도 가까이 살면 좋을 것을 거리가 머니까 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 들어가려면 한두 번 치면서 말은 안 하지만 나름대로 테스트한다고 한다. 함께 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그래서 지인에게 제안했다. 나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올코트에서 랠리라도 한번 해보자고. 한 수 가르쳐달라고.
…
놀랍게도 어린 시절 어머니는 유복한 환경에서 막내로 자라면서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셨다. 키도 커서 배구선수로도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전에 나가기도 하셨다고 했다. 갑자기 내가 어린 시절 평촌의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어머니가 테니스 라켓을 잡고 스텝을 밟으며 공을 치신 기억이 났다. 한번 따라 간 기억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어머니는 체험만 한번 해보고 비싸서 등록은 안 하셨던 것 같다.
대신 어머니는 좀 더 대중적인 스포츠인 볼링을 배우시더니 하루는 대회에서 1개 차이로 아깝게 퍼펙트를 놓칠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아마도 30~40대였던 것 같은데, 늦은 나이에 운동을 새롭게 배워도 금방 배우셨던 것 같다. 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키가 커서 농구는 좀 했지만, 발을 이용해서 하는 운동은 다 못했다고 하셨기에.
아직 번데기 단계도 못 간 내가 지금 이렇게 설레발치고 있는 글로 쓰면서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테니스가 지금 내 삶에 분명히 희망이고, 꿈이고, 행복을 주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즐거운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독서와 글쓰기도 여전히 내 삶의 낙이지만, 테니스가 새롭게 그 자리를 함께 차지하고 있다.
제발 다치지 않아서, 지금 이 즐거움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게임을 하더라도 한발 덜 뛰고, 욕심을 줄일 것이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길게 오래 테니스를 즐길지를 연구할 것이다. 물론 테니스의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익혀서 자유자재로 활용할 것이다. 서브도 멋지게 하고 싶다. 유명한 테니스 선수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끝으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첫 번째는 가족들 모두 테니스를 배워서 4 식구 모두 한 코트에서 게임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들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 세계 4대 유명 테니스 대회를 보러 가고 싶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호주 오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프랑스 오픈’, 영국 윔블던에서 열리는 ‘윔블던’,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S오픈’ 대회에 가족이 여행으로 꼭 가보고 싶다. 꿈은 일단 꿔야 이뤄진다고 하니 꿈부터 꿔본다. 그리고 100번 생각하고, 말해서 현실이 되도록 꼭 만들 것이다. 테니스는 내 인생 마지막 행복이니까.
(엔딩곡)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그대에게
- 1991년 3월에 발매된 신해철 2집 앨범 Myself, 5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가 대상을 탄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