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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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TV프로그램 명칭이 ‘아빠 어디 가’였다. 말 그대로 아빠들이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빠들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놀았다. 무엇보다 나이가 비슷하니 만사 오케이였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대표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지만, 아이는 나이가 아직 8살이다. 우리 집 첫째가 9살이고, 둘째가 7살이니까 늦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아빠가 서로 가깝게 지내니 아이들도 잘 어울려 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번이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놀면 어떨까 고민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다 모이는 게 아니라 아빠들이 애들을 데리고 만나는 ‘아빠 어디 가’를 결성해 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나는 애를 둘이나 동시에 봐야 하니 부담됐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컸으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슬슬 기회를 잡아보려고 할 때였다. 대표님은 우리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을 소개했다. 아이가 둘인데 8살, 6살로 우리 모임에 들어오면 도레미 순서대로 또래 모임이 되는 거였다. 아이들은 일단 제쳐두고, 아빠들끼리 합이 맞아야 하니 먼저 얼굴을 봤다. 무슨 면접이라도 보는 마냥 떨리기도 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으니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다. 여기서 비슷한 상황이라는 건 직장인이 아닌 사업을 한다는 의미다.
‘아빠 어디 가’ 결성을 앞두고 아빠들은 평일 낮에 만났다. 서로 소개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을 서로 느꼈을 것이다. 아빠들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비슷했다. 일단 아빠들끼리는 잘 맞을 것 같았다. 예선이 끝났으니 정말 중요한 대망의 본선이 남았다. 아무리 부모가 잘 맞아도 아이들 성향이 다르면 결국 그 모임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어릴 때 대형 마트 문화센터, 어린이집, 유치원 등 아이들로 인해 주변 부모님들과 친해지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성향이 맞는지 그런 거 모르니 함께 잘 어울렸는데, 이제 자기 의견도 주장하고, 노는 방법이나 성향도 점점 자리를 잡아가니 때론 아이들끼리 잘 안 맞는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혹은 부모끼리는 합이 좋으니 따로 만나거나 했다. 결국 주인공들의 궁합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딱 중간지점은 아니었지만,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올림픽 공원으로 정했다. 넓은 공간에서 만나 탁 트인 자연과 함께라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나기 전부터 계속 아이들에게 새롭게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해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보통 인간은 무언가를 하기 전에 더 설레고 즐거움을 느끼기에 그 점을 활용했다. 아이들도 빨리 ‘아빠 어디 가’ 모임 하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아이들과 달리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날이 되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주말이 아닌 평일 금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고, 가족이 다 같이 보내는 시간일 테니 일부러 평일로 잡은 것이다. 그리고 금요일에 신나게 놀아서 피곤해도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전략적으로 시간을 정했다. 다만 저녁에 만나면 놀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니 금요일 오후 3시부터 만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태권도를 다니고 있어서 금요일 하루는 빼면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고, 첫 모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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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순쯤이라 태권도 횟수를 줄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 늦을 수도 있을 거라 말했다. 하지만, 첫 만남인데 늦을 수 없으니 과감하게 태권도 수업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일찍 데리고 출발했다. 3시~3시 30분 사이에 만나기로 했으나 우리는 3시가 되기 10분 전에 도착했다. 우리가 좀 늦을 거라고 해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팀들은 조금씩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들은 계속 언제 오냐고 보챘다. 혼자서 아이 둘을 보는 건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닌데, 보채니까 조금씩 지쳐갔다.
아직 ‘아빠 어디 가’ 모임 행사를 시작도 안 했는데, 위기가 찾아왔다.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드디어 한 팀이 도착했다.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놀기 전부터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뇌물이라도 바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드디어 마지막 팀이 도착했다. 역시나 첫 만남은 너무 어색했다. 서로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선뜻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빠 품에서 떠나지 않고, 부끄러움을 감추려 노력했다.
아빠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대로 계속되면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까 자리를 옮겼다. 일단 놀이터로 이동했다. 아빠들이 술래가 되어 잡을 테니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서로 한 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얼음땡’이라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구조 요청을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지라 종종 틀리기도 했지만, 서로의 이름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아이스크림부터 얼음땡 놀이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드디어 단단한 얼음을 깨고 서로 물이 되어 녹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세를 몰아서 다음 놀이를 하러 이동했다. 세 번째 미션은 동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과거에 <엽기적인 그녀> 영화에 한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있다고 했다. 똑같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절벽처럼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구릉이 나왔다. 엄청 가파른 언덕이라 아이들은 낑낑대며 땅집고 올라갔다. 아빠들은 앞에서 뒤에서 끌어주며 낙오자 없이 모두 정상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힘든 미션을 다 함께 이뤄내니 성취감이 컸다. 금세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 바로 전 단계까지는 조금은 불안했는데, 이젠 다 같이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드디어 ‘아빠 어디 가’ 팀이 제대로 탄생한 것이었다. 다시 언덕을 내려올 때는 용기 있는 아이들은 아빠 손을 잡고 뛰어 내려갔다. 무서운 아이들은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흙을 다 묻혀가며 내려가기도 했다. 어떤 방법이든 다들 낄낄거리며 즐겁게 뒹굴었다.
다시 한번 더 올라가 보자고 다 같이 소리치며 언덕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소란스러웠는지 공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지나가면서 그 동산은 올라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근처에 자리를 잡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대화했다. 체력이 고갈되었으니 아이들도 다리 아프다고,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역시 친해지니 본성이 나왔다.
다행히 이것도 예상하고 간식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한 아빠는 소소하게 가지고 놀 것을 가져왔다. 풍선을 불어서 터뜨리거나 퉁퉁 치면서 놀았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연에서 거친 몸 놀이부터 정적인 놀이까지 첫날에 많은 걸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어야 한 식구가 되는 법이니 메뉴를 함께 정했다. 아이들은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고깃집엔 다행히 냉면을 팔았다. 다들 냉면보다 얼음조각을 서로 먹겠다고 다퉜다. 소소하게 다투기까지 하니 이제 어색함은 지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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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은 콜라 한 잔씩 마시며 자축했다. 첫 만남이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 아빠는 매주 금요일에 이렇게 만나면 너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아빠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는 너무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이 엄마는 금요일에 학원을 계속 빼는 건 싫어하는 눈치라고 했다. 일단 잘 이야기 나눠서 함께 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라면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거의 좀비가 되었던 아이들은 되살아났다. 거기에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펄펄 날뛰었다. 다시 근처 놀이터에서 30분 넘게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고, 미끄럼틀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놀았다. 가로등 불빛이 있었지만, 더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어떤 표정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되었다.
아쉽지만 첫 만남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작별은 아쉬워했다. 곧 또 보겠다고 말했는데도 다들 아빠들을 닦달했다. 앞으로도 또 이렇게 힘들게 헤어지겠구나 싶었다. 너무 잘 어울려 놀아서 좋기도 하고, 그 감정을 달래느라 동시에 애먹겠구나 싶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다음에 언제 보는 거냐고 계속 물어봤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한 100번은 물은 것 같다. 간신히 달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성에 못 이겨 다음 모임을 바로 정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완전체로 만나는 건 한참 불가능했다. 역시나 한 집에서 금요일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주말로 바꿔서도 해보려 했으나 이미 계획이 있거나 시골에 가야 해서 안 된다고 했다. 첫 만남은 너무 좋았으나 두 번째 만남을 성사해 내기가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금요일은 포기하기로 하고 주말로 시간을 바꿔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완전체로 모여보자고 울고불고 난리였으니까. 아빠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주말 하루 다 함께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근교의 한 캠핑장에서 공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자연과 함께 어울려 놀기로 했다. 역시나 우리 집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내가 워낙 약속 늦는 걸 싫어하나 보니 성격이 나온 거다. 그래도 이날은 근 차이 없이 다들 비슷하게 도착했고, 다행히 아이들의 성화를 견뎌낼 필요가 없었다. 딱 하나 아쉬운 건 수영장이 있어서 물놀이를 기대했건만 여름이 아니라 운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바로 앞에 한강이 흐르고 있어서 아이들이 진짜 물과 함께 놀았다. 이것저것 자연의 부산물을 주우며 놀았다. 아빠들은 아이들 챙기며 놀고, 밥도 해먹이고 하면서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하니 다음 모임은 어디서 볼까 또 의논했다. 이번에 물놀이를 못 해서 아쉬웠으니 종일 수영할 수 있는 곳으로 가보자 했다. 찾아보니 풀빌라 펜션이 있었고, 우리끼리 온수가 나오는 수영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또 날짜를 맞추는 일이었다. 한 팀은 매주 만나기를 희망하고, 한 팀은 매주 만나는 건 부담되는 것 같았다. 나는 중간에서 딱 중간 입장이었다. 매주가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양쪽 모두 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지킬 수 있는 모임이 될 것만 같았다. 내 예상대로 결국 일이 터졌다. 우리 모임에 위기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이 문제는 아니었다. 아빠들이 서로 반대 방향에 서 있으니 점점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한 아빠가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랬더니 자기 의지와 달리 상황이 따라주지 않은 일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중간에서 양쪽 입장이 너무나 이해됐다. 그런데 또 성격이 다르다 보니 의사소통이 순조롭지 못했다. 서로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같지만, 성향 차이로 우리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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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아이들과 약속도 한 게 있으니 지켜야만 했기에. 그리고 막상 만나서는 아이들도 아빠들도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다음 모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매주 만남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빠 본인은 우리 모임을 하기 위해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고 싶지만, 가족 내에서도 여러 일정이 꽤 많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 모임을 결성할 땐 정기 모임을 생각하고 만들었으니 제안자는 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 어디 가’ 모임은 2달 넘게 진행할 수 없었다. 물론 완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매주 정기 모임으로 생각했던 두 팀은 거의 매주 만났다. 그랬더니 다른 팀에서 그걸 보며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우면서도 일정을 맞추지 못하니 괴로워했다. 아빠들도 아이들도 섭섭했다. 그러다 오랜 대화 끝에 정기 모임은 없는 것으로 했다. 한 달에 1번이라도 만나면 좋으니 천천히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숙박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2박 3일을 원했다. 다들 일정을 맞추기로 했고, 드디어 완전체로 다시 모임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다 함께 만날 수 있음에 기대가 가득했다. 역시나 만나니 너무 반갑고, 즐겁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수영장이 있는 펜션을 빌려 놀았기 때문에 그동안 아쉬움도 다 충족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런 서운함도, 불만도, 부정적인 감정 없던 내게 일이 생겼다. 우선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나로서는 밤에 잠들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이들이 이불을 차내고, 모서리에 찍힐까 걱정되어 10번도 넘게 깨서 아이들을 돌봤다. 반면에 다른 아빠들은 코를 골며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잤다. 부러웠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2박 3일 동안 모든 끼니를 내가 다 챙겼다. 요리는 못하지만, 조리는 나름 잘하는 나였기에 끼니마다 8인분을 챙겨야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가장 먼저 근처에 도착해서 2박 3일에 해당하는 장을 다 봤기에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아빠들도 잘하겠지만, 내가 메인 셰프가 되었다. 여기서 내가 지쳐버렸던 것 같다.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각종 음식을 만들어냈다.
일단 애들 먼저 먹이고, 맨 나중에 음식을 먹었더니 종종 식사 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사실 나는 제시간에 먹어야만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는 특이한 몸을 가졌다. 근데 그 리듬이 깨지니 컨디션 저하가 왔다.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아이들 행여나 안전이나 건강에 위협이 생길까 긴장하고, 매번 끼니를 챙기고, 아이가 둘이라 씻길 때도 2배로 신경 써야 하고, 2박 3일이 즐겁기도 했지만 괴로울 정도로 힘들었다.
속마음이 들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는 이렇게 숙박하는 모임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다른 아빠들도 고기도 굽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내가 무언가 할 때 각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좀 더 예민한 성격인 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2박 3일을 긴장하면서 보냈더니 이게 일이 되어버렸다. 즐거운 만남이건 분명 하나 부담이 되는 일이 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태권도 2품 준비로 시간을 빼야 했다. 평일도 밤에 연습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도장에 나가서 연습했다. 그 핑계로 나는 잠시 모임에 참여가 어렵다고 했다. 사실이었지만, 다른 아빠들도 살짝 눈치를 챈 느낌이었다. 내가 2박 3일 ‘아빠 어디 가’ 모임이 많이 힘들었다는 걸 말이다. 끝까지 나는 힘들었다는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분명히 어딘가 티가 났을 것이다. 이렇게 글로 고백을 하면서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우리는 ‘아빠 어디 가’ 모임이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오징어 팀’이라고 부른다. 자기네가 5명이라서 ‘오’가 들어가는 이름을 정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얼굴이 못생겨서 오징어 팀은 아니다. 다리가 10개여서 오징어 팀인 건 맞다. 5명이 모이니 다리가 10개니까. 문어는 다리가 8개, 오징어는 10개이지 않은가.
우리 집 아이들 국기원 행사가 끝나고, 아주 길었던 추석 연휴도 끝나니 오징어 팀 모임을 한지 어느덧 또 2달이 지나버렸다. 나도 망각의 동물인지라 그때 힘들었던 감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숙박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던 차에 한 팀에서 먼저 제안했다. 2년 만에 진행하는 서울 에어쇼에 다 같이 가보자고. 흔하지 않은 경험이니 솔깃했다. 아이들도 들떴다. 비행기보다는 오징어 팀이 다시 뭉칠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이번엔 우리 집 아내가 동참했다. 비행기 쇼를 자기도 보고 싶다고. 이렇게 되면, ‘아빠 어디 가’ 모임이 아니네. 하지만 든든했다. 미리 조사해 보니 오래 걸어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둘 중 하나는 업어달라고 난리일 텐데. 그럼 또 질투가 나서 툴툴거릴 텐데.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다행히도 아내가 함께 가니 1:1 마크만 하면 되니까 거뜬하다. 1명은 어딜 데려가도 무적이다. 이미 2배를 감당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으니.
주차할 곳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옥철을 경험했다. 아이들도 놀랐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 지하철을 타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 명씩 감싸서 안전을 확보했다. 괜히 넘어지기라도 해서 다치면 안 되니까. 타고 내릴 때마다 꾸역꾸역 간신히 틈을 만들어가며 이동했다. 그런데 또 위기가 있었다.
바로 화장실! 사람이 넘쳐나는데 아들이 급히 큰 볼일을 보겠단다. 딱 한 군데 빼고 모든 칸이 닫혀있었다. ‘구사일생’이구나 싶어 달려갔다. 이럴 수가! 구식 변기였다. 한시라도 급하니 쭈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거라 자세를 알려주는데, 자기는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하겠단다. 그래서 다른 칸을 급히 알아봤다. 또다시 ‘구사일생’으로 마지막 칸이 열렸다. 문만 닫혀있을 뿐이었던 거였다.
하지만 굳게 문이 닫힌 이유가 있었다. 문이 열리고 변기를 쳐다보니 엄청난 똥 폭탄이 투하되어 있었다. 아들도 나도 코를 틀어막았다. 다시 밖으로 뛰쳐나왔다. 찰나였지만, 물의 양이 막힌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전쟁터로 들어갔다. 군대도 다녀왔으니 이 정도는 내가 아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변기 뚜껑이 없어서 폭탄을 코앞에 두고 물 내리는 쇠를 꾹 눌렀다.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물이 잘 내려가서 아들을 살리거나, 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와 화장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죽거나. 아들은 천운을 타고났다. 물은 잘 내려갔고, 나는 재빨리 휴지로 변기 커버를 닦았다. 폭탄 제거를 완료했으니 아들은 계속 힘주어 참았던 근육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역시 부모는 자식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아빠 어디 가’ 완전체인 ‘오징어 팀’은 다시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핵폭탄도 이겨낸 아빠가 되었으니까.
(엔딩곡)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두 바퀴.”
*슈퍼맨
- 2008년 11월에 발매된 노라조의 세 번째 앨범 Three GO, 1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