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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결혼 10주년

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by 신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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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 연애 4년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또한 마지막 사랑이 되길 희망했다. 2017년에 첫째인 땋을 낳았고, 30개월이 지나 2019년엔 둘째인 아들을 낳았다. 어느덧 현재 첫째는 9살, 둘째는 7살이 되었다. 가수 비와 김태희 부부도 우리와 똑같은 연도에 아이들을 낳았다. 지인이라면 아이들도 친한 친구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올해 결혼 10주년이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금방 흘러갔다.


그리고 법이 바뀌어 우리 집도 다둥이 가족이 되었다. 자동차 등록세도 감면되고, 공영주차장에서도 50%나 할인이 된다.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누군가는 애국자라고도 한다. 외동이 많고, 혹은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도 많으니까. 아이가 둘이면 여러 이유로 능력자라고 말한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아이 하나 키우는 것보단 둘 키우는 게 확실히 힘들다. 숫자 1보단 2가 더 크니까.


우리의 신혼여행 목적지는 ‘하와이’였다. 거기서 우연히 30주년을 보내러 온 캐나다 부부를 만났다. 10년마다 하와이에 결혼을 기념하러 온다고 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 우리 부부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인연이 닿으면, 10년 후에 또 보자고 했다. 우리의 10주년 기념 여행 목적지도 ‘하와이’가 되었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돈을 모으면,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매달 한 사람당 10만 원씩 차곡차곡 모았다.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10주년 행사는 계획대로 될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변수는 발생했다. 모아둔 적금을 깨서 식중독으로 거의 죽을 뻔했을 때, 가까운 일본에 여행을 갔다. 남은 돈으로는 외벌이로 감당할 수 없는 경제 상황에서 주식 투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모았던 돈을 모두 날려버렸다.


퇴사하고, 이사하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살다 보니 저축을 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결혼 10주년 행사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겨우 아껴둔 돈이 조금 있어서 ‘제주도’는 갈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와이’ 대신 똑같은 섬인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대신 아이들이 있으니 수영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리조트를 숙소로 정했다.


그나마 좋은 점도 있었다. 휴직일 때 미국에 다녀와서 쌓인 마일리지가 꽤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일리지로 비즈니스석을 끊기로 했다. 예전에 제주도로 출장 갈 때도 한번 마일리지로 끊어서 간 적이 있다. 어차피 10년이 지나면 못 쓸 테고, 제주도가 아니면 비즈니스석은 엄두도 못 내기에. 그런데 비행기 기종이 작은 편이라 그런지 지난번은 실망스러웠다. 공간만 조금 넉넉할 뿐 큰 혜택은 느낄 수 없었기에.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행기가 좀 크다 싶었는데, 역시나 해외 스케줄을 함께 소화하는 기종이었다. 좌석도 더 널찍하고, 버튼을 누르니 누워서 갈 수 있게 변신했다. 아이들도 처음 타보는 비즈니스 좌석에 신이 났다. 둘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거 너무 좋다! 다음에 또 이 비행기 타요!” 과거 미국에서 14시간을 좁은 비행기에 몸을 실어 뼈가 굳어가도록 힘들게 타고 온 거랑 비교하니 그럴 수밖에. 나는 40년이 지나서야 처음 타는 비즈니스석인데 이 녀석들은 운도 좋다. 하필이면 아빠 엄마가 결혼 10주년이라서 어릴 때부터 이런 호강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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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아이들과 함께한 건 3번째 방문이었다. 착륙 후 아이들은 엄마와 공항에서 대기한다. 아빠는 부지런히 렌터카 셔틀버스를 타고 차를 빌려 다시 공항에 온다. 짐을 질질 끌고서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셔틀버스에 타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니까. 차라리 공항에서 배회하는 게 투정이 없다. 조금 복잡해도 탁 트인 공간에 있는 것과 좁은 공간에 있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


서울로 올라갈 때도 같은 전략을 쓴다. 아이들과 아내는 공항에 먼저 내려주고, 홀로 차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온다.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그 시간을 즐기곤 한다. 언젠가부터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 10주년 여행이 아내와 단둘이 여행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마음이 가는 대로 홀가분하게 여러 장소에 방문하며 신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좋은 건 반복해서라도 계속하려고 한다. 리조트에 실내외 수영장이 모두 있었다. 아이들은 가을에 물놀이를 마음껏 즐겼다. 가만히 두면 종일 물놀이만 하다가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엔 우리의 10주년 여행이 너무 아까워 일부러 밖으로도 나갔다. 숙박권에 포함된 놀이공원 입장권이 아까워서라도 그래야 했다.


막상 또 새롭고 재미있는 걸 하면, 변화를 싫어하던 아이들도 즐긴다. 정말 단순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느낀다. 차라리 그런 시절이 더 행복한 건 아닐까 싶다. 평소에 통제했던 행동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예를 들면, TV를 여행 4일 내내 틈만 나면 봤다. 먹이에 굶주린 늑대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아이들도 매한가지였다. 기회가 왔으니 꼭 붙잡아야 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여행 중 딱 한 번 몸과 마음 모두 편히 식사했다. TV를 보는 동안 밖에 나가서 고기를 썰었다.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미국 서부 분위기를 자아내는 개성 있는 식당이었다. 제주도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이 있었다. 다양한 음식 가득한 조식 뷔페보다도. 아무래도 아이들이 주변에 없으니 신경 쓸 것도 긴장할 것도 없어서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이들 없이 편하게 먹는 음식이다.


너무나 귀엽고 예쁜 우리 집 똥강아지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세상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자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딱 그만큼 힘들다. 무한대에 가깝다. 무한사랑과 무한행복이니까.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지만, 육아 여행이 되어버렸다. 평일이면 어린이집, 학교라도 다녀오니 잠시 떨어져 있는데, 제주도에선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애증이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은 선을 지키고 떨어져 있어야만 숨 쉴 수 있다. 아내와 첫날 저녁에 대화를 나누며 계략을 짰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숨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말이다. 실내외 수영장은 사실 워터파크였다. 바다 수평선이 보이고 저녁엔 노을이 보이는 평화로운 리조트에 딸린 수영장이 따로 있었다.


워터파크는 아래층이고, 수영장은 위층이었기에 한 명씩 돌아가며 위층 수영장에서 혼자 하늘을 보며 숨쉬기로 했다. 수영장 난간에 기대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해를 피해 먼바다를 바라보는 낭만을 즐겼다. 불어난 내 몸집만 아니었다면, 더 당당하게 그 시간을 만끽했을 텐데. 40대 중년 남자 혼자 그러고 있으니 조금 청승맞아 보이기도 했다. 아내와 애들은 어디 두고 혼자 저렇게 쉬고 있나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었다. 그런 것 신경 쓸 시간도 부족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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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 후에 특별히 아내에게 선물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나마 값이 좀 나가는 선물이라면, 1주년 때 사준 지갑과 프러포즈할 때 걸어준 작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뿐이었다. 결혼식 전에 맞춘 예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남들 다하는 명품 가방이나 명품 귀금속은 사준 적이 없다. 명품 옷이나 신발도 사준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는 명품 같은 비싼 걸 살 여유가 없어 농담으로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명품이니 굳이 명품이 필요할까?” 그렇게 만날 합리화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명품이 뭔지도 잘 모를뿐더러 가지지 못했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형편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돈을 쓰는 게 오히려 아깝다고 생각했다. 같은 값이면 여러 개 사서 새것처럼 더 오래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또 하나 정도는 가지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혼 후 제대로 된 선물 없이 생일도 결혼기념일은 잠시 아이들을 어른들께 맡기고 영화 한 편을 보거나 맛있는 식사 정도로 때우곤 했다. 사실 두 어린아이를 육아할 땐 영화 보고 밥을 편히 먹는 것이 오히려 사치였으니까. 명품으로 사치를 부리기는커녕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사치인 삶이었다는 말이다.


아내도 이제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괜찮은 물건 하나 가지면 좋겠다 싶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여자로서의 삶이 아니었기에 결혼 10주년을 핑계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무엇이 좋을까 찾아봤다. 여러 추천 항목들이 있었는데, 내가 조금 다이아몬드 제품에 머물러서 살펴보았더니 알고리즘 때문인지 계속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브랜드 상품도 아닌데 가격이 꽤 나갔다. 문득 명품은 얼마나 할까 궁금했다. 내가 들어본 유일한 명품 브랜드가 있어서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봤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목걸이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업 특성상 주변에 여자들을 더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제품과 비슷한 것을 목에 예쁘게 차고 있는 걸 자주 봤다. 어딘가 브랜드 제품과 디자인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이 명품 제품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몰래 사서 아내에게 깜짝 선물로 줄까도 싶었지만, 연애 경험이 전무했던 과거 실패했던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악몽처럼 떠올랐다. 게다가 여기 제품은 착용하면 반품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가격도 한두 푼이 아닌데, 그렇게 바보 같이 망쳐버릴 순 없었다. 깜짝 놀라게 해서 기쁘게 하는 것보다 직접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게 해 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에게 결혼 10주년 선물을 사주려고 한다고 고백했다. 아내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듯했다. 계속 나에게 진짜 그래도 되냐고 반문했으니까. 나는 정말이라고 바로 시간 내어 백화점으로 가자고 했다. 마침 잠실에 있는 백화점에 본점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우니 차를 타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는 기분이 좋으면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입술이 비대칭이 되면서 하얀 이가 그 틈새로 살짝 드러난다. 나는 이때 아내가 기분이 최고조라는 걸 알기에 많이 행복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화점 주차장이 만차라서 돌고 돌아 롯데월드 쪽까지 이동해서 간신히 주차했다. 평소 같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텐데 기쁨을 사러 가는 길이니 나도 덩달아 여유로웠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하면서 나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비싼 물건을 사려니 이렇게 설레나 싶었다. 마침내 1층에 도착해 여러 명품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앱으로 지도를 켜고 열심히 목적지를 찾았다. 구석에 있어서 한참을 걸었다. 하지만 끝까지 매장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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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도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나인데, 분명히 이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주변 매장에 민망함을 무릎 쓰고 우리 목적지 위치를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기운이 빠졌다. 바로 옆에 있는 롯데타워로 얼마 전에 이전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인터넷 검색에서도 본점으로 나와 있었고, 심지어 내비게이션 앱에서도 여기로 나왔기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직진한 것이었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어느새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오후 1시 이전에 밥을 먹어야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는데, 거의 1시가 되어 갔다. 아내는 물건은 나중에 사고 밥부터 먹자고 했다. 당연히 10년간 나와 살았기에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질까 걱정해서였다. 심하면 이틀 동안 몸이 아파서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독박 육아의 세계가 열릴 테니 아내는 현명하게 일단 내 건강부터 챙기려 했다.


하지만 평소 고집을 잘 부리지 않는 내가 고집을 부렸다. 기분 좋게 우리의 목적을 먼저 이루자고 했다. 2시에 첫째 픽업하러 가야 하니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다. 간신히 이동해서 명품관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명품관은 예약하지 않으면, 대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1시에 도착했는데, 20~3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밥을 먹고 오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점심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역시나 컨디션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신나게 집에서 나왔는데, 나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아내도 말이 없어진 나를 보며 걱정했다. 목적이 분명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나도 최대한 버티는 게 가능했다. 점심을 쫄쫄 굶으며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순서가 되어 들어갔다. 나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아내는 여러 제품을 소개받으며 후보를 정했다. 좀 더 시간이 충분했으면, 더 여유롭게 고를 수 있었을 텐데 번갯불에 콩 구워서 먹듯이 빠르게 진행했다. 그렇다고 대충 본건 아니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색깔 등을 묻더니 재빠르게 반짝이는 물건들을 보여줬다. 아내는 얇은 것, 두꺼운 것 차례대로 준비된 장신구를 착용하고 거울을 보면서 신중하게 골랐다.


최종 후보는 2개로 좁혀졌다. 계속 가격은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막상 구매해야 하니 마지막으로 가격을 살펴보기로 했다. 특수한 기술로 만들어졌고, 다이아몬드 양도 더 많았던 한 후보 제품은 천만 원이 넘었다. 준비한 예산을 훌쩍 넘었다. 오히려 불가능을 경험하니 선택이 쉬워졌다. 처음부터 계속 마음에 들었던 제품이었다. 이것 또한 처음에 우리가 생각한 예산보다는 넘어섰다.


하지만 1초의 고민도 없이 나는 이것으로 달라고 점원에게 말했다. 아내는 살짝 놀라는 듯했지만, 다시 입꼬리는 귀에 걸려 있었다. 하얀 이를 조심스럽게 드러내며 말이다. 아내도 점원도 매우 만족한 눈치였다. 조심스럽게 대신 고급스럽게 포장된 제품을 받았다. 결제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어느새 시간은 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편의점에 들러 응급조치용 샌드위치와 초콜릿 우유를 집어 들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아내는 두 손 모두 바빴다.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들고 내 입에 넣어주느라 그랬다. 다른 한 손에는 명품 제품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2시간의 굶주림이 나에게 어떤 큰 후폭풍을 줄지는 당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배고픔을 잊었기에. 배가 너무 고프면 오히려 배고픈 줄 모른다고 하는데 바로 그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시간이 있었으면, 과연 우리는 결혼 10주년에 하와이에 다시 갈 수 있었을까? 부부만 갔다면 어쨌든 비용은 비슷했을 것 같다. 다만 아이들까지 더하면 예산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10시간씩 좁은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의 온갖 투정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조금 더 힘들었어도 이국적인 장소에서의 결혼 10주년 추억은 더 기억에 남았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솔직히 다른 여건이 다 된다고 해도, 일하고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체념도 빨랐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4인 가족 완전체가 4박 5일 동안 지지고 볶고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힘든 육아 여행이었지만, 가끔 여유로웠던 순간들이 떠오르니까. 수영장에서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은 바다를 보고, 노을을 보던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 타러 간 10분 동안 근처 커피숍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사색하던 순간도 떠오른다. 여행 일정을 모두 끝내고, 공항에서 비즈니스석 혜택인 라운지까지 편하게 이용하던 모습도 포함하여. 힘든 만큼 행복했던 가족 여행을 기억한다.


그리고 남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던 반짝이는 행복을 아내에게 처음 선물한 날 저녁부터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졌다. 속이 안 좋아서 소화도 잘 안 되고,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와 중에 비싸서 사지 못한 물건을 내려놓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더 부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무의식적으로 은행 앱을 켜고 적금을 신청했다. 계산해 보니 한 달에 10만 원씩 10년간 모으면, 천이백만 원을 모을 수 있다. 그러면 딱 그 제품을 살 수 있다. 한방에 천만 원은 크지만, 한 달에 10만 원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20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아주 성공적이었던 연애 1주년 행사와 프러포즈처럼 성공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와이를 가기 위해서는 넉넉히 2천만 원은 필요할 테니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부터 20만 원씩 적금을 추가로 들 것이다. 티끌은 아니지만, 분명히 꾸준히 모으면 내가 목표로 하는 금액을 모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설프게 주식을 하다가 돈만 날리지 않는다면, 분명히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원금 손실 없이 잘 모은다면 그걸로 가치 있는 일에 소중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나의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기를 희망하며.


(엔딩곡)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두 사람

- 2005년 4월에 발매된 성시경의 4집 앨범 ‘다시 꿈꾸고 싶다’, 14번 트랙에 위치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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