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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노후준비

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by 신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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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이 있다면, 연금을 내가 절반을 내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절반을 내준다. 일반 직장에 다닌다면, 국민연금을 낼 것이다. 나도 장교로 군 복무할 때부터,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는 계속 국민연금을 냈었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전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사학연금을 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자기가 속한 직장에 맞게 연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퇴사할 때 다행히 내가 10년 넘게 연금을 부었기에 연금을 탈 수 있는 대상자였다.


혹시라도 퇴사하게 된다면, 연금을 받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65세 이상부터 매달 연금을 받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퇴사 시점에 한 번에 다 받는 것이다. 월급에서 연금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지만, 나이가 들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대비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얼마나 내가 혜택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 꼭 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무렵엔 아버지가 정년에 퇴직하셨다. 그리고 내가 퇴사를 할 시점에는 장인어른이 정년으로 퇴직하셨다. 두 분 모두 공공기관에서 근무하셔서 퇴직 시점이 6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기관에 따라 연금은 크게 차이가 났다. 물론 그동안 많이 부은 액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연금을, 장인어른은 공무원연금 대상자라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금액까지는 말하기 그렇지만, 약 3배 정도 차이가 났다. 그리고 수령 가능한 나이도 달랐다. 지금도 그 시기가 조정 중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수급하기 위해서 퇴직 후 몇 년간은 연금을 받지 않으셨다. 수입이 없으니 주변 도시로 가서 따로 생활하며 힘든 일을 했다. 1년 조금 넘게 하셨는데,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


얼굴을 보면 멀쩡했던 한쪽 눈이 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오는 게 분명했다. 다행히 그 시점에 원하던 목표액으로 연금 수령이 가능해졌다. 위기가 왔지만, 다행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생활비는 넉넉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빚 없이 지방 소도시에 살아갈 작은 주택이 있었다. 근데 그냥 딱 생활만 하는 수준으로 살아갔다.


한 번은 연금이 나오기 전 시기였는데, 어머니 말에 가슴이 아팠다. 여유가 없으니 남들 다하는 외식도 못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기를 먹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치킨을 사달라고 할 때 사줄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아이들도 다 키우고 오직 두 분만이 살아가시면 되는데도 이럴 수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직장이 있는 게 아니니 수입이 없으니까.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구나 싶었다.


예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무언가 물어본 적이 있다. 매달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지는 않느냐고. 그 친구는 양가에 노후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서 맞벌이하면서 번 돈으로 일부를 떼어 생활비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부럽다고 했다. 오롯이 내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만 돌보면 되니까 좋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실제 지금도 그 부담은 내가 지고 있지는 않아서 100% 공감하지는 못한다. 다만 넉넉하지 않은 노후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걸 느낄 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 내 노후는 먹구름이 낀다. 연금을 타고 나왔더니 더는 연금 납부 대상자가 아니게 되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 나는 연금 없이 노후를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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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어느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일을 하니 연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월급을 받는 직장에 잠깐 소속되었는데, 담당자가 내가 이미 사학연금을 타서 국민연금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원한다면 개인이 혼자서 임의 가입자로 내면 된다고 했다. 굳이 여유가 없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업자를 내고 나서도 여건은 똑같았다. 쉽게 말해, 나는 지금 연금을 내지도 않고, 노후에 연금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다. 아무런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 연금이든 저축이든 할 여유가 없지만, 노후를 위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국민연금부터 가입할지 고민했다. 뉴스를 보면 이런저런 말이 많아서 불안했다. 내가 돈을 다 넣어도 넣은 만큼 다 받지 못할까 말이다. 두 번째로 연금저축을 알아봤다. 연금저축 통장에 넣어두면 연말 정산할 때 연 6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된다고 하기에. 그리고 이 통장에 있는 돈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면 인플레이션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S&P 같이 지수에 투자하는 ETF 상품을 의미했다.


미국 시장이 망하지 않는 이상 그동안 계속 상승 곡선을 이뤘으니 당연히 이 전략이 가장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거꾸로 전쟁이나 테러 등으로 미국 시장이 동요하면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세금도 아끼고 투자 가치도 있으니 이 방법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거기에 IRP 같은 상품도 있었다.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추가로 300만 원을 더 세액공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금저축을 600만 원 세액공제받으려면 월 50만 원씩 저축해야 한다. IRP도 25만 원씩 해야 한다. 합쳐서 75만 원인데 지금 당장 감당하기엔 큰 액수였다. 아이들 한창 키울 때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내 미래는 참담할 것이다. 최대로 세액공제 되는 부분이니 조금씩이라도 늘려가면서 하면 어떨까 싶었다.


개인연금보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품이 다양해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좀 더 저축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이것까지 고려해서 노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아볼수록 할 수 있는 건 많지만, 결국 지금 수입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직장인처럼 매달 일정한 금액이 책정되어 비율을 나누거나 해서 쓰면 좋은데, 매달 수입이 들쑥날쑥하니 좀처럼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보통 20년 납부이고 65세 개시할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 보니 아직 2~3년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년 후의 미래가 아니라 당장 매달 앞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지금 순간에 집중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미래가 캄캄하지 않을 테니까. 만 62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사학연금에 많은 금액을 붓던 과거에는 이런 고민을 전혀 안 했었지만, 확실히 퇴사 후에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느낀다.


그렇다고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한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그 틀을 깨고 싶어서 도전한 거니까. 안 좋을 땐 안정적일 때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지만, 내가 얼마든지 올라가려고 하면 무한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누군가 시키는 일을 잘 처리하면서 그게 내 성격과 잘 맞는 것이라고 착각했으니까. 지금은 오히려 주도적인 삶이 내 성향에 알맞다는 걸 알기에. 내가 기획하고, 실천하고, 결과를 통해 피드백 및 수정하면서 다시 과정으로 돌아가는 삶이 더 재미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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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계획할 때는 자기 객관화는 필수다. 지금 내 상황을 파악하여 어느 정도로 준비를 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일단 수도권에 자가 아파트를 팔고 서울로 오면서 내 집은 더는 없다. 그나마 보증금이라도 어느 정도 있으니 혹시라도 여기서 더 버티지 못해도 어딘가 갈 곳은 있어서 다행이다. 내 인생에 첫 번째 부동산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얻은 결과이니 참으로 다행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확이었다고 본다.


비록 거의 ‘외벌이’에 가깝지만, 지금 상황으론 다행히 두 아이를 키우면서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아직 시도하지 않은 많은 일이 있어서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갑자기 내려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사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직장인에 가까운 사업자라 약간의 안정성도 있지만, 불안정성도 동시에 공존한다. 그래도 과거에 고기반찬 못 먹고 콩나물 반찬으로 도배하던 만큼은 아니니까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다만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거기에 맞게 대응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 우선 내 본캐인 작가이자 강연자로서 삶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학부모교육은 좀 더 할 수 있겠지만, 어린 학생과의 만남은 내 외모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또 이것도 알 수 없다. 할아버지라도 아이들과 잘 소통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부캐는 영어교육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시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동향을 살피며 대책 논의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항상 쉽지 않다고 느낀다. 가장 이상적인 건 앞으로 5년 안에 시스템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직접 다 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일을 함께 나눠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기획한 것들을 나 대신 실현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직 쌩쌩한 40대지만, 50대가 되면 분명히 여러 이유로 에너지가 부족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내가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시대 변화를 감지하고, 대책을 세워서 대비하고, 더 좋은 방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온몸으로 뛰면서 밤낮없이, 평일 주말 없이 일만 하는 삶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노후준비를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풍족하게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당연히 연금도 준비해서 고정적으로 나오는 돈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또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수입이 꾸준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노동소득과 연금소득이 공존해서 돈 때문에 힘든 노후를 보내지 않고 싶다는 마음을 강렬히 비추어 본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더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다.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불안정성 속에서 불안감을 때론 느끼기도 한다. 여유가 없어도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재능 기부 등 다른 방법으로는 되는데 물질적으론 그게 아직은 어렵다. 물론 소소하게 무료 강연을 열기도 하고, 강연에 가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책을 사서 청중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후준비를 생각하면, 가끔은 내가 아직 여유도 없으면서 이러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무리 노후준비를 잘해두어도 금방 죽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게 무엇이 되었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고 싶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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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으로 퇴직 후에는 돈이 들어갈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생활비만 있으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프면 병원비 정도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의외로 경조사비가 많이 들어간다. 집이라도 낡았다면, 새로 바꾸고 고쳐야 한다. 고정 지출 이외에 변칙적으로 돈 나갈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본다면, 주변 어른들을 통해서다.


자식들 결혼이 늦으니 퇴직 후에 많은 일이 생긴다. 집 사는데 돈을 보태지는 못할지라도 결혼 준비 때 돈이 꽤 들어간다. 그러다 아기를 낳으면 출산 선물도 해야 하고, 100일엔 반 돈 짜리 금이라도 해줘야 하고, 돌 때는 최소 한 돈이라도 챙겨줘야 하니까. 요새 금값이 많이 올랐다. 금 3.75g 한 돈이 70만 원이 넘는다.


노후에 예비 자금이 없으면, 내 손주가 태어나도 꼬까옷 하나 사주지도 못한다. 백일, 돌 등 다양한 기념일에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별수 없지 않은가. 당장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니 말이다. 심하면 손주를 볼 때마다 용돈이라도 손에 쥐여줄 돈도 없을 수 있다.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실제 그게 부담될 수도 있다.


강릉에 사시는 부모님이 보일러가 고장 났다고 하셨는데,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감당하실 수 있는 걸까 걱정이 앞선다. 돈을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직접 사서 교체를 하셨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돕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통증이 있다고 하신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여유가 없으니 몸이 상한다. 내 마음이 착잡하다. 그냥 내가 비용을 내드린다고 할 걸 그랬나 싶다.


가끔 냉장고, 세탁기, TV 등 비싼 물건을 교체할 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다. 당연히 여유가 있으면 도와드리고 싶은데, 내가 그럴 상황이 안 되면 마음만 아프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하신 걸 아닐 텐데 자식으로서 여러 감정이 든다. 물론 안타까움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장 크다. 더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그러면서도 나중에 나는 내 자식들에게 이런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내 마음대로 이게 되는 게 아닐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준비는 조금씩이라도 꼭 할 것이라 다짐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반대로 처가 어른들은 항상 우리를 걱정하셨다. 기회가 되면 뭐라도 도와주시려고 노력하신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는 우리도 연금으로 살아가야 해서 마음처럼 도와주는 게 쉽지 않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저희는 이제 괜찮다고 말이다. 사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 위기가 있었지만 일부러 말씀드리지 않았다. 괜히 걱정하며 마음만 불편하실 걸 알기에. 다행히 지금은 그 위기를 넘기고 다시 올라가고 있으니 미래엔 분명히 더 좋은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앞으론 부모님이 어렵고 힘드실 때 도와드릴 것이라 다짐한다. 그동안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께 꼭 보답하리라고 말이다.




사업자들을 위한 노란 우산 공제라는 게 있다. 소기업이나 소상공인 공제제도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목적으로 설립했단다. 나는 이것도 내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이 잘되고 있는 지인은 오히려 가입하는 게 손해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묶어두게 되는 거라고 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구나 싶었다.


과거에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 가입했던 장례 보험, 펀드 보험 등 모두 손해를 보고 해지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무언가를 가입할 때 더 신중해진다. 현금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예비 자금이 여유 있게 있어야 한다. 주식을 할 때도 예수금이 있어야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원리와 같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가전제품도 다양한 물품들도 낡아 가고 있다. 나중에 필요한 생필품의 경우엔 갑자기 돈이 또 나갈 테니까. 여러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축하면서 대비해야 한다. 돈이 정해진 직장인일 때도 쪼개어서 적금을 들어 미래를 대비한 것처럼. 과거보다 여러 상황이 예측 불가한 현재로서는 더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지인이 최악을 고려해서 대비하면, 최악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좋은 전략이다. 꼼짝없이 망하게 될 거라 예상했다가 그 수준까지 가기 전에 해결하니 오히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다. 강한 충격을 통해서 잠시 우울감을 극대화가 되겠지만,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최악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을 맞이해도 이미 거기까지 수를 봤으니 힘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노후는 아직 알 수 없다. 최악의 수까지 앞으로 고민해 볼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을 굶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어떻게든 사람을 살아가게 된다. 만족의 차이일 뿐, 사람은 쉽게 죽지 않으니까. 몸 건강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금을 준비해야겠지만, 그걸 다 오래 다 쓰고 가기 위해서 근육연금도 부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의 병이 우리를 죽게 하니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즐거움을 찾으며 살 것이다. 퇴사의 결정적인 이유는 돈보다 바로 그 마음의 문제였기에. 비록 지금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를 위한 삶을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충족하는 노후준비가 될 것이라 믿는다.


(엔딩곡)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슈퍼스타

- 2005년 12월에 발매된 가수 이한철의 2집 앨범 ‘Organic’, 4번 트랙에 위치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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