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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언제나 퇴사를 꿈꾸는 당신께...

83년생 퇴사 후 이야기

by 신영환

오늘도 출근을 준비합니다. 눈은 반쯤 감은 채로 세수를 하든 양치를 합니다. 아침은 또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나갈 채비를 합니다. 힘겨운 하루가 또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중 금요일이 가장 좋습니다. 다음으로 토요일이 좋습니다. 아직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시 일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괜히 우울합니다. 내일은 월요일이니까요.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삶이 싫었습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이었으니까요. 시스템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죠. 직장에서는 얼마든지 나를 대체할 수 있었기에 나는 한낱 부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그게 싫어서 그만뒀습니다. 나만의 삶을 개척해 보겠다고요. 다행히 무식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습니다. 직장이 없으니 내 신분도 불명확해졌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이 많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퇴사하며 타 둔 연금을 비상금으로 두었기에 굶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책 쓰고, 강연하고, 여행하며 유유자적한 아름다운 삶을 꿈꿨습니다. 꿈은 꿈일 뿐이었습니다. 현실은 꿈과 반대니까요.


가족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만일 나 혼자였다면,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살면 되는 일이지만 그럴 수 없었죠.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정말 힘들게 따낸 정규직 자리였으니까요. 다시 시험을 보면 되겠지만, 지금 나이에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똑같은 삶이 또 반복되니까요.


하지만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보다 내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더라고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들이 못하는 걸 도와주거나, 남들이 하기 싫은 걸 대신해 줘야 하거든요. 사실 일반 직장인도 대표나 임원들이 하기 귀찮은 사소한 행정업무 등을 처리하는 역할이죠. 다만 누군가 시킨 일을 해야 하니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요. 그래도 안정성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버티기만 하면 어쨌든 매달 월급이 꼬박 들어오니까요.


프리랜서가 되어보니, 사업자를 운영하다 보니 직장인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돈을 버는 건 한정적이지만요. 한정된 돈으로 살아가는 게 위기나 위험이 아니라면, 그냥 있는 게 좋습니다. 차라리 직장에서 주는 복지를 최대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을 해보세요. 그게 가장 안전하게 살면서 최대한 누리는 방법이니까요.


지인들이 가끔 묻습니다. 퇴사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좋을까 말이죠. 저는 그러면 무조건 뜯어서 말립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나왔지만, 이제는 현실을 아니까요. 지금 아무리 시궁창 같은, 지옥 같은 그런 상황일지라도 버티라고요. 물론 내가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긴 해야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버티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을 한번 잘 확인해 보세요. 틀에 갇혀서 살아가는 게 좋은지 싫은지 말이에요. 단순히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게 괜찮은지 말이에요. 혹시 내가 원하는 방향을 이루고 싶은지 말이에요. 돈을 더 벌고 싶은지 아닌지 말이에요. 퇴사를 꿈꾼다면 다양한 각도로 확인해 봐야 해요.


또한 직장을 나와서 지금 일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해야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굶어 죽으니까요. 평생 먹고살 돈을 모아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리고 나이가 애매하면, 재취업이 힘들 수 있어요. 오히려 경력이 많은 사람을 쓰는 걸 꺼리죠. 회사 일에 적응하는 시간도 걸리고, 무엇보다 경력직은 돈을 많이 주어야 하니까요. 오히려 원래 직장에서 최대한 있을 수 있는 만큼 버티는 게 최선일 수 있다는 말이에요.


저도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하고 나면 정말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 놓인다는 건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예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는 하나 최소 3개월이 필요하죠.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3년까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아직 그 시간을 다 보내지 못한 저로서는 좋은 것도 있지만, 힘든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여러 일이 동시에 발생하니까 더욱 그래요.


물론 정말 좋은 것도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똥강아지들이 제게 와서 안겨 있어요. 그렇게 뒹굴뒹굴하다가 밥 먹이고, 옷 입혀서 각자 학교로 보내죠. 전 직장에 다닐 땐 매일 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어두울 때 집을 나갔으니 꿈도 못 꾸던 일이죠. 그리고 저녁 먹는 시간부터 씻기고 애들 재우는 시간까지 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 이걸 누리지 못하고 10년 넘게 살았다는 게 슬픈 일이죠. 퇴사하고서야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어요. 퇴사하고 가장 좋은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거예요. 물론 항상 내가 하나를 누리기 위해서는 9개의 힘든 일을 해야 하죠. 가족과 시간을 보낸 만큼 나머지 시간엔 밤, 낮,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해야 해요. 오히려 일이 많은 게 좋은 일이고요.


일이 없으면 가장 불안합니다. 행여나 돈을 못 벌어서 굶을까 봐요. 그래서 미친 듯이 일을 합니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요. 그런데 직장에서도 일하는 시간은 비슷했던 것 같아요. 한 가지 다른 점은 퇴사 후에는 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으니 좋아요. 일이 많이 들어온다는 전제하에요.


다만 일이 없을 땐 체력을 키우고 이것저것 시도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나아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거죠. 그런데 이걸 또 견디지 못한다면, 절대 나오지 마세요. 안정성을 추구하세요. 물고기가 물 밖으로 숨 쉬러 나왔다가 다시 물로 돌아가지 못해서 죽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다행히 저는 물고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 밖에서 살아야 하는 종이었나 봅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어려운 점도 많지만, 기꺼이 즐기면서 하고 있거든요. 불안정성과의 끝없는 싸움이 될 테니만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고요. 지금 하는 인생의 고민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미래의 내 삶을 만들어 갈 테니까요.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이 무엇이든지, 내 역할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퇴사 후 또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서로를 원하고 필요로 해서 공존하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톱니바퀴가 돌아가려면 큰 바퀴와 작은 바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요.


그동안 누군가 밑에서 일하는 걸 단순한 부품이 되는 것이라고만 착각했어요. 지나고 보니 내 역할은 이 세상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꾸 불평할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보자는 이야기예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접시 닦는 일을 하는 사람 있었다고 해요. 그 상황에 대해 대하는 태도가 다를 때, 과연 누가 미래에 더 성공했을까요? 성공한 사람은 그 상황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해서 성공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요. 오히려 접시를 어떻게 더 깨끗하게 닦을 수 있을까 고민한 사람이 성공했다고 해요.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겠죠?


저도 두 번이나 같은 상황을 겪으면 깨달은 교훈이네요. 물론 또 앞으로도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겠지만, 지난날보다는 슬기롭게 마음가짐을 해보려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것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니 잘 해결해 보려고요.


혹시라도 저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기보단 부모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이는 우리 뒤에서 우리 등을 보며 자라니까요. 부모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배워나가니까요. 부모가 행복할 줄 알면 그대로 배워서 따라 할 테니까요. 뇌과학을 좋아하기에 거울 효과의 힘을 믿습니다. 내가 힘들다. 힘들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아이들도 무너지더라고요. 분명히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할 거라 믿습니다.


정말 끝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경제 활동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하고 있기가 어렵지만, 취미활동은 충분히 좋아하는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꾸준히 3년 이상 지속하면 혹시 아나요? 저의 어머니처럼 혹은 저처럼 취미가 두 번째 직업이 될 지도요. 저도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주로 돈을 벌면서 자아실현은 그 덕분에 이렇게 하고 있네요.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단편 소설을 겨우 쓰고 있지만, 인생 마지막엔 ‘소설가’가 꿈인 저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글을 씁니다. 아직 앞으로 몇 번은 단편 소설로 습작을 여러 편 더 낼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미래엔 제가 쓴 장편 소설을 독자들이 읽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한 건 아니니까요.


(엔딩곡)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에.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 달라고.”


*마법의 성

- 1994년 7월에 발매된 가수 The Classic의 1집 앨범 ‘마법의 성’, 1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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