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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Aug 06. 2020

나의 플레이리스트(Playlist)는

각자 몫의 감상이 있으니까


기억이 존재하는 시점부터 말하자면 내게 처음으로 음악을 들려준 친구는 카세트플레이어다. 이후에는 워크맨이, 이어 CD플레이어가 그리고 MP3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몇 해 전, 제법 몸값이 나가는 블루투스 오디오를 장만했다. 꽤 오래 쇼핑리스트에 담아둔 항목이다. 제 아무리 막귀(이어폰, 헤드셋 등 음향기기로 노래를 감상할 때 음질이 좋고 나쁨을 잘 구별 못하는 귀를 말한다)여도 우아하고, 고상하게 음악을 듣고 싶은 오랜 바람의 실현이었다.

     

요즘 들어 남들과 같은 방식,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음악 듣기를 거부하며 ‘바이닐(LP)’에 입문하는 이들이 많다. 다시 LP가 인기라지만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하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다. 음악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방법을 속속 바꾸며 나의 귀로 살포시 흘러들고 있다

 

학창시절엔 주로 대중음악을 들었다. 앨범 재킷(Album jacket)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듣고 또 들으며 가사를 외웠다. 친구와 버스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꽂고 유행가는 물론 감성까지 공유했던 시절이 있었고, 사연과 함께 손으로 끼적끼적 신청곡을 적어 보냈는데, 라디오에서 DJ 오빠가 사연을 읽어준 후 신청곡이 흘러나오던 순간의 짜릿함을 여전히 기억한다. 


요즘 나의 플레이리스트(Playlist)는 제법 다양하고 화려하다. 뮤직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 속 내 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는 상황과 기분에 맞게 귓속에 흘러들기 원하는 음악이 주제별로 담겨 있다. 출근길과 퇴근길 플레이리스트가 다른데, 출근길에는 조금 경쾌한 음악을 주로 듣고, 저녁 퇴근길에는 인디음악이나 감성 발라드, 혹은 재즈(jazz)를 듣는다. 운동을 할 때는 ‘온라인 탑골가요’를 들어야 흥이 차오르고 동작에 날개를 달 수 있다. 각자의 폴더에서 얌전히 계절을 기다리는 음악도 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그룹 쿨(Cool)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윤종신의 ‘팥빙수’나 악동뮤지션의 ‘콩떡빙수’도 여름용 폴더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쿨렐레 연주는 마치 여름 악기인 듯 그 소리가 청량하고 시원해 여름이면 자주 찾아 듣는다.  

     

내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새삼 생각해본다. ‘혼자 하고 싶은 것.’ 스트레스가 왕창 쌓였을 때 수다와 쇼핑, 맛있는 것 먹기, 예능 프로그램 보기, 산책, 음악 듣기 등으로 탈출한다. 그 가운데 먹기, 사기, 놀기, 보기, 걷기는 같이 해야 더 좋다. 음악 감상만큼은 예외다. 혼자 들어도 외롭거나 섭섭하지 않고,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좋아하는 음악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혼자 듣고 싶다.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저마다 느낌은 다르니까. 각자 몫의 감상이 있으니까.


10여 년 전, 경주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배차 간격이 1시간은 족히 되는 버스, 쉽게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 나와 함께해준 노래 한 곡 덕분에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아르코(Arco)의 퍼펙트 월드(Perfect World)라는 노래에 흠뻑 빠져 있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던, 꿈 많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음악은 나를 청춘으로 되돌려 경주에 데려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의류 매장으로 데려다놓는다. 코로나가 만든 전혀 새로운 세상 탓에 쉽게 여행조차 떠나지 못하는 내가 여행을 하는 새로운 방법,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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