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바르셀로나,프라하를 거쳐 다시 비엔나의 KFC에 앉아 치킨을 먹으며 바깥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처음 빈에서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이곳 어디에든 자리잡아 10년 정도 지내면 그렇게 다시 새로운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6개월짜리 항공권의 유효기한이 몇달이나 남은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순례길의 성취감은 이미 저 멀리 지워져버렸다.
한국음식이 그리웠지만, 들어오니 다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비자로 머물 때 입문라이센스를 땄던 스쿠버다이빙이 떠올랐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게 우스웠지만, 그 일이라면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것같았다.
어차피 돈벌어서 성공하면 그렇게 살고 싶은데, 전후관계가 바뀌어도 결국 같은 거 아니냐는 말을 공무원인 누나에게 하니 "같은 건 아니지"라고 나직이듯이 대답했다. 맞다. 같은 건 아니다.
필리핀에서 스쿠버장비를 구입하고 강사자격증을 따는데 대략 1천만원 정도면 생활비까지 해결이 될 것 같았다. 울산에서 플랜트설비 교체공사를 하시는 고모부 밑에 내려가 현장일을 하며 몇달 지내기로 했다. 딱 돈을 그 정도만 모아 필리핀으로 갈 계획이란 말씀도 드렸다.
6시에 일어나 현장에 가서 일을 하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에 들어와도 초저녁이었다. 시간이 많았다. 대학교 고학년때나 취업해서도 잘 이해가 안 가던 책이 있었는데, 차근차근 읽어보니 머리에 들어왔다. (이 시기 주식가치평가 안내서인 '우아한 투자'를 이북으로 썼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눈에 들어온 것은 해외스타트업관련 칼럼들이었다.
나는 모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버가 되고 싶었던 건데, 모험하는 삶보다 더 모험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내 전공인 경영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이다. 기업은 하나의 업, 즉 Industry를 새로 세우는 일이다. 단순히 하나의 업체(Company)를 새로 만드는 창업을 뛰어넘는 근사한 일이란 것을 스타트업 칼럼들과 인터뷰를 통해서 깨닫게 됐다.
1000만 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생활비를 빼고 대략 4개월 정도 일을 해야 했다. 유류/가스플랜트들은 24시간 돌아가다보니 배관의 특정 부분은 교체해야 할 곳이 항상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배관 일부를 교체하거나 보수하는 일이었다. 배관사1명, 용접사 1명, 조공(조수)1명 이렇게 3명이 한팀으로 움직였는데 팀은 때때로 바뀌었다. 나는 조공으로 따로 기술이 없기에 역할도 한정적으로 주로 몸쓰는 일을 맡았다. 플랜트 설비는 고층이라도 난간이 따로 없다. 그 위로 배관 등 자재를 옮기려면 4~5층 가장자리에 서서 받아 옮겨야 했다. 과한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럴 때면 다리가 후들거렸고 같이 일하는 형들은 그런 나를 보며 낄낄댔다. 거의 항상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는 배관 위에서 일을 했지만, 나는 비오는 날이 좋았다. 특히 장대비를 맞으며 작업을 하다보면 투쟁심 비슷한 것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고모부의 사업은 나날이 커졌다. 4년제를 나왔으니 사무실에서 일해보란 말에 막판에는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약속했던 기한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니, 고모부는 진짜 갈 줄 몰랐다고 다소 놀라워했다. 하지만 필리핀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돈으로 창업을 하기 위해 저녁마다 사업계획을 2달 정도 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