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견과류 1+1 행사를 하기에 간만에 그래놀라를 만들었다.
나는 단순하지만 손이 꽤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음식을 만들 때 마음이 안정된다.
그래서 생각이 많을 때는 일부러 묵을 쑤어 먹기도 하고, 방울토마토의 겉껍질을 일일이 벗겨내어 마리네이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순전히 견과류 할인 행사 때문에 그래놀라를 굽기로 했다.
브라질넛, 캐슈너트,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 호두, 아몬드를 적당한 크기로 다지고 오트밀을 섞고, 으깬 바나나와 꿀 등으로 단 맛을 추가해 오븐에 구워주면 된다. 과정이야 간단하지만 꽤나 단단한 재료들을 다지는 일은 꽤 많은 시간을 요한다.
재료를 섞어 오븐에 넣어 굽는 사이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신발을 벗기 전부터 아이는 마치 동화책 속에 나오는 꼬마처럼 눈을 감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이게 무슨 냄새야?"라고 물어온다.
피식 웃으며 "그래놀라"라고 답하니 아이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번진다.
늘 한가득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두고 먹는 간식인데 평소에는 관심 없는 녀석은 꼭 그래놀라를 굽는 날에만 반응이 좋다. 아마 온 집안을 채우는 고소한 향기와 온기 때문이리라.
어느새 한 판이 완성되어 식탁 위 쟁반에서 식히려 펼쳐놓자 기다렸다는 듯 슬금슬금 다가오는 딸.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얼른 한 줌 쥐어 우다다 도망치는 흉내를 낸다.
그러면 나는 짐짓 모른 척해준다.
그래놀라를 굽는 날에만 하는 우리 둘 만의 도둑고양이 놀이다. 몇 번 모른 채 하다가 곧 밥 먹어야 하니 적당히 먹으라고 해도 고소한 맛과 상황극에 심취한 아이는 그래놀라를 향한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알았어." 하고 내 시선이 멀어지기 무섭게 또 한 알 입에 쏙, 또 한 알 입에 쏙..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그 순간이 문득 너무 행복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소박하고, 장난기 가득한 딸과 나...
너무 진부해서, 그러나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져서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엄마와 딸의 모습.
지금의 내가 그 형태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남몰래 안도했다.
2025.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