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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최적화 플랫폼

by 김윤담

생각이 너무 많아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칼로리가 소모되는 것 같은 삶을 사는 INFJ의 삶은 녹록지 않다. 남다른 가정환경에 얽힌 사연까지 품은 채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2020년 8월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건...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피해 도피하듯 결혼한 뒤,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림을 차려 나만의 동산을 가꿔보리라던 열심히 산산이 부서진 해였다. 드디어 엄마로부터 멀어졌는데 몸이 망가졌다. 개복수술로 간에 붙어 있던 10cm짜리 종양을 떼어냈지만 몸뚱이는 이미 노파가 되어버린 듯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몸이 약해진 틈을 타 '반추'라는 괴물은 나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두 돌도 되지 않은 딸의 어여쁨을 보며 웃다가도 이 아이처럼 작았을 나의 유년이 떠올라 괴로웠다. 지금 이 아이처럼 사랑받고 지켜져야 했을 '나'가 가여워 눈물은 줄줄 흐르고, 입에선 수시로 욕지기가 일었다. 그동안 이만큼 버티며 살 수 있었던 건 다 몸이 버텨줬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최후의 보루였던 몸이 스러지자 원망, 배신감, 증오, 분노... 잿빛의 감정들이 나를 잠식하고 봉인된 기억이 나를 폭발 일보 직전으로 만들었다.

그 기억들은 너무 짙고, 끈적이고, 냄새나는 종류의 것이라 이것을 어디에다가 배설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연고 없는 타지로 왔으니 아는 이도 없었고, 아는 이가 있다고 한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누워서 오물 뱉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쓰레기통이 필요했다. 평생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살아오면서 감정을 버리는 사람이 나라는 인간이란 사실이 늘 괴로웠으니까.

아무런 말도 없이 기꺼이 문을 열어 들어오라 손짓한 건 '브런치 스토리'였다. 브런치 작가 등록 신청을 하기 위해 짤막한 글을 몇 개 올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반복되는 지루하고 나약한 일상에 활기를 반짝 더해준 사건이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 첫 글의 제목은 '독한 년의 기원'이었다. 홀로 나를 키워준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정리되지 못한 채 잠심 되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브런치에는 나를 아는 이가 없고, 이름마저도 닉네임으로 가렸으니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질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나의 삶을 서술할 수 있었다. 욕할 테면 하라지. 비난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써 내려갔다. 타닥타닥, 타자를 치는 내내 많이 울었고 두려웠다. 그러나 한편 후련했다. 명동 한 복판에서 내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을 훌훌 벗어던지는 것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혹은 미친 생각으로 써 내려갔든 글 밑으로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모여들었다. '이거 완전 제 얘기네요.' '우리 엄마 모습과 똑같아서 놀랐어요.'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네요. 저 같아서...' 하나같이 내 마음을 안다는 댓글들에 혼란스러웠다.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고? 나의 유일한 상처가 아니었다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대신 글로 써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전해왔다. 난 그저 해묵은 기억을 꺼내놨을 뿐인데...


그렇게 대나무숲에 외치듯 적어 내려 간 글은 끝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미 전 원고를 브런치에 업로드해둔 덕에 나의 글과 그 밑에 달린 반응을 고스란히 출판사에 전달할 수 있었다. 다정하지 않은, 화해하지 않는, 상처로 얼룩진 모녀의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설명하는 대신 보여줄 수 있었다. 책이 될 거라 상상하지 못한 채 쓴 글이었으나 이젠 책이 되었다.

마음속에 가둬둔 채 썩히고만 있었다면 영영 태어나지 못했을..


지금도 여전히 브런치에 글을 쓴다. 브런치의 첫 시작이 내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거울로 비춘 것이었다면 지금은 빛을 비추고 싶다. 엄마와의 절연을 선택한 한 여자가,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여자가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는지, 정말로 괜찮은 건지 궁금한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들려주고 싶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정말로 괜찮다고. 그러니 당신도 괜찮을 수 있다고.

여전히 불안하고 자주 울고, 화가 나지만 쓰지 않고 무기력했던 날들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 숨 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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