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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설득하지 않는 이유

by 김윤담

내가 좋아하는 어른과의 대화

말맛이 좋아서 옛날 얘기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웃으며 이야기 흘려듣다가 한 번씩 목에 가시처럼 턱 걸리는 구절이 있다.

옛날 시어머니 살아생전에 애들 할머니가 꼭 닭다리를 제일 먼저 집었다고 손주 둘인데 그럼 남은 닭다리 하나를 누가 먹느냐고, 당연히 아들이 먹지

마흔이 다 된 큰 딸은 두고두고 그게 서운하다는데 여자라서 그렇다 그런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산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시어머니가 기어코 닭다리 먹던 걸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사실은 그런 게 제일 오래 마음에 담기는 거란걸 알면서

딸 키우는 일이 내 맘 같지 않아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너도 나만큼 자식 키워보면 그 마음 알겠지 부모는 다 그런 거다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확인한다.

굳어버린 생각 정당하다는 믿음, 그런 것들은 그냥 두기로 한다

설득하지 않고 그 자리에 둔다. 미워하지 않고 슬쩍 비껴 앉는다. 웃으면서 입을 다문다.


우리가 같은 성별이어도 어쩌면 같은 성별이라서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이 분명히 있다.

내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듯 그 분또 한 내 말에 동의할 수 없을 테니까


다만 그 어른이 둘째는 언제 낳느냐고 물으면 나의 딸이 큰 딸이 될까 두려워서라고 생긋 웃으며 답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둔다.


어린 시절 크고 작은 추억 중에는 작은 것이 깊게 박혀 영영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0화를 보니 50살이 훌쩍 넘은 김 부장에게도 그런 기억이 남아있었다.

엄마가 어릴 적 형에게 바나나를 3개 주고 자신에겐 2개 주었던 것 심지어 그 소중한 두 개의 바나나 중 한 개를 형이 몰래 먹었는데도 오히려 자신을 혼내던 서운함..

빈털터리가 돼 형을 찾은 동생은 그때 그 바나나 정말 형이 먹은 것 맞느냐고 알면서도 다시 되묻는다.

흰머리가 성성한 형은 바나나 네 송이를 사과의 의미로 건네고...

그 옛날 한 송이에 10만 원쯤 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값싸져 버린 그 바나나를 보며 김 부장의 얼굴엔 다시 동심이 피어난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기억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아이였으니 그런 거다.

참 좋아하는 어른의 말씀이라도

다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아마 내가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쓴 작가라는 건 영 고백하기 어려울 듯싶다. 그런 말들에 마음이 패이지 않고 씁쓸하게나마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건 제가 그만큼 단단해져서인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엔 치킨집마다 닭다리 콤보가 있다는 것!

진짜 치사하게 닭다리로 서글프고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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