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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고독력] #3. 함께하면서도 혼자인 우리

단절의 시대, 연결을 묻다.

by 이시형박사

이 칼럼 시리즈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 외로움, 관계의 단절, 독립의 역설을 성찰합니다. 과거의 체험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연결과 연대의 의미를 모색하며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농촌에 살던 시절에는 모두가 하나처럼 움직였다. 끈끈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랐고, 그렇게 힘을 합쳐야만 농촌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한데 엉켜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타향살이 설움’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그때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여러 정신적 병리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늘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힘을 합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깊었다.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야 큰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며 갈등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 생활도 그렇고,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자란 배경, 개성, 배운 것,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모두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화합’이라는 말은 늘 어렵게 느껴졌다. 농촌 시절, 온 마을이 하나가 되어 어른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움직이던 그런 모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농사도 함께 짓고, 식사도 함께 하며 살았다. 그러나 도시로 오니 낯선 사람들뿐, 이젠 모두가 흩어져 살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타향살이 설움’이라는 노래가 더더욱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늘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화합이 중요한 숙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다양해지면서, 사람들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졌다. 뭉친다는 것은 이제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하나로 움직이려 하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회사도 하나로 뭉쳐야 힘이 생기지만,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회사 문화는 ‘화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바로 옆에 앉은 동료와도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미국 사회를 보면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의외로 전체를 위한 단결 의식도 강하다. 미국에서는 입사 동기라도 실력과 능력에 따라 급여가 100배, 200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엄청난 경쟁 사회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선진 기업들은 ‘마인드풀니스’를 강조한다. 현재에 집중하며, 서로 경쟁보다는 동료 의식을 키우는 것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조화’이다. 서로 다른 경쟁자들이 모여서 하나로 뭉치되,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상태. 마치 합창단이 그렇다. 베이스, 소프라노, 테너가 각자 목소리를 내지만,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 하나의 조화로운 소리가 된다. 심포니도 마찬가지다. 바이올린, 트럼펫, 첼로, 각 악기가 개별적이면서도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 농구, 야구 모두 팀워크가 중요하다. 희생타를 치며 팀을 위해 자신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에, 스타플레이어의 개인기도 살려야 한다.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면서도, 개인의 개성도 빛나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숙제다.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운 그 마음. 나이가 들수록 혼자라는 의식이 점점 강해지고, 함께하던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가며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다. 그때부터 고독이 찾아온다. 이 고독을 잘 활용해 사람들을 모아 공동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집단주의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 힘이 잘못 쓰이면 제국주의, 군사정권,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래서 함께 산다는 건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화합이 필요하다. 이게 모순이다. 함께하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것.


학자들은 이를 ‘집단적 고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들을 떠올리면, 고독과 연대가 동시에 자리한다는 건 갈등을 부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고독은 깊어지고, 동시에 연대에 대한 향수도 깊어진다. 결국 고립과 연대는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기계처럼 하나가 되어버리면 조직은 멈추고 만다. 그러면 자칫 전체주의나 제국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이면서도 함께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숙제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를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밖에 나가지 않고, 대인관계도 못 맺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그 수가 10%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요즈음은 늙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와 단절되고 뒷방 노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더욱이 고립과 연대를 함께 살아내야 하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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