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연결을 묻다.
이 칼럼 시리즈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 외로움, 관계의 단절, 독립의 역설을 성찰합니다. 과거의 체험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연결과 연대의 의미를 모색하며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질문을 던집니다.
창조는 소수의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창조적인 무의식이 있고, 또 창조적인 재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복잡한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점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얽히기만 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멍하니 정신이 멀어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우리 뇌는 쉬지 않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의식하든 않든 무의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때, ‘솔리튜드 타임(solitude time)’이 찾아온다. 아주 창조적이고, 또 건설적인 생각이 싹트는 시간이다.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여기저기 얽혀서 돌아다닐 때, 그것은 곧 발효의 순간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브레인 원더링(brain wandering)’이라 부른다. 마치 방황하듯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뇌의 여러 곳을 기웃거리는 바로 그때, 창조적 아이디어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뇌는 결코 쉬지 않는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한다. 이것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다. DMN은 집중할 때처럼 특정 부위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로 폭넓게 연결되어 있다. 뇌 에너지의 80%가량이 바로 이 DMN 활동에 쓰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DMN은 이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낸다. 그래서 집중해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오히려 DMN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의식은 표면의 거친 생각에서 천천히 마음 깊은 곳으로 이동하며, 내 안에 있는 다양한 기억과 경험이 합쳐져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예술가라면 그 순간에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고, 경영자라면 새로운 전략이 머릿속에 스며들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새로운 만남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도 우리의 뇌는 쉼 없이 일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머릿속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돌아가고 있다. 잡담 속에서도 문득 ‘맞아, 그거였구나!’ 하고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칼럼을 쓰다가 막힐 때도 잡담 중에 한마디에서 실마리를 발견해 글 쓸 영감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도 때로는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어보길 권한다. 미술관을 혼자 둘러보는 사람도 있고, 텅 빈 사무실에 앉아 홀로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다. 낯선 지하철역에서 내려본다든지, 혼자 영화관을 찾는다든지,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정원을 손질하거나,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 역시 칼럼을 쓸 때면 숲속을 산책하는 습관이 있다. 그럴 때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한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의 순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창조의 샘’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Solitude Life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창조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시간이 삶의 스타일로 정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