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연결을 묻다.
이 칼럼 시리즈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 외로움, 관계의 단절, 독립의 역설을 성찰합니다. 과거의 체험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연결과 연대의 의미를 모색하며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질문을 던집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을 꺼려하게 되었을까.
요즘은 ‘노인’ 대신 ‘시니어’나 ‘고령자’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65세 이상이면 법적으로는 노인이지만, 실감상으론 그렇지 않다. 오히려 70대는 ‘한창’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시대다. 대한노인회조차 “65세는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다”며, 노인의 기준 연령을 매년 한 살씩 올려 75세까지 늦추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사회도 그에 화답하듯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키되, ‘젊은 생각’을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80세 노인에게 “당신은 노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무리 겉으론 웃어도 속으론 불편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늙음’이라는 단어를 점점 말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노인을 혐오하는 사회’라는 말까지 공론장에서 오르내린다.
왜 우리는 늙는 것을 부정할까.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노인이라는 말에 실질보다 감정을 먼저 얹어왔기 때문이다. 노인은 약자, 낙오자, 의존자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왔다. 늙는다는 것은 사회적 퇴장을 의미했고, 그 앞에 선 사람은 자연스레 자기 존재를 숨겨야 했다. 5060세대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음에도, 정년 이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조용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능력과 상관없이.
하지만 역설적이다. 지금의 7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활발하다. 자녀를 뒷바라지했고, 부모를 봉양했고, 국가의 경제 성장을 책임졌던 세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늙음’을 생각해볼 시간은 없었다. 눈 뜨면 일하고, 자식 걱정에 잠들었던 세월. 그런 세월을 건너오다 문득 “이제 노인입니다”라고 불리면, 갑자기 정체성 혼란을 일으킨다.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보았지?'라는 묵직한 질문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고 우리는 모두 ‘슈퍼 시니어’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왕성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는 70대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병원과 집만 오가는 60대도 있다. 결국 노화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삶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감정적 구조다. 사회가 늙음을 말하지 않는 사이, 사람들은 조용히 스스로의 늙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나이와 무관한 ‘정서적 연령’에 대한 논의다.
누군가는 50대에도 삶의 의미를 잃고, 누군가는 80대에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중요한 건, 우리가 늙는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늙고 있는가에 있다. 특히 70대는 그 늙음의 구조를 짜야 하는 시기다. 외면만 젊다고 해서 마음까지 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젊은 노인’들은 정서적으로 더 큰 고립을 경험할 수도 있다. 늙는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가리는 시대.
‘언제부터 노인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늙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진짜 고령사회의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