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o Major, ‘Nothing’
Tracksuits and red wine, movies for two
We’ll take off our phones and we’ll turn off our shoes
추리닝 차림으로 레드와인을 홀짝이며 둘만의 영화관을 즐겨
휴대폰을 벗어 던지고 신발을 꺼 놓겠지
We’ll play Nintendo though I always lose
‘Cause you watch the TV while I’m watching you
그리고 닌텐도를 할 거야 물론 내가 또 지겠지만
네가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난 너만 바라볼 테니
There’s not many people I’d honestly say
I don’t mind losing to
But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솔직히 나도 지는 걸 좋아하지는 않거든
근데 너한테 지는 건 상관없어
사실 너랑 함께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아
Dumb conversation, we lose track of time
Have I told you lately I’m grateful you’re mine?
서로 허튼소리만 하는데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어
아 참, 네가 내 사람이라 고맙다는 말 최근에 한 적 있던가?
We’ll watch The Notebook for the seventeenth time
I’ll say “It’s stupid,” then you’ll catch me crying
이제 또 <노트북>을 볼거야 이번이 열일곱 번째지
나는 “저게 무슨 억지람” 하면서도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릴 거야
We’re not making out on a boat in the rain
Or in a house I painted blue
But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배 위에서 비를 맞으며 입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파랗게 칠한 예쁜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너랑 함께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아
모름지기 노래 가사는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한없이 심오하고 추상적이든가 한없이 구체적이고 묘사적인 게 좋다. 이 곡은 후자에 해당한다. 단 몇 줄만으로도 머릿속에 정확히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 되는지, 정확히 어떤 분위기를 포착하면 되는지 명징하게 그려준다. 게다가 상대에게 푹 빠져서 정신이 없는지 신발을 벗고 휴대폰을 끄는 대신 “휴대폰을 벗어 던지고 신발을 꺼 놓”겠다고 읊는 귀여운 디테일까지, 그 설레는 분위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너랑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가사는 또 어떻고. “there’s nothing like” 뒤에 “doing nothing with you”를 배치하니 운율도 살지만 “너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엄연히 하나의 행위처럼 느껴진달까. “더욱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문장이 만들어내는 역설이랑 비슷한 효과를 내는 듯하다. 아예 <노트북>이라는 (누구나 아는) 영화 제목을 그대로 언급해서 구체적으로 가사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참 마음에 든다. 내가 개인적으로 상상하는 “Quality Time”의 모습이 딱 이대로라 유독 더 마음에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대학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주로 남초 사회를 살아온 지난 나날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남성 지인들이 뚜렷한 ‘목표 활동’이 존재하는 만남을 선호했던 것 같다. 당구를 치려고 만나든 누구 병문안을 가려고 만나든 저녁을 먹으려고 만나든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지, “그냥” 시간을 보낸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동족을 많이 찾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별종 같았다. ‘그냥 보고 싶으니까 보는 거지 굳이 뭘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관계 양상은, 서로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 서로 가만히 멍을 때리느라 오디오가 듬성듬성 비어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관계이다. 애초에 사람을 빤히 바라보면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하거나 허공을 빤히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을 조직화하고 일반화하기를 좋아하는(INFJ Stare) 나로서는 이걸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내가 봐도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럴 거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한 거 아닌가? 왜 굳이 곁에 누군가 존재하기는 해야 하는 걸까? 이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대랑 ‘아무것도 안 하는 활동’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상대랑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바쁘게 오감과 정신을 굴리고 있다. 물론 둘이 뚜렷한 공통 목표를 가지고 똑같은 활동을 하고 있으면 그만큼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특정 활동을 공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과 정신까지 공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세 명 넘게 모인 자리를 어마어마하게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단체로 볼링장에 가서 볼링을 치더라도 그 치는 와중에 내 정신이 이미 몸을 이탈해 다른 차원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가 많다. 그 상황에서 내가 과연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있어서 본질은 어떤 활동을 공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같은 차원의 같은 시공간을 공통으로 향유하고 있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믿음이 요구된다. 상대가 내가 감지하는 것, 인지하는 것, 고찰하는 것을 동일하게 감지하고 인지하고 고찰한다는 확신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조건은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충족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남들과는 엄두도 못 내는 텔레파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느낌이랄까. 같이 여행을 가서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했다고 해보자. 물론 서로의 감상이 달라서 그에 관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충분히 끈끈한 연결감을 가져다주지만 서로 아무 말 없이 30분이 넘도록 앞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지금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도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라면, 그때 차오르는 친밀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같이 아무것도 안 하기’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건 순전히 내 주관적인 판단이다. 끊임없이 오디오를 채워주려는 친구든 계속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채워가려는 친구든, 그 역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 취향은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게 <노트북> 같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해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안 하기’가 실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어떤 그림이나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형의 실체를 가지고 있음을 당당히 변호하고 싶다. 그리고 때로는, 특히 새하얀 여백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같이 아무것도 안 하기’에도 한 번 기회를 줘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드린다. 결국 흰색도 색이니까. 새하얀 도화지를 ‘우리’만 아는 새하얀 크레파스로 칠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