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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의 유일 한국인의 생존 및 매출 창출 비법

by 커리킴

예전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필자는 현재 미국 테크 회사의 APAC 본사인 싱가포르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일을 하고 있다.


본사인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 지사 포함해 6천명이 넘는 직원 중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이런 느낌


그래서인지 처음 입사했을 때 힘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온보딩 트레이닝도 영어 마켓에 특화된 스타일이었고,

자동세팅된 이메일 템플릿도 모두 영어였고,

회사 소개 자료는 모두 영어 아니면 구글번역된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For eg: '존경하는 귀하에게 저희 회사를 안내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같은 멘트가 있었음)

비슷한 느낌


그 외에도 참 많은데, 건드리기만 하면 다 해결해야 해서 감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한국 마켓을 대상으로 세일즈 하려고 채용됐지만 그냥 사업개발, GTM 담당을 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압도되긴 했지만, 이런 문제들이 결국 해결되어야 나도 세일즈를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맞서다 보면 같은 세일즈 포지션인 동료들과 같은 퍼포먼스를 내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고 슬픈 것은 그 노력이 숫자로 보이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 퍼포먼스 막대그래프가 동료들에 비해 점점 짧아지는 모습을 보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일즈는 퍼포먼스가 숫자로 보여서 저조하면 지켜보다 가능성이 안 보이면 바로 짤린다.

이대로 가다간 짤릴 것 같은 느낌이 쎄하게 왔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짤리지 않고 일하고 있는 이유는?"


나만의 생존법을 찾았고 상황을 훨씬 낫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주 현실적으로 써보겠다.



1. 찡찡대라

위에 나열한 문제들? 일단 매니저에게 이거 다 문제라고 말한다. 이렇게 찡찡대고 가능하면 울음도 터뜨려라.

눈물이 안 나온다고 걱정하지 말고 제대로 이슈레이징을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의 퍼포먼스와 적응은 매니저의 KPI와 연결되어 있기 되도록이면 친하게 지내고 솔직하게 많이 말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안 하면 절대 모른다.

한국에서는 꾹 참고 일단 묵묵히 하다 보면 분명히 알아준다 라며 겸손의 덕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싱가포르같이 여러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환경에선 그렇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런 건 알아서 센스 있게 해야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찡찡대고 어떤 문제들이 있다고 마구 말해라.


중요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매니저, 동료들과 같이 고민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찡찡대면서 '해결해 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풀 수 있을까?'라는 태도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 얘가 지금 불만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불만과 문제만 표출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긍정적인 해결사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그럼 당연히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 내가 맞으니까 자신감을 가져라

내가 회사의 유일한 한국인이라면 나만큼 한국 문화와 마켓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일단 AI, 데이터 기반 리서치를 진행하고, 내 경험과 의견을 더해서 결론을 내리자.

적어도 그 결론은 회사 그 누구보다 가장 정답에 가깝다.

이게 맞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일단 결론을 밀어붙이고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매니저나 시니어에게 질문을 하면서 의견을 수렴하고 더 정교하게 만들면 더 현실적인 결론이 된다.


'외로움'을 오히려 '유니크함'으로 생각해 활용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유니크함을 잘 활용만 하면 나는 회사에서 대체불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3. 다른 일을 벌려라

이렇게 찡찡대고 어떤 결론을 갖고 와서 괴롭히면 이제 매니저는 내가 맡은 역할 외에도 다른 신경 쓸 것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 준다. 다른 인력을 붙여 서포트를 해주거나 그럴 여력이 없다면 내 퍼포먼스가 조금은 저조해도 커버를 쳐준다. 일정 시간의 방어막과 핑계, 여유 시간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내가 원래 맡은 세일즈의 역할이 아닌 다른 기회라도 말이다.

매니저 입장에서도 내가 찡찡대면서 받을 서포트도 받고 내가 맞다고 밀인 결론들도 지지해 준다면 그에 맞는 성과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도 그걸 줘야 앞으로도 다른 일을 할 때 더욱 신뢰를 받으며 할 수 있다.

들어줄 것 다 들어줬는데 성과가 안 나면 웃기지 않는가. 얘가 과연 일을 잘하고 있나 의심도 되고 말이다.

그래서 일정 성과는 꼭 내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 회사 서비스는 한국 마켓 특성상 기업에게 직접 세일즈 하기에 참 어려운 마켓이었다.

회사 인지도도 낮았고 서비스 가격도 더 비쌌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직접 세일즈보다는 인지도를 높이고 업계에서 중요한 분들과 관계를 쌓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한 결과, 업계 관련 과목을 담당하는 대학 교수님들, 협회 국제협력 담당자님들, 정부 산하 기관 담당자님들 등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결국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직접 뵈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단하게 쌓은 관계가 세일즈까지 이어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고, 한국의 관련 업계 내 리더와 파트너십 체결도 이끌어낼 수 있었고,

한국 내 가장 큰 업계 Expo에 전시자로 초대도 받았다. 그리고 매니저와 시니어들을 설득해서 전시회 결정까지 이끌어냈다.



4. 일한 티를 내라

쓰고 보니까 미덕 없는 문제 회사원 (또는 관심사원)처럼 써놓은 것 같다.

매니저에게도 조금 장난을 자주 치고 친하게 지내긴 하지만 필자는 절대 성격파탄자나 회사의 암덩어리는 아니다.


어쨌든 무조건 일한 티를 내라.

한국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히 자기 일하고 있으면 위에서 다 알아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자기는 내가 정말 뭐 때문에 화났는지 몰라?"

에서 PTSD 가 오는 이유는 물론 길 가다 다른 여자를 잠깐 본 것 같이 대역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겠지만,

그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즉,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도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지 위에서 알아준다.

꼭 업무와 다이렉트로 연관된 것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일단 다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매니저에게도 자주 공유한다.

귀찮을 정도로 이메일로 CC도 걸어놓고, 줌으로 커피챗을 진행할 때면 스크린샷도 따놓아라.

그리고 공유해라. 그래야 나중에 "너 그 시간에 뭐 했어"라는 질문도 안 받고, 오히려 그 건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역으로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물어봐주고 좋은 기회라고 판단이 된다면 서포트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이 많이 남을수록 개인 포트폴리오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이직하거나 링크드인 업데이트할 때도 좋은 소스가 된다.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훨씬 나아졌다.

나는 나의 KPI를 100% 이상 달성하고 있고, 특히 이 전 분기에는 180% 가 넘는 KPI를 달성했다.

전례가 없었던 한국 출장 기회도 만들어내 다녀왔고, 거기서 실제로 많은 잠재고객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11월에는 한국에서 전시회 참여도 예정되어 있다.


내 포지션은 원래 콜드콜과 콜드메일로 잠재고객을 발굴하는 일인데, 한국 마켓은 그게 통하기가 힘들었다.

외국에서 전화를 하면 일단 스팸으로 생각하고 끊기부터 했고,

메일에 보낼 내용과 자료들은 모두 영어였고 어색한 한국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찡찡댔고,

다른 접근법들을 생각해 결론을 내 밀어붙였고,

다른 일들도 벌렸고, 그런 일들을 했다는 티를 냈다.


결국 한국 전용 세일즈 이메일 템플릿도 시스템에 적용했고, (결국 최종 검수는 내가 다 했지만)

회사의 많은 자료들과 한국 데모 버전들도 부드러운 한국어로 수정해 잠재 고객들에게 보내기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도달했고,

무엇보다 한국 마켓에서 세일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내 포지션의 목표 꼭대기에 있는 Revenue Generating 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길도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가보려 한다.

인간은 항상 결국 답을 찾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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