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도를 오가는 여름 날씨 탓에 어렵게 잠들고 쉽게 깬다. 잠결에 거실 바닥의 시원한 포인트를 찾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어떤 날은 눈을 떠보면 소파 위거나 선잠 깨 앉은 채로 다시 잠들어 있기도 한다.
"찌르르르르......."
"찌이르르 찌이르르 찌......."
잠 깨는 가장 큰 이유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폭염 탓이 크지만, 매미의 찌르르 울음소리도 야무지게 한몫한다.
내가 사는 곳은 40년 가까이된 아파트 단지여서 덩치 큰 교목(喬木)들이 단지 주위를 빙 두르고 있다. 어른 두 명이 손을 맞잡아도 쉬이 나무를 둘러 안을 수 없을 만큼 큰 나무들.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기 힘든 크기와 푸르름을 가지고 있어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게다가 우리 집 부엌의 옆으로 넓고 조그마한 창을 통해 물끄러미 나무들을 들여다보면 풍경화를 보는 듯 해 음식을 준비하다 말고 나무를 감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여름이면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교목들 곳곳에 매미들이 한가득 자리를 틀고 구애의 울음소리를 높인다. 덕분에 여름 한 철은 TV를 켜지 않아도 적막함 없이 항시 시끌벅적하다.
무더위의 정점에 다다른 7월 말 어느 날 새벽 4시. 문득 잠에서 깼다. 더위 탓인지 매미 울음소리 탓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눈을 뜨긴 했다. 다시 잠들어보려 눈꺼풀을 조용히 닫아봤으나 저저로 다시 열렸다. 다시 닫았다. 다시 열렸다. 힘센 장사도 눈꺼풀의 무게를 못 이긴다 했는데, 내 무의식은 너무 번쩍 들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뒤척이다 무의식이 매미 울음소리에 집중해버렸다. 계속 집중해 듣다 보니 매미마다 특색이 느껴졌다. 어떤 놈은 짧고 굵게 노래하고, 어떤 놈은 음절을 꺾어 구성진 가락에 노래를 태워 보냈다. 또 어떤 놈은 길게 쭉 소리를 빼내 내 호흡마저 멈추게 했다. 계속 듣다 보니 친근해져 이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울음소리가 아닌 리듬과 가락이 있는 노래로 여겨졌다.
잠들지 않는 새벽, 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매미들의 생태계가 궁금해졌다. (갑작스레 생겨버린 호기심 탓에 잠이 깬 새벽은 더 길어졌다.) 이 호기심은 지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귄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끌림 때문에 그 치의 작은 움직임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의미를 찾기도 해보고, 관찰하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끌림에 따른 행동이다.
나는 매미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땅 속에 7년, 나무에서 1달' 세상에 태어나 성체가 되기 전 7년이라는 시간을 땅에서 보내고 고작 1달을 살다가 죽는다는 것 정도가 이들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인터넷을 통해 본 매미는 종류가 참으로 다양했다.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노랫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집중해 들어보면 그렇게 다들 개성이 있었나 보다. 특히 눈에 띈 이름을 가진 매미는 소요산 매미다. 1호선 끝자락 어디쯤 있는 역명이어서 그런지 낯익고 반가웠다. (실제 소요산 지역에서 발견돼 그리 이름 지어졌다 한다.)
노래하는 매미는 수컷으로 몸의 반절 이상이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울림통으로 진화했다. 매미의 세계에서는 남보다 크고 높은 소리로 울어야 장가를 잘 가나 보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매력 발산을 위한 수컷들의 행동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이런 극단적인 매미의 진화를 보자니 이 매미라는 곤충의 성질도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적당한 타협이나 유순한 성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새벽 매미를 공부하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리 선조들이 평가한 매미다. 내가 내렸던 단호하고 극단적인 성품과 전혀 다른 평을 했다. 심지어 매미는 다섯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 했다.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을 갓끈과 비슷하게 보아 지혜가 있을 듯하여 첫째 덕목을 '문(文)'으로 보았고, 나무의 수액만을 먹고 자라므로 잡것이 섞이지 않고 맑아 '청(淸)'이 그 둘째 덕목이며, 다른 곡식을 축내지 않으므로 염치가 있으니 셋째 덕목이 '염(廉)'이고,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으니 검소하다고 보아 '검(儉)'이 그 넷째 덕목, 계절에 맞춰 오고 가니 믿음이 있기에 '신(信)'이 다섯째 덕목이라고 보았다.
위와 같이 매미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매미의 라이프 스타일을 칭송했던 선조들은 매미 모양을 본 따 익선관을 만들었다는 설까지 있다.
익선관
조선(정확히는 고려 말로 추정)과 명나라에서 사용하던 왕관 및 관모. 중국에선 청나라에게 남명이 멸망하면서 폐지되었다. 조선의 경우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후에도 황룡포를 입은 고종이 익선관을 계속 쓴 어진이나 사진 등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고 양장이나 군복과 함께 전통적인 관복으로써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익선관의 모양이 매미에게서 왔다면 매미는 필시 오덕을 갖춘 선비 곤충임에 틀림없으리라.
한 여름 더위 덕분에 매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고맙게도. 새벽 4시, 매미의 곁에서 이들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엿보는 시간을 갖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이들의 진화는 분명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갖고 있음에 분명하다. 반면 매미의 생애 전반을 가로지르는 7년이라는 땅속 생활과 선조들이 평했던 청렴하고 신의 있다 여기는 라이프스타일은 분명 심지 굳은 곤충임에 틀림없다. 매미를 내 옆의 한 인간이라 여긴다면 고리타분하리만치 한결같은 성정에 답답하다 느끼면서도 한결을 지킬 수 있음에 감탄한다. 그리고 한 마디 건네 본다.
"매미야 매미야, 조금은 여유 있어라.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