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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요가 교습소

<재즈를 찾아서>

by 밤 비행이 좋아


다니에게 연락이 왔다.

“Rhae, 잘 지내지? 나는 고향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다니는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 또한 시골 마을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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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요가 스튜디오라니. 처음 계획을 알렸을 때 동네 주민 모두가 열정적으로 필요성을 토로했다.

“워낙 아무것도 없으니까… 문화생활이 뭐예요. 동네에 진짜 요가원 하나만 있으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흔한 헬스장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실험 삼아 몇 번 열어본 요가 수업은 꽤 성행했다. 잘하면 떼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어리석은 꿈을 꾸게 되었고 깊게 고민도 안 하고 사업자를 내버렸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사글세를 주고 방 하나 구하기도 힘든 동네였다. 우여곡절 끝에 월세 점포를 얻었지만, 모든 게 처음이라 어설펐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당당하게 요구사항을 말하는 일도 두려웠고, 바로 뒷집에 살고 있는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는 일도 어려웠다. 서류나 세무 처리, 사업자로서 처리하는 은행 엄무는 또 어떻고, 전부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라 마치 세상을 새롭게 사는 기분이었다.


계약상 명시된 공사 종료 3일 전, 에어컨 설치가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스템 에어컨이 중국에서 안 넘어와서 한 2~3주 뒤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요?”

업자는 당당했다. 계약서상 공사 완료일 이틀 전에 히터 기능이 함께 있는 시스템 에어컨의 설치 불가를 통보하는 업자의 목소리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 요가 수업하는 곳인 건 아시죠?”
“거 전기장판 있잖아요. 그거 틀면 되지.”
“11월 말인데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과 짜증이 터지고 말았다. 혼자 버럭버럭 성을 내던 업자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뱉고는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곁에 있던 현장 직원에게 버럭 화를 내더니 차 문을 과격하게 쾅! 닫고 떠나버렸다.


시스템 에어컨은 정확하게 다음 날 아침에 도착했고, 뚫려있던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계약 완료 하루 전날이었다. 중국에 있다던 기계가 반나절 만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에어컨 없다면서요.”
“달아줘도 난리야.”

(인테리어 하다가 싸움닭이 되어버렸다)


온갖 난리를 겪고 시골마을 요가 스튜디오는 완성되었다. 비탈길 바로 옆에 자리 잡아 채광이 좋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이다. 옆집 할머니가 산책 삼아 느릿느릿 걸어가고, 힘들면 연석에 앉아 쉬곤 한다. 뒤이어 경운기가 탈탈탈 기어가고, 천천히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어쩌다 시작한 첫 사업으로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지만, 액땜으로 넘겨버리고 두근거리며 오픈을 준비했다.


무료로 진행한 오픈 클래스는 대성공이었다. 끝없이 문의가 들어왔고, 수업을 더 늘려줄 수 없겠냐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일주일에 걸친 무료 수업을 마무리하고 정식 모집을 시작했을 때, 진실이 드러났다. 아무도 요가에, 아니 돈을 지불하고 듣는 요가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워낙 인구가 적은 동네라 다양한 복지 정책이 많은데, 그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요가 스트레칭 수업이 있었고, 이름도 어려운 아쉬탕가나 하타 요가보다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무료 수업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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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요가학원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경이었다. 요가 스튜디오는 시작부터 고전을 겪었지만, 나는 지치지 않고 텅 빈 요가원에 출근했다. 종종 오롯이 혼자 쓰는 공간의 시간이 좋아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더 이상 수강생이 늘지도, 줄지도 않아 현상 유지만 되었으면’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니 좋은 일이 찾아왔다.


“선생님, 여긴 XX 면인데요. 혹시 요가 수업 가능하실까요?”
“그럼요. 수강생 분들 평균 연령대가 어떻게 될까요?”
“4, 50대도 있고요. 대부분 60대 이상이세요.”

새롭게 수업을 하게 된 마을은 차로 15분 정도 달려가면 있는 아담한 동네였다. 빵집이나 카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요가 수업 등록 인원만 20명이 넘고 매 수업에 평균 참여자만 15명이 부쩍 넘는다. 작지만 열정적인 마을이다.


“요가 배워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오.”

제대로 요가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입 모아 말씀하시던 분들이 1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수업 시간 내내 말 한마디 없이 땀 뻘뻘 흘리며 어설프지만, 열심히 동작을 따라 하신다. 아! 팽팽한 집중도가 탁 – 끊어질 때가 딱 한 번 있다.


뿡 -

방귀다. 누군가 뿡 방귀를 뀌고 나면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전혀 개의치 않는 현상이라 참고 넘어갔지만 매시간 이쪽에서 뿡, 저쪽에서 뿡, 방귀 소리가 들려오자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웃음으로 들썩일 뻔한 가슴을 잡아 내렸다.

“힘을 주다 보니 방귀가 나오죠? 전혀 창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한바탕 웃고 나면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이미 인생을 통달한 분들의 시크한 태도랄까. 방귀는 평균 연령 60대의 고운 어머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정성 들여 수련을 하고 있는지 아사나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불편했던 요소가 해결된다. 배에 가스가 차 있어서 더부룩했다면 스트레칭을 하면서 해소되고, 목이 뻐근했다면 한결 편해지고, 마음이 어지러웠다면 차분해진다. 방귀만 유독 겉으로 드러날 뿐이지 요가로 인해 해소되는 것들은 많다. 어느 것도 창피할 건 없다.


어른들과의 수업이 끝나면 오후엔 소녀들의 수업 차례다. 두 세대의 에너지는 전혀 다르다. 소녀들은 생기가 넘친다. 풋풋했고 순수하다. 길가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는 말이 맞았다. 나무 자세를 하다가 거울에서 마주친 친구의 시선에 웃음을 터뜨렸고, 부들부들 버티면서도 저 아래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느라 비틀댔다.

‘수련에 집중하지 않는 건가?’

속으로 고민에 빠졌다가 어쩔 수 없는 10대 소녀들의 행동이라 여기게 되었다. 처음엔 그들의 습성을 알 길이 없으니 왜 웃는지, 웃으면서도 동작은 왜 포기하지 않는지 너무 궁금했다.

“혹시 동작이 너무 어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도리도리)
“혹시 버티는 시간이 지겨운가요?”
(도리도리)

그 와중에 긴 생머리가 어여쁜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버티는 옆 친구를 보고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중학생 4인방과 초등학생 1명, 이렇게 총 5명이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고정 멤버다. 모두 요가가 처음이라고 했다.

“쭉 팔꿈치 펴고, 하늘 찌르듯이. 키가 커진다고 상상해 볼까요?”


전신은 늘리는 스트레칭만 해도 시간이 훌쩍 흐른다.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가 타는 듯한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소녀들 덕분에 매주 싱그러운 에너지를 얻고 동면에 빠지지 않을 힘을 얻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데 아마 내가 없었더라면 서로 낄낄대며 박장대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사바아사나 휴식을 취한 후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서로 손이나 발끝이라도 닿으면 옷소매를 잡고 손가락을 툭툭 건들고 시선이 얽힌다. 자기들끼리 눈만 마주쳐도 박장대소하는 소녀들이 나름 농담으로 던진 말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도 그들과 정서적으로 멀어진 어른이 되고 만 건가. 수줍음 많은 소녀들은 '나마스떼'를 입 밖에 내기도 힘들어한다.

“나마스떼는 고맙다는 뜻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옆 친구들에게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마무리할까요?”

여러 개의 내적 ‘나마스떼’가 들려온다.


‘나는 중학생 때 어땠더라?’

학교 갔다가 도서관 갔다가 아니면 집에 가서 공부하거나 남는 시간에 친구들과 채팅하기 바빴었다. 이렇게 방학 시간을 활용해서 요가를 배우겠다고 온 것만으로 얼마나 기특한가!


사춘기 시절엔 누구나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도 화려하게 튈 바에는 차라리 풍경에 섞여 무채색이 되길 바랐다. 개성을 추구하는 일은 너무 위험해 보였고 늘 무리에 속하길 바랐다. 어른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지만, 또래와는 구별되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성인이 된 내 시선으로 10대의 나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 방학 동안 나와 함께 요가 수련을 하게 된 학생들이 마지막 수업 전에 ‘나마스떼’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기를, 조금 더 내면에 집중하고 외부를 차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어. 부끄럽지만 노래하는 영상 올리려고.”

다니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릴 거라고 했다. 그녀는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 셈이다. 나도 요가 스튜디오를 좀 더 믿어볼까?


아무튼, 재즈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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