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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Mar 13. 2023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수상한 집이 있었나요?

고전 질문 독서 [앵무새 죽이기]

허풍떨지 마, 딜. 자, 그만하구.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할까?"



젬과 딜, 스카웃의 놀이를 보고 있자니 나의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의 잊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게 신기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배나무골"이라는 이름의 작은 동네였다.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면 좌우로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장 높은 곳에는 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큰 길 사이사이 골목에도 집들이 몇 개 있었다. 그때는 상당히 크게 느껴졌던, 하지만 실제로는 작았던 그 동네의 모든 집들에 대해 우리는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이 집에서는 어떤 어른이 있는지 훤히 다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동네 자체가 다 우리 집인, 그런 분위기의 동네였다. 동네 오빠, 친구들이랑 모여서 놀다가 하루는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 놀이를 했다. 놀이라기 보다 장난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상당한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했는데, 일단 나는 오빠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놀이하는 방법을 지켜봤고 그 분위기를 즐겼다. 오빠들 틈에서 계속 놀려면 짧은 다리와 작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나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오빠들이 계속 나랑 놀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유독 큰 대문의 한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오빠들은 나보고 초인종을 눌러보라 했다. 그 오빠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집에서 누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겁이 좀 났다. 하필 이 집을 나한테 시키다니... 이 비겁한 오빠들...


다른 집들은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다 걸려도 누가 나와서 어떤 얼굴로 화를 내게 될지 상상이 됐는데 이 집은 도무지 상상이 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집 초인종을 눌렀던 건, 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여기엔 과연 누가 사는지, 사람이 살긴 하는지, 어떤 모습의 사람이 사는지.



초인종은 내 키보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해서 한 오빠의 등을 밟고 올라가서 눌러야 했다. 결국 내가 도망치기도 전에 한 할아버지가 나와서, "요놈들!!" 하고 나의 볼을 꼬집었다. 재빠른 오빠들은 이미 도망치고 골목 코너에서 숨어서 나를 지켜보거나 어디론가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오빠들의 상황을 재빨리 살피긴 했지만 나는 금세 포기하고 내 볼을 꼬집은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머리가 하얗고 배가 불룩 나온 할아버지였는데, 나는 혼나는 중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의 모양을 살폈던 기억이 난다. 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이렇게 생긴 할아버지가 사는구나. 할머니도 안에 있을까? 나를 더 심하게 혼낼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참 겁 없는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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