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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기차

by 김재완

2015년 8월, 한 방송사에서는 “청춘, 길을 떠나다-내일로 기차여행 72시간”편을 방송했다.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은 특정주제로 72시간을 밀착 취재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코레일은 ‘내일로’ 란 기차 상품을 25세 이하의 승객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했다. 학생들의 여름, 겨울 방학기간에만 한시적으로 판매된 이 티켓은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5일 또는 7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차 자유이용권이었다.

“친구야! 동해바다로 떠나자!”

“좋아! 가자! 고래 잡으러!”


여름과 겨울에만 달리는 이 열차는 뜨거운 낭만만 실은 것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의 무게도 함께 싣고 달리는 청춘 그 자체였다.

“나 이번에도 계약 연장 안 됐어. 언제 정규직 되냐!”

“넌 하고 싶은 거라도 있지. 난 도대체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어른이 되면 이런 고민 다 사라지겠지?”


72시간 동안 청춘들의 기차여행을 따라다닌 VJ는 방송 말미 안동역에서 두 명의 청춘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양손에는 간식을 등 뒤에는 백팩을 메고 있었지만 여행의 피로가 보이지 않는 밝은 얼굴이었다.

며칠간 여행 중이냐는 VJ의 물음으로 시작된 인터뷰에 두 사람은 오늘이 ‘내일로‘ 마지막 날일이라고 대답했다.

“아직 친구에게 말은 안 했지만 십 년 후쯤 똑같은 코스를 똑같이 돌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자"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대답한 다른 친구는 이번에는 카메라든 VJ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다큐멘터리 또 찍으세요. 10년 후에.”

“그때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십 년 후의 만남이 가능할까 라는 VJ의 되물음이었지만 두 청춘은 장난 끼 많은 여고생처럼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2025년 8월 15일, 아침 7시 48분에 여기서 다시 만나요”

그렇게 그날 처음 만난 세 사람은 기차역 앞에서 손가락까지 걸고 십 년 후를 약속했다.


어제 한 굳은 약속도 하루 만에 물컹해지는 초스피드 시대에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는 세 사람이 십 년 후에 다시 만날 거라고 믿은 사람은 당사자들 말고는 없었다. 아니 세 사람도 그저 '밥 한 번 먹자'라는 인사말로 치부하지 않았을까?

낭만은 몽상가들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되는 세상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이들도, 심폐 소생술이 필요한 세상에 숨을 불어넣는 이들도 철들지 않는 이들의 상상력과 낭만 덕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21세기의 십 년은 조선시대의 십 년과는 달랐다. 과연 이들의 낭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세 사람이 만난 2015년부터 세 사람이 약속한 2025년까지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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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을 쓰고 때때로 방송과 강연장에서 말을 하며 살아가는 낭만 아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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