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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로소이다.

by 김재완

리얼리스트로 살아라. 그러나 가슴에 이룰 수 없는 꿈 하나는 품고 살아라._체게바라.


이 글은 자국의 그릇된 이념을 거부하고 타국의 약자를 위해 싸우던 불량변호사, 제국주의라는 불의에 맞서다 퇴학당하는 불량학생과 부모와 고국에게 버림받은 불량국민에 관한 이야기이자, 안온한 삶을 스스로 포기한 세 사람의 생에 대한 절절한 헌사이다.


<불량국민>

가네코 후미코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가 있던 조선의 충북 청원으로 이주한다. 이모였으나 눈칫밥 먹는 신세가 편안했을 리 없다.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자라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리고 조선에 온 지도 어언 7년이 흐른 1919년 3월의 어느 날, 조선 사람들의 '만세' 소리가 후미코 집의 담장을 넘어왔다.

"만세! 대한독립 만세!"


후미코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고모의 말에도 만세 소리에 이끌려 나간다. 우두커니 서서 31 만세 운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후미코의 마음에 무언인가가 일렁였다.

"어떻게 총칼 앞에서 아무 두려움 없이 남녀노소가 만세를 부를 수 있지? 나라를 잃은 억울함이란 저런 용기를 주는 것일까? 저게 조선 사람들이 말하는 한의 힘인가?"


밤이 되어도 후미코의 귓전에는 만세소리가 떠나질 않았고, 자신도 만약 나라를 빼앗겼다면 만세를 외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일본이 잘못한 일이고, 조선인들은 용감히 맞선 것이다. 나도 저들과 함께 하고 싶다!"


1922년,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안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마침내 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스무 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내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쓴 조선인 박열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 박....."

어묵가게에서 일하던 후미코는 손님으로 방문한 박열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 어찌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시오?"


<불량학생>

박열은 나이 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처음부터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소년 박열을 거대 권력에 맞서도록 일으킨 건 평소 그가 존경하던 선생님의 고해성사였다.

보통학교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교탁 앞 선생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사죄를 하기 위해 여기 섰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옳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본분을 저버리고, 그동안 잘못된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통치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결코 일본이 우리를 위해서 행한 일이 아닙니다."


소년 박열은 선생님의 용기에 감흥 되어 그의 뒤를 잇는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선생님! 경성에 있는 학교에서 사법과 를 졸업하고, 우리 조선인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돈이 문제구나. 옳거니! 관비유학제도를 이용하자꾸나. 열아! 네가 지금부터 가려는 길은 고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고맙고 부끄럽구나."


그러나 세상은 경성고등 보통학교 사법과 에 합격한 박열을 가만두지 않았다. 남들보다 유난히 뜨거운 심장을 가진 박열이 공부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난세였다.

1919년 3월 1일, 열일곱 살의 박열은 교실 밖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후 2시까지 탑골공원에서 보자고. 난 이 독립선언서를 마저 돌리고 뒤 따라갈 테니 이따 보자고."


3.1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한 학생 박열에게 학교는 퇴학조치를 명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분투하던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학생이 불량학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우선 고향으로 내려가서 앞으로 어찌 살아갈지 생각을 해봐야겠어."

경북 문경으로 내려온 박열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서 모든 걸 박살내야겠다. 기다려라. 일본!"


그해 10월. 도쿄에 도착한 박열의 분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박열 또한 여타의 독립투사처럼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리얼리스트로 살아야 했다.

"엿 사시오! 엿! 맛있는 엿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막노동으로 돈을 벌고, 해가 져도 장사를 하며 우선 생활인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늘 궁핍하고 고단했으나, 박열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용케 버티고 살아남아 스무 살이 된 청년 박열은 친일파를 응징하는 흑도회를 조직한다.


“나는 방법이 정당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권력자 계급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열은 행동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글과 웅변에도 능했다. 어렵게 번 돈으로 잡지를 발행했는데 자신이 직접 쓴 글로 일본의 식민통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신을 개새끼로 비유하며 어떠한 권력에도 결코 굴종하지 않는 기개가 담긴 글을 남겼다. 이 글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글에 반한 많은 이 들 중 후미코도 있었던 것이다.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1922년 2월, 20대의 청춘 박열과 후미코가 드디어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 것이다.

"얼굴에 뭐가 묻어서 쳐다본 것이 아니라 반가워서 바라본 겁니다. 당신이 '개새끼"를 쓴 박열이 맞지요?"

"그렇소만."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연인이자 동지로써 동거를 시작한다.

"우리 두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 평등하다. 한 사람이 부패해져서 권력에 빌붙게 되면 그날로 동거는 끝이다."

"하지만 우리 둘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만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을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앞날을 절반은 예견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조선의 불량학생 박열과 일본의 불량국민 후미코는 친일파를 응징하는 의혈단, 한일연합 단체인 불령사 등을 운영하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결연히 맞선다.

"올해 (1923년) 11월에 황태자가 결혼을 한답니다. 일본의 고위 대신들이 다 모일 겁니다."

"후미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거요. 내가 밀양사람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에 연락을 해 보겠소. 폭탄만 이 두 손에 들어온다면!"

"좋아요! 제국주의에 본때를 보여줍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사는 끝내 수포로 돌아간다. 의열단 단원이기도 했던 김상옥 열사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사건으로 일제의 감시가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감시가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중국이나 조선을 통해서 폭탄을 들여와 반드시 내 손으로 일본의 두목을 날려 버릴 것이다.”


1923년 9월 1일, 박열과 후미코 두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대 사건이 발생한다.

“어? 이게 무슨..... 후미코! 어서 나갑시다. 집이 흔들리고 있소.”

“지진이에요!”

오전 11시 58분, 동경과 인근 지역을 강타하는 강도 7.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단 10분간 이어졌지만, 사망자 수는 무려 10만 명에 이르고 만다.

일본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된 관동 대지진 발생 2시간 후, 계엄령이 선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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