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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둬도, 되잖아.

by 안녕

#1. <문학하는 마음>을 읽었다.

나는 그동안

정해진 삶 속에서

끝없는 탈출을 꿈꾸었다.


데뷔하면

출판하면

등단하면


조건이 걸린

삶의 뒤에는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헌데, 아니었다.


날개 펼치고

세상을 날아간 새에게도

돌아올 둥지가 있듯이


작가에게도

오래도록 기댈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이 있어야 했다.


이른 해방을 꿈꾸던

나의 목표는

어쩌면

이루어지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마음속엔 쓸쓸한

바람이 일었다.



#2. 스트레스에 눌리지 않게

언제부턴가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순간들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원고를 쓰다가

체크리스트에 할 일을 적다가

미루고 미뤄 쌓인

설거지를 하다가

불현듯 솟구치는

짜증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오늘이 그러했다.

분명 쉬고 있는데

머릿속은 분주했다.

해야 할 일이 떠다니는 와중에

세상은 연말을 향해 가고

나 혼자만 숨 가쁘게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

아니 두 잔,

아니 세 잔 정도를

마시고 나서야

가라앉은 통에

매 순간

애써야 하는 날이었다.



#3. 그냥, 그만둬도 되잖아.

"엄마는 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잠을 재우던 유니가 나에게

물었다.


매일 새벽 두 시에 자고도

변함없이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나를 보며

궁금했던 것이다.


"엄마는 할 일이 많거든."


하자, 그럼 학교를 그만 두면 되잖아,

하는데 먹먹함이 밀려왔다.


그만 두면 되잖아,라는 말이

그만둬도 되잖아, 처럼 들려서


하루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저냥, 마냥 쉬고 싶은

마음을

고작 여덟 살 먹은 녀석이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찌르르, 하고 울렸다.


팔베개를 해주면

스르륵, 잠드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나와서도


그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


어둑한 방 안,

스탠드 하나 켜 두고

조용조용한 노래를 흘려보내며

생각한다.


그만둬도 되는 마음으로.

오늘은 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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