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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2. 2022

휴가를 주는 거야, 열심이었던 나에게

찬 바람 불면 다시 만나요.

  그러니까 그날이 특별한 날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평소와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내 몸이 반응했다. 보냉백에 도시락을 넣어 다시 보온 백에 담아 들고 출근하는 그 길에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 나만의 휴게실로 이동하는 와중에 무언가 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평소와 같았지만 평소와 달랐다. 빈 도시락통, 수저통이 서로 맞부딪혀 내는 덜그럭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분명 다 먹었는데, 반찬 하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두 해치웠는데도 무겁게 느껴지는 도시락통을 들고 집 앞으로 바로 가는 버스를 놓칠세라 뛰어가는 상황이 순간까지 모두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은

 설거지통 앞에서 폭발했다.

  아침에 쌓인 설거지 위에 내 도시락통과 딸내미 식판, 물병을 합치니 이미 개수대를 넘어버리고 만 것. 뭐가 맨날 이렇게 많아, 해도 해도 왜 이렇게 끝이 없어, 눌어붙은 밥알 찌꺼기는 왜 이렇게 안 떨어져, 기름기는 몇 번을 해도 지워지지가 않아! 목젖까지 차오른 불만은 자꾸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어 했다. 속시원히 소리 한 번 지르거나 짜증 한 번 내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칫하면 애먼 데 화풀이를 하기 딱 좋았다. 마침내 다리를 붙잡으며 놀아달라는 아이나,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 남편에게 화살을 돌릴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 시작한 일로 가족을 불편하게 하지 말자 다짐한 터. 끓어오르고 있는 짜증을 눌러야만 했다. 이미 한 참 늦은 시간이지만, 요새는 커피 한 잔에 잠 못 드는 날도 많아져 마시면 안 됐지만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타며 누르고 눌렀다. 생각하고 생각했다. 누가 시켰니? 네가 한다면서. 중간에 멈춰도 됐는데 아파서 힘들면 안 해도 됐는데 네가 부득불 하겠다면서. 누굴 탓하니. 누굴.


그날의 설거지는 밤 열 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힘들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버틴 나날이기도 했다. 매 순간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준비한다는 것은 무척 뿌듯한 일이고 1년 가까이 도시락을 싼 덕에 이제 '요리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매일, 매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지난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도시락을 쌀 수 있었던 것은 '목표지향적'인 내 성격 덕분이었다. '도시락'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표가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끝까지 해 내고야 마는 특유의 끈기는 나를 지금까지 끌고 왔지만 그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계란말이, 두부조림, 김치볶음밥, 계란볶음밥, 주먹밥, 그리고 다시 어묵볶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반찬도, 가까워진 통근거리임에도 손에, 등에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다니는 거북이 같은 나도, 모두 다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스스로 한 약속을 깨버리는 사람.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기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그 안에 나를 가두곤 벗어나질 못했다. 설거지가 쌓여도, 때로는 너무 피곤해 일어나지 못한 채 편의점 김밥을 사간 적이 있어도 멈출 수 없었다. 며칠 힘들게 싸다 보면 주말이 돌아왔고, 주말 동안 푹 쉬면 다시금 도시락을 쌀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3월부터 5월까지 두어 달을 열심히, 즐기며, 버텨왔다.


  그런데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는

  일과 중에 찾아왔다.


  그러니까 손으로 꼽으면 세 번 정도 됐던 것 같다. 일을 하는 중에 회의를 하다 순간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 앞에 있던 책상에 잠시 기대 버렸다. 순간 휘청,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무서워졌다. 5년 전. 처음 겪었던 저혈당 쇼크가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뱃속에 딸아이가 있을 때. 장 시간 서있다 그만 주저앉아버렸던 그날의 공포가 갑자기 훅- 들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 아니 세 번까지.




  영양을 챙긴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았다. 탄단지를 챙기려고 했지만 기울어져버린 식단은 충분히 나를 허약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영양사가 정해준 식단만큼의 퀄리티는 안 됐을 테니까. 귀찮을 때면 종종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같은 것들로 때운 적도 많았으니까. 대충 계란 세 알에 소금을 싸가거나 과일 몇 개에 커피 한 잔을 곁들여 먹은 것도 있는 데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으니까.


  이쯤 했으면 잠시 쉬어도 괜찮겠다, 그래, 이 정도면 정말 열심히 했잖아, 새벽 5시에 일어나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출근지에 다니면서도 한 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했잖아, 그러니까 조금 쉬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돼, 네게 너무 엄격하지 마,라고 말하는 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시락은 끝까지 싸야만 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정작 내 마음의 소리는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소리를 집중해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멈춰서는 것이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도시락을 싸며, 글을 쓰며 지난 11개월 넘게 살아온 나에게 처음으로 편안한 휴가를 주는 것일 테니.



  다음 날.

  사내 메신저로 급식을 신청하고, 담당자에게 찾아가 자필로 서명을 했다. 미급식은 5월 31일로 종료하고 6월 2일부터는 급식을 먹겠노라고 몇 번을 다짐하면서.


  문을 닫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했다. 몇 번의 망설임이 있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어쩐지 기다려졌다. 6월부터는 손도,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 기대가 되기까지 했다. 아, 난 정말 많이 쉬고 싶었구나. 잠깐만이라도 멈추고 싶었구나. 다시 급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로 내 쪼개고 쪼개진 일상에 작은 쉴틈을 만들어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이 김에 길고 긴 휴가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아니 두 달. 아니 그 이상이 되더라도 열심이었던 나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주어야겠다고. 그래야, 11개월의 시간을 돌이키며 앞 날을 계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난, 이제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딱 7일 동안의 도시락을 끝으로

  정말 도시락을 멈추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나에게 주는 최초의 휴가를

  아주 달게 받으며

  그동안 못 누린 여유를

  누리려고 한다.


  모든 도시락통을 역시 잠시 수납장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푹- 쉰 후, 찬 바람이 불어오는 9월 혹은 10월 그즈음에

  다시금 시작해보려고 한다.


  지금 도시락을 싸지 않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니까.


  사실 난

  아주 길게 편안히 쉬고 싶으니까.


  그게 지금 내 마음의 소리이니까.

  




불고기, 김치볶음밥은 최고의 메뉴였고
카레는 거의 한 달에 5번 넘게는 쌌던 것 같으며
낙지볶음과, 유부초밥과, 콩나물밥은 잊지 못할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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