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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y 20. 2019

<배심원들> 이 재판 오늘 안에 끝날 수 있을까요?

마음을 움직이는 합리적 의심

배심원들, Juror 8, 2018, 홍승완


영화 <배심원들>은 흔히 생각하는 재판 영화도 범죄 영화도 아닙니다.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영화인데요. 여덟 배심원이 펼치는 밀고 당기는, 단짠단짠 연기에 울다 웃다 가슴 따듯하게 극장문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성, 비법대 출신, 판사 또한 쉽지 않은 결정자다



사법부의 상징인 재판의 권한을 처음으로 일반인들과 함께해야 했던 재판부, 처음으로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 모두가 처음이라 우왕좌왕, 잘해보고 싶었던  그날을 담은 영화입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지만 돈 있는 사람, 법을 아는 사람에게 기울어진 사법 시스템을 비틀며 법 기본 정신을 떠오르게 합니다. 절대 넘볼 수 없던  이미지가 강했던 사법부가 낮은 자를 섬기는 정의의 기본을 생각하는 기회가 됩니다.


대한민국 첫 배심원이 된 소시민 여덟은 떨리는 가슴으로 법원에 왔습니다.  증거, 증언, 자백도 확실한 존속살해 사건. 양형 결정(법원이 형사재판 결과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해 그 형벌의 정도 또는 형별의 양을 결정하는 일)만 남은 사건이지만, 피고인이 갑자기 혐의를 부인하면서 배심원들은 예정에도 없던 유무죄를 다퉈야 합니다.


2008년 첫국민참여재판을 모티브로 삼았다


"재판은 말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거든"


서로의 목적이 난무한 재판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었습니다. 여성이며, 비법대 출신 판사 김준겸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판결은 물론  법원장을 만족시켜 승진도 해야 하며 모두가 원하는 좋은 그림도 만들어야 합니다.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유무죄' 판단만 남았습니다. 원리원칙주의자인 김준겸은 신속하게 재판을 이끌어 가려 합니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뭔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8번 배심원, 왜 그러세요?



둘 중 하나의 답만 허용하는 사회에 반기를 들어보자


"싫어요!"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 맞다 아니면 틀리다, 좋다와 싫다. 이분법 답안을  강요합니다. 그 중간은, 싫다는 대답은 안되는 걸까요?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은 각광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이 왜 이러냐' 핀잔만 들을 뿐입니다.  영화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부조리에 반기를 들며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합니다.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에서 묻힐 뻔한 소수의견을 건드립니다.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는 유죄냐 무죄냐를 써내는 종이에 답을 적지 못합니다. 내가 내린 판단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무거운  책임이 커져 쉽게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판 내내 걸리는 게 많았습니다. 이런 합리적 의심은 마음을 움직이는 의심이 되어 소용돌이칩니다.


배우들의 연기합이 좋았던 영화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누구든 억울하지 않아야 합니다.  법은 사람을 함부로 처벌하지 않기 위해 세워진 약속입니다. 하지만 때론 돈, 권력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는 게 법입니다. 영화는 사회에서 점점 잊히고 있는 기본을  환기해 줍니다.


 의심이 들 때면 행동해야 한다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은 우여곡절 끝에 최종 형을 집행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의심이 들 때면 피고 입장에서 무죄 가능성을 추정하라".  처음 마음가짐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초심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을 붙들어 주는 단어 '처음처럼'을 상기해 봅시다.  미로도 길입니다. 어지럽고 보이지 않던 길이 다수의 힘으로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배심원들>은 뿌리 깊은 사회 속 관례에 도전하는 영화다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가장 의미 있는 국민참여재판으로 기록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했습니다. 박형식 배우가 입대전 스크린에 도전한 작품입니다. 문소리, 권해효,백수장, 윤경호, 서현우, 김홍파, 서정연, 김미경, 이영진, 조한철, 조수향 등 베태랑 배우들과의 맛깔스런 연기로 풍부한 살을 더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빛나는  (제가 좋아하는) 김선영 배우의 '청소 요정' 때문에  행복했던 러닝타임이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다른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법을 잘 몰라도 상관없고, 실화의 진심과 배우들의 연기궁합이 좋습니다.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 강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의미와 재미, 감동을 모두 담아 가시길요.



평점: ★★★★

한 줄 평:  마음을 움직이는 리적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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