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에 어울리는 재료 모으기

보고 씁니다.

by 장혜령



이제 습관이 돼서 수첩 없이는 영화 못 보겠더라..


책과 영화는 가보지 않은 길,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여행하는 즐거움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 보고 듣고 발견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애석한 일이다. 물 흐르듯이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기록한다면 당신의 인생에 또 다른 흔적이다. 인생의 나이테가 차곡차곡 그려진다.


2005 스탠퍼트대학 졸업 축사에 스티브 잡스는 점. 선. 면의 연결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점(경험)은 미래와 연결된다."시작은 작은 점이었지만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작문을 요리에 비유해보자.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독서, 영화 시장에서 가져올 수 있다. 쓰기는 읽기 욕구를 부른다. 일단 점을 토해냈다면 반은 성공했다. 다듬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어디서나 메모를 하면 좋겠다. 메모란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재료다. 매끄럽지 않더라고 문장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재미로 썼는데 따라오는 부수입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기록하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훗날 기억에서 흐릿해졌을 때 흔적으로 더듬어 볼 수 있다. 내가 컴컴한 영화관에서 적고 또 적어나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삐뚤빼뚤, 적은 글자 위에 덧칠하는 일은 기본, 손끝에 볼펜 똥 묻혀가며 쓰다 보면 연료가 된다. 영화를 보며 들었던 감정, 대사, 메시지, 미장센, OST, 배우 연기, 카메라 워크, 장르 분석, CG, 장단점, 비슷한 영화(한핏줄 영화) 등 인상적인 점을 메모한다. 형식은 없다. 본인의 느낌 위주로 써보자. 자신의 과점에 따라 같은 영화도 다르게 보인다. 감독의 전작품과 비교, 원작 소설과의 비교도 좋다. 아니면 영화의 캐릭터에게 말을 걸어보는 글은 어떨까? 가상의 인터뷰를 한다거나, 편지를 쓴 글도 참신하다. 만화로 그려봐도 참신한 글이 된다.


글쓰기 재료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좋다. 크기와 깊이에 상관없이 모아 본다. 재료를 이리저리 맞추고 연결하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 일단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메모해보자. 수첩, 영수증, 일기장, 핸드폰 어플, 심지어 카페 냅킨, 손등 까지. 별별 곳에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보는 거다. 기록하면 언젠가는 써먹는다. 우리 뇌는 단순해서 잊어버리지 않아야지 하다가도 순식간에 휘발되어 희미해져 버린다. 없어지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 당신의 기억력을 믿지 마라, 되도록 손끝을 믿도록 해보자.


영화를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많이 봤다. 얼마 전 초등학교 일기장을 봤는데 세상에, 초2에 <사탄의 인형>을 봤더라. 더 예전부터 봤었을지 누가 알겠나.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고 뭔가를 써 본 것은 5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일기장에 간단한 느낌과 재미있던 점, 아쉬운 점을 나열해 봤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영화 후기를 작성해 봤는데 나름 반응이 있었다. 나와 같은 영화를 보고 검색엔진으로 타고 온 네티즌과 이웃이 되기도 했다. 영화 이야기를 댓글로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 영화 후기를 쓴 글을 응모했는데 상품을 다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글로 썼을 뿐인데 소소한 커피 기프티콘부터, 호텔 숙박권, (어디서도 살 수 없는) 오리지널 굿즈, 감독과 배우 사인 포스터 등 쏠쏠한 재미를 붙여갔다.



3번의 낙방, 3번의 연임 아트나이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영화사, 홍보사에서 시사 초대를 해주거나, 리뷰 원고를 청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좀 더 큰 물에서 놀아볼까. 생각 끝에 동경해 왔던 영화 서포터즈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해외 영화 수입 및 배급하는 '엣나인', 예술독립영화전용관 '아트나인'의 서포터즈인 '아트나이너'를 3번의 낙방 끝에 붙었다. 7기부터 9기까지 총 1년 반, 6개월씩 3 기수를 활동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한다. 아트나이너는 영화를 좋아하고 글쓰기까지 두루 원한다면 이만한 활동도 없다. 대신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 독립, 다양성 영화를 보고 한 달에 한 편 이상 글을 쓰면 된다.


장점은 매월 지급되는 초대권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씨네필로서 자부심이 한껏 고양되며, 아트나인의 시사, VIP행사, GV에 초대되거나 취재할 수 있다. 대부분 영화 리뷰를 카페에 송고하고, 매월 발행되는 지면 '페이퍼 나인'에 기고할 수 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일, 온라인을 떠나 예술극장에 깔리는 소식지는 뿌듯함을 넘어 자존감을 높여준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누구나 빛을 발한다. 영화를 좋아했고, 덮어 놓고 써보니 아트나이너가 되었다. 7기 활동을 인정받아 최우수 아트나이너로 표창도 받고, 8기를 연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 열심히 반년을 보고 썼더니, 한 기수 연임할 수 있었다. 1년 반은 이수역 근처에서 동고동락하며 엉덩이가 닳도록 극장에 앉아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통신원 발대식에서

올해는 작년 11월부터 영화진흥위원회 기자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 해 동안 영화에 파묻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영화로운 해가 아닐 수 없다. 영진위에서는 권역별로 10명의 기자를 뽑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화 소식과 영진위 소식을 취재했다. 나는 경기 대표로 활동했고, 부지런히 독립영화관 설립, 취약 부분 해결을 위한 촉구, 영진위의 행사, GV 등을 다녔다. 한국영화 100년의 해라 국내 영화제의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취재를 위해 난생처음으로 전주국제영화제도 다녀왔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국내 3대 영화제 취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말 열심히 했을 뿐인데 우수기자 표창도 받았다. 좋아서 하는 일은 왕도가 없고, 자기 또한 만족스럽다. 절대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즐기면서 하는 일은 의외의 성과를 내기도 하고 발판 삼아 다른 도전으로 나아갈 재료가 된다고 경험으로 배웠다.


영화 리뷰 어떻게 쓸까?
1년 반의 아트나이너 활동으로 영화 리뷰 쓰기 근육이 생겼다

나도 쉬운 건 아니다. 언제나 컴퓨터의 흰 바탕에 깜박이는 커셔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멍하다. 영화를 본 대로 느끼면 되는데 이 감상을 어떻게 활자로 만들어 낼지는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고군분투 중이다. 영화는 재미있는데 뭘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영화가 있다. 반면 영화는 재미없는데, 감독이 숨겨 놓은 뜻을 찾거나, 핫이슈와 연계해 써보면 어떨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떤 영화는 최근 읽은 책과 연결해봐도 좋을 글감이 떠오르는 영화도 있다.


개봉 전 시사를 통해 보고 남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일이 꽤나 즐겁다. 흥행을 점쳐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 기준은 미약하고 어쩌면 취향 차이일 수도 있다.


영화의 관객층을 고려해 보기도 한다. 전문용어로 타깃층이라고 한다. 영화는 개봉 전에 타깃층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홍보를 진행한다. 내가 별로였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가 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중립적인 입장으로 쓰고자 한다.


하지만 관람료를 내고 본 영화 중에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영화가 가끔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럴 때는 이성을 잃고 분노의 타자질을 하기도 한다. 나만 죽을 수는 없을 때, 나는 고통받았지만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김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도 있다. 때문에 관객에게 되도록 가성비 높은 선택을 도와주는 도우미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티겟 값의 정의를 위하여..

월간 소식지 페이퍼나인 취재글

영화와 글쓰기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담론이 생기면 동의하는 자, 반대하는 자 또 하나의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고, 생각을 확장하고 다른 영화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원작이 있다면 비교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활자를 읽어가며 상상하던 이미지가 스크린에서 구현되었을 때 이질감과 행복감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시작은 미약했다. 순전히 재미로 소소하게 블로그에 영화를 본 후기를 적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해시 테크나 검색어로 하나둘씩 유입이 되기 시작했다. 반복해 이야기 하지만 개인 SNS에 꾸준히 한 분야를 써 놓으면 검색해서 역으로 의뢰가 들어온다. 언젠가 당신을 알아봐 주는 이가 나타난다. 부차적인 수입도 짭짤하다는 것, 절대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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