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가량의 월급이 만드는 다음한달에 대한 걱정을 떠안는다. 전달도 별다를건 없었으니 걱정은 항상 이월된다. 걱정에도 복리가 적용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곱하기도 부담스러운데 제곱이라니?
6천원짜리 스트로베리 초콜릿 프라페를 마셔야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나다. 사람은 스스로 지불한 비용보다 더 큰 가치를 가져오는 것에 기꺼이 지불한다. 한낱음료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 이 프라페는 나에게 어느정도의 가치였을까. 겨우 프라페에 든 설탕따위는 의식주를 보살피는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겨우 프라페에든 설탕 정도로 사라질 불안이었다. 겨우 프라페에든 설탕 정도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정말 쓸모가 없을까?
불안은 질긴고무풍선같아서 바람을 불면 끊임없이 커진다. 한정된 마음의 공간에서 나는 항상 부피에 압도된다. 내가 부는 바람을 스스로 멈추지 못할 때도 있고 누가 크게 불어다 던져놓을 때도 있다.
다행히도 그것은 끝내 터진다. 한정된 공간에 여유가 생긴다. 가슴이 가볍다.
그러나 어느새 찾아오고, 예고없이 터지는 풍선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궁금해한다.
두려움에 떠는 우리는 알까?
우리를 위해 항상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러진 손톱이나 날카로운 지퍼 같은 것들은 지금의 자신도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