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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찬수 Apr 21. 2023

마음과 방의 동기화

 고민이 있거나 기분이 침체되어 여유가 없거나 불안하고 예민할 때면 어김없이 내 주변은 어질러져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느끼는 마음의 깊이와 어질러짐의 정도는 거의 비례하곤 했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말라비틀어진 티백이 든 찻잔이 있거나 뒤적거리기만 했던 몇 권의 책들, 바닥에 벗어놓은 양말 같은 게 뒹굴거린다면 그리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찻잔 대신 맥주캔이나 온 더록스잔이 있는 경우, 그 옆에 과자나 초콜릿 껍데기가 쌓여있는 경우, 그 너머로 포장이사를 부른 듯 가구 위를 덮고 있는 내 옷들이 잔뜩 보인다면 아마 십중팔구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을 것이고 쓰레기 통에는 영수증이 구거 져 담긴 배달음식 용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1인가구의 한계로 미처 채우지 못한 2L짜리 음식물쓰레기봉투가 냄새를 풍기고 있을 것이다. 

 만성적인 내 완벽주의가 빛을 발해 스스로를 어둠으로 내몰 때가 그랬고 우울이나 공황발작이 일정기간 지속되었을 때도 그랬다. 삶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도 그랬고 맹목적으로 살아갈 때도 그랬다. 나의 거주공간이 망가져가는 건 바쁜 삶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다는 소리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점점 확장된다는 것이다. 나의 책상에서 방으로,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대문밖으로. 어질러진 마음을 지닌 채 대문밖을 나서면 나는 그 폭탄을 마구 던지곤 했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핑계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에게. 차마 마음이 약해 던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시한폭탄은 결국 내 안에서 터지곤 했다. 너덜너덜 해진 채 집으로 돌아오면 확장되었던 순서의 역순으로 혼돈들이 나를 반겼다. 


 분명한 것은 내 집에 있는 동안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는 모든 것들의 질서는 곧 내 마음의 형상이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과 내 공간이 동기화가 되어있다면 마음에서 방으로 일방통행길이 아니라면 정리로써 마음의 혼돈을 잠재울 수 도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평소시간 보다 늦게 눈을 떴다. ‘아 지금 책상에 앉으면 30분밖에 시간이 없잖아’ 하고 무의식이 나를 통제했다. ‘그러니 그냥 자자. 요즘 열심히 살잖아. 1시간 더 자고 개운한 마음으로 출근하자’. 계속 이어졌다. 전형적인 완벽주의의 폐단이다. 스스로 계획한 것에서 조금만 틀어지면 다 놓아버리려 하는 마음. 내 안의 완벽주의 감지기가 일단 책상에 앉으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했다. 글을 안 써도 된다. 일찍 깨어있는 것만 하자. 그랬더니 일어나는 것이 조금 쉬워졌고 문을 열고 나왔다. 싱크대에 이틀정도 쌓인 설거지 거리가 보였고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버렸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그릇이나 씻어놓자고 생각했다.

 단 10여분을 사이에 두고 그릇을 씻으며 변화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네?’ ‘설거지를 끝내고도 30분 정도 여유가 있잖아?’ ‘그럼 글을 한 페이지 쓰고 출근준비를 할 수 있겠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는데도 정신없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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