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테가 마시고 싶다. 아이스로. 마시자. 터벅터벅.’
문제는 이 생각이 이 주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고 카페를 바꿔가며 여러 잔 마셨지만 도통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맛이 톡 쏘는 것도 우유의 비중이 높은 것도 디카페인도 모두 마셨지만 이 카페라테 기생수는 도통 만족하지 않는다. 내 돈과 커피를 동시에 먹어치우면서도 계속 시끄럽게 군다.
나는 종종 이렇게 특정 기생수에 뇌가 지배되곤 한다. 음식 쪽이 가장 쉽고 그러니 빈도가 잦다. 최근엔 짧게 순댓국기생수에 지배된 적이 있다. 1년 전즈음엔 돈가스기생수도 있는데 꽤나 지독한 놈이어서 일주일 가까이 하루 두 끼는 무조건 돈가스어야 했다. 뭐 비용이랑 품이 드는 것에 비하면 숙주를 그리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먹고 마실 때는 매번 만족스럽긴 하다.
한 가지에 꽂히는 일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근 3년간을 돌아보면 이렇게 꽤나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간격이 타이트해졌다. 단지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떤 환경적 변화가 불러온 결핍 때문에 그것을 보상충족시키려는 행동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객관적인 확인은 좀 쉽지 않을 것 같다. 근 3년 중 최근 2년은 우울증으로 보내고 있던 시간이라 일상에서 힘듦과 고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불안한 환경에 처하거나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을 때면 가장 먼저 음식으로 손이 갔고 성인이 된 후에는 거기에 술이 추가되었다. 다양한 음식에 자발적으로 노출된 탓에 기쁘게도 음식의 맛과 조화가 주는 행복을 언제든지 골라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근 2년처럼 일상의 날씨가 항상 먹구름일 때는 고삐가 풀려 건강을 망치는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내가 ‘먹고 마실 때는 매번 만족스럽지만’ 기생수라는 표현을 빌어 일종의 분리를 해놓은 이유는 그 말하자면 게걸스러운 행위의 끝에 남는 것이 항상 죽 쒀서 개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내 입에 사는 기생수는 나를 조종해 음식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찌꺼기는 항상 내 몫인 것이다.
힘든 시기 이런 기생수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그 시기를 버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생각, 음식생각이 자동으로 파도치는 것이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 주긴 했으나 이 방법을 평생 채택하기에는 뒤탈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