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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빈 Oct 27. 2024

약속 없는 토요일 오후엔 전시를

카일리 매닝 <황해> 관람 후기

오랜만에 아무 약속 없는 주말-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있는 자유를 맞이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햇살 좋은 오후 따릉이를 타고 동네(마곡동)에 위치한 미술관 <스페이스 K>으로 향했다.


미술관에서는 올해 11월까지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카일리 매닝'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광활한 자연 풍경 속 인물을 등장시켜 추상과 구상이 혼재된 화면을 구성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큰 <<황해(Yellow Sea)>>에 주목하고, '넘치는 잔해와 소음, 흔적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 무엇이 걸러지고 농축되는가?"에 대한 회화적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전시장 가운데 펼쳐진 파도. 그 위엔 닻의 모양으로 된 구조물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얇은 실크에 그려진 7미터 크기의 대형 회화 3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휘날리는 사이를 지나가면 마치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을 고정하고 있는 구조물이 닻의 형태로 천장에 표현된 것이 흥미로웠다. 


전시 서문에 읽은 질문이 ('넘치는 잔해와 소음, 흔적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 무엇이 걸러지고 농출되는가?')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올해 초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회사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과 조직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직원들이 상처를 입고 떠나기도 했고, 나 또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긴장되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이 삶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고 싶어 저 멀리 아프리카 봉사를 다녀오기도 했고,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퇴사를 결심했다. 


이 모든 격변의 시간이 지난 뒤 나에겐 무엇이 남았는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마치 천장에 고정된 닻처럼 나에겐 나를 지탱해 주는 신앙과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흔들리고 넘어져도 중심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파도와 같은 시간 덕분에 내게 중요치 않은 가치는 걸러지고, 진정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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