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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에세이#2

by 핸내 Mar 14. 2025

  이 글은 어린 나에게 전하는 위로의 글이자, 유년기에 고착 되어있는 어른들을 위한 글이다.


  유년기* 내게 샤워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끼얹기만 하면, 이내 개운한 상태로 잠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티비 앞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까지 가는 게 난관이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미루다가 꾸역꾸역 화장실로 향하던 무거운 눈꺼풀과 몸을 기억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안 잡히니 부모님은 걱정 어린 마음에 자주 잔소리를 내뱉었다.


  하루는 정말 피곤했는지 화장실 변기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샤워할 의지가 있던 건지, 성화에 못 이겨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히 기억하는 한 가지는 졸음 사이로 ‘샤워기에 목을 감으면 어떨까?’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밖에 안 된 나이에, 삶이(아니, 샤워가) 너무 고달팠나 보다. 씻기를 미루고 미루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고, 밤은 깊어 졸음이 쏟아졌다. 아마 그때의 나는 씻는다고 떵떵거리며 들어갔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밤, 겨우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잠을 청했다.


  샤워에 관한 일화 중 이 사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6살 아이가 발가벗긴 채로 신발장 앞에서 울고 있다. 도망 다니다가, 겨우 잡혀 화장실로 들어가기 직전이다. 아이는 투덜거리며 끝까지 반항했다. 결국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하고 효자손을 들었다. 이후에 샤워를 했는지, 부모가 나를 어떻게 다독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무진장 서럽게 울던 그 감정만이 아른하게 남아있다. 어른이 된 후, 여러 차례 심리 상담을 받을 때마다, 그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종종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이모, 삼촌 엄마가 다 키웠어.”, “집에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도 못 갔어.” 그 흔한 70년대생 K-장녀*로서 동생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엄마. 원가정을 벗어난 후에는 시부모님을 뒷바라지하는 착한 며느리의 삶이 이어졌다.


  엄마는 친할머니께 서운한 일이 있으면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아빠에게 한탄했다. 반복되는 한탄이 그저 진부하고 시끄럽게 느껴졌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들을 때가 많았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의 짜증스런 말투에 진절머리 난 사람만 있었을 뿐. 잠깐의 다독임과 그의 노고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면 될걸, 안타깝게도 우리는 공감적 말하기를 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배우고 난 후, 그제야 엄마의 한탄이 의미 있는 말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는 내 안에서 엄마의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를 새롭게 이해하고,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삶은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누구보다 가부장제 안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낸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짤막히 그려보곤, ‘엄마는 나를 서툴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라는 허무한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들을 귀가 되어 주기로 한다. 이제라도 엄마의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건 기쁜 일이었다. 다만, 엄마의 그늘에 가려 내 안에 작은 나는 점차 잊혀져 갔다. 유년기 ‘나’ 이전에 엄마의 삶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를 탓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신발장 앞에서 목욕하기 싫다고 서럽게 울던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아이를 보듬는 일도 이제 부모가 아닌, 내 몫이 되었다.


  계속되는 유년기, 어린 나를 위로한 건, 다름 아닌 27살의 나였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한 직후, 몸과 마음이 무기력했고, 씻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내가 ADHD*가 라는 걸 알게 됐다. 명확한 진단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날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부단히 애쓴 어린 나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게을러서 혼난 게 아니야. 단지 네가 남들보다 일상적인 일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더 오래 걸리는 사람이래. 연습하면 된대.’


  유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훌훌 털어내지 못한 기억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언제 불쑥 올라올지 모른다. 주 양육자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애정과 의존적 욕구*는 친밀한 관계에서 스멀스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글을 쓰며, 오래도록 흐릿하게 머물던 내 안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글 쓰는 행위는 고통스러운 일이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간 글을 쓰며 느낀 고통은 마감의 고통이었지, 글쓰기의 고통은 아니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과거의 상처와 은닉, 절망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고착된 유년을 내 삶 전면에 끄집어 내보고자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겠다. 답이 보이지 않는 어떤 문제를 푸는 힌트가 될 것이다. 막힌 부분을 뚫고 피를 흐르게 하는, 혈침을 놓는 일이 될 것이다. 유년기를 위로하는 일은 평생토록 이어질 것이다.



* 만 5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나이

* ‘Korean 장녀’의 줄임말, 한국 사회에서 흔히 기대되는 맏딸의 역할과 책임을 떠안은 사람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동기에 주로 나타나는 장애로,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나를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 (출처: 대화의 희열3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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