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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da Dec 22. 2021

<디어 에반 핸슨> 남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이야기

영화 <Dear evan Hansen> Review  

**스포주의**


올해 초부터 푹 빠져버린 뮤지컬.

한번쯤 뮤지컬 보고싶다고 생각했다가 영화가 개봉해서 너무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렇지만 일정이 안맞아 결국 거의 막차를 타버렸다.



#사람들의 혹평

지루하다.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자칫 졸 수도 있는 그런 영화.

불편하다.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힘들고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공감이 되지 않아 힘들었던 영화.



개인적으로 너무 만족스럽게 봤지만, 사람들의 이런 혹평도 이해됐다.
영화 모든 캐릭터들의 사정을 이해하기엔 우린 모두 각자의 사정만을 겪어봤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다.


나 또한 맨 처음 디어에반핸슨에 대해 몰랐고, 애정도 없었다면 이정도의 감상을 하기는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스토리 개연성이 깨지면 꽤나 공감성수치를 잘 느끼는 편이라..

다만 뮤지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고 배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상태에서 캐릭터의 관계를 더 깊게 보고 또 대사, 가사를 느끼니 '에반 핸슨'이라는 캐릭터와 그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자아실현'이라는 전체 극의 주제 중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여러 지점들이 보여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나에게 와닿은 점에 대해 두 가지 정도 풀어보려 한다.




Point1. '나'는 누구인가?

왜 에반은 그런 거짓말을 시작했고, 또 멈출 수가 없었을까?



에반은 사회불안장애에 시달리는 학생이다. 친구도 없고 이혼 후 소통없이 떨어져 사는 아버지와 혼자 에반을 키우느라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가족, 친구 어느 누구와도 깊은 커넥션 없이 고립된 존재이다. 그렇기에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동시에 또 점점 스스로를 작게 느낀다.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 하지만 난 안될거야. 난 에반핸슨이니까' 이런 모순적인 감정 속에 갇혀 사는 와중에 또 다른 에반 핸슨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바로 자살한 코너의 유일한 진정한 친구, 에반 핸슨'

이라는 거짓말로.


에반에게 억지로 깁스에 사인을 해버리는 코너

처음 거짓말이 코너의 엄마에 대한 동정심으로 시작한 하얀 거짓말이었다면 점점 그 정도가 도를 넘으면서 찌질한 에반이 아닌 다른 에반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선악과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자살한 코너를 기리는 용기있는 친구이자

에반이 좋아하는 사람인 코너의 여동생 조이에게 멋진 남자친구,

코너의 부모님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아들같은 든든한 코너의 친구로 보여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


특히나 영화 마지막에 보여지는 것처럼 한번 삶의 끝을 결심했던 에반 핸슨이었기에 이 달콤함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을 거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반은 결국 마지막에 거짓말을 실토하고 '진짜 에반 핸슨'을 밝힘으로써 자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뭐든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던 과거와 달리 어떠한 형태든 스스로를 표현하고 움직이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나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우 힘들지만 나약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떳떳해지기 위해 진실을 밝힌다는 결정이 앞으로의 에반이 상처를 극복하고 더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한 행동이 심하다, 심하지 않다 / 옳다, 그르다를 말하고 싶은건 아니다. 물론 그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상처가 되었을거다. 이유가 어쨌든 큰 잘못이다. 하지만 그러한 에반의 행동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 집중해보자는거다. 어쨌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살아가면서 실수를 안하고 민폐를 안끼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삶의 과정에서 그런 실수, 민폐를 바탕으로 나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더 나아지는 나를 위해 다시 움직이는 과정에서 단단한 사람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투명하게 세상에 드러낸 에반은 이제 아쉬울게 없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하고싶은 것을 한다. 학교에서도 눈치보지 않고 생활하며 코너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는 에반. 난 가장 적절했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Dear Even Hansen, Just Be yourself




Point2.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최근 자주 함께하는 뮤지컬 동아리 사람들과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내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사랑은 짜릿한 것인가?

설레는 것?

스킨십을 하는 것?

계속 함께하고 싶은 것?


다 맞긴한데.. 물론 각자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라 정답은 없지만 그게 정말 내가 생각하는 본질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서 알듯말듯한 감정에 대해 정의내리기를 포기했다.

그러다 <Dear Evan Hansen>을 보고 여러모로 생각하다보니 '아, 이게 사랑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원하는 사랑인 것 같기도 하다.


서로를 알아봐주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잔잔해질 수 있는 것


우리는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여러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연인관계에서만 국한된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인간의 스킨십이든 다른 것들은 이 이전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인이 꼭 이성이거나, 사람이라거나 등에 얽매여 있지도 않다. 다만 나 이외의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에반과 에반 엄마


영화 초반, 에반과 코너의 유일한 연결점인 가족들은 서로의 집안에서 대화를 하면서도 헛도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서로가 항상 불안해보인다.

표면적인 갈등만 보자면 에반의 정신불안장애, 코너의 일탈이 각 집안의 큰 이슈고 이를 중심으로 스토리는 전개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깊은 대화 없이 단절되어있던 에반 모자, 코너를 중심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한 코너 아빠, 조이 그리고 무작정 나아질거라고 낙관하기만 한 코너 엄마가 있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관계의 끝에서 에반과 코너의 자살시도가 벌어졌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거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 발짝 먼저 다가가는 것.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코너의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이야기하는 에반


코너와 비슷하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외롭고 쓸쓸한 세상의 끝을 경험해 본 에반은 추모사에서 보여주기 식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찌질이든 잘나보이는 친구들이든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주변 모두가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그런 고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에반의 추모사를 들은 코너의 가족, 학교 친구들은 각자의 상황에 빗대어 공감하고 또 코너의 일탈에만 가려 그의 어려움을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Dear Evan Hansen> 넘버 중 You will be found. 가사가 정말 주옥같다.



사실은 모두 스스로 큰 장점들이 있고 존재만으로 멋있는 사람들인데 그걸 간과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 때,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 나의 이상과 현실에 큰 차이가 있을 때 이 정도의 차이가 사람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끄는 것 같다.


사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에 이런 방황을 겪었던, 겪고 있는 사람이 몇몇 있었는데 조금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어느정도 그들의 마음의 짐이 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뭐든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고민을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많은 위로가 되더라.


나는 그 과정에서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 감정을 정리하고 극복할 수 있었는데 내 고민이 정리되고 나서야 혹시 나도 내 주변 사람들을 못 알아봐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현생에서 고민이 많을 요즘 시대다보니 더더욱 걱정은 된다.
다만 걱정과는 별개로 또 나의 현생도 있기 때문에 결국 아직도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다들 이렇듯 모두가 주변을 다 돌보기에는 여러 관계를 쌓고 있기 때문에 나를 온전히 알아봐주고 받아들여줄 소수의 인연을 계속해서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반려자을 찾고 또 여러 관계를 맺는데 그게 또 서로를 알아봐주지 못하고 또 안아주지 못하면 갈등이 일어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또 이를 알아봐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이는 가족일 수도, 연인일 수도, 사제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받아들여짐의 끝은 완전한 안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리뷰를 마치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게 영화 리뷰다보니ㅎㅎ

이 글은 해석보다는 개인적인 감상평이며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삭임 정도로 봐주길 바란다.

평들을 보면 워낙 이 영화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관점을 본 사람이 많다보니

한번쯤 내 시선에서 본 <Dear Evan Hansen>을 이렇다라는 이야기를 끄적이고 싶었다.

*이 시선으로 한번 더 <Dear Evan Hansen>의 넘버들을 들어봐줬으면 좋겠다.

(가사가 하나하나 각 캐릭터의 상황, 심정을 잘 표현한 점이 주옥같다..)


나는 <Dear Evan Hansen>을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그 고독과 불안이 옆에서 행복하게만 보이는 그 친구에게도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서로에게 한번 말을 건네보고 보듬어주며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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