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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Sep 16. 2024

추석행 기차를 두 번이나 놓치다

막차에서 봤던 그들

한국에 돌아온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엄두도 나지 않았던 어른 셋 아기 셋의 한국행 비행도 어찌어찌 마쳤고, 광교에 새 직장도 구했고 10월 말에 들어갈 월세집도 얻었다. 다만 일이 9월부터라 부득이하게 아내와 세 아이들을 울산 처갓집에 두고 나 혼자 올라와 한 달 반 홀아비 생활을 해야 했다.


매주 주말 내려갔다 올라오지만 이번 주는 특별히 추석 주간이라 안 그래도 없는 SRT 하행선 티켓 쟁취를 위해 예매전쟁에 참전해야 했고 운이 좋게도 동탄-울산 왕복티켓을 얻어냈다. 그것도 가장 치열했던 금요일 내려가 수요일에 올라오는 프라임 티켓으로. 명절 티켓팅 성공은 처음이다.


그런데, 그 기차를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동탄역까지 30여분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당연히 평소처럼 택시가 잡힐 거라 생각했던 내 불찰이었다. 어떤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곧 깨닫고 가장 근처에 있는 쏘카지점으로 냅다 달렸다. 택시 기사님도 울고 가실 레이서모드로 동탄역에 도착했지만 결국 눈앞에서 기차를 놓쳐버렸다.


보통 기차를 놓치면 뭐 다음 기차 타면 되지..인데 이건 다음날까지 올매진인 추석 하행선이었다. 기차를 놓쳤다고 아내에게 전화하니 자기 전에 아빠 온다고 오매불망 기다리단 루하가 눈물을 애써 참았다고 한다. 하.. 시간이 넉넉하다 생각해 집에서 닭 한 마리 칼국수 여유롭게 끓여 먹고 왔던 과거의 나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긴 일렀다. 앱으로는 전좌석 매진이지만 창구에 가니 막차인 9시 17분 열차 입석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열차를 타면 자정 좀 넘어 도착하지만 그래도 루하가 일어나면 아빠를 볼 수 있으니 그 열차표라도 끊었다. 오늘 내로 갈 수 있는 게 어딘가.


열차 탑승구에서 2층 위에 있는 대합실에서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며 기다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천천히 탑승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탑승층에 도착하니 열차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뭐지? 하는 순간 열차가 앞으로 움직여 떠나는 것이었다. 뭐지???? 순간 상황파악이 안 되어 시간을 보니 9시 17분이다. 어 나 늦은 거네? 나 막차 놓친 거네???


아니 어떻게 바로 위에서 두 시간 반을 기다리고 열차를 놓치지? 분명 십 분 전에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잘못 봤었나? 내일까지 매진인데 어떡하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두 대를 연달아 놓치다니 드디어 미친 건가? 뭔가에 홀린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내가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일 테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동탄-울산 열차는 막차였는데 대전을 경유해서 가는 열차는 10시 넘어 막차가 하나 남았었다. 광클 신공으로 진짜 막차를 겨우 잡아타고 내려왔다.


내가 정말 정신이 없었다고 느꼈던 것이 대전서 경유해야 했던 열차 좌석이 3호차 11A이었는데 정작 탑승해 보니 11호차에 탑승을 한 것이다. 허허 진짜 미쳤구나 싶었다.


3호차까지 열차에 열차를 넘어 이동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봤다. 그중에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탄 동남아 어머니였다. 세아 노아만 한 아기를 안고, 옆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에어컨도 안 나오는 입석자리에서 힘겹게 서 있는 그녀를 힐끗 보고 지나쳤지만 시원한 특실 자리에 앉아있는 나 자신과 너무 대비되어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자리에 앉으라고 할까 하다가 초등생 아들자리는 없는데 싶어 계속 망설이다가 울산에 도착했다.


열차를 두 번 놓친 이불킥 사건보다 막판에 봤던 그 어머니의 힘든 눈동자가 이 밤중에 또 생각나 참회적 성격의 글을 끄적여본다. 다음에는 어머니와 아기라도 앉히리라 다짐하며.


내가 탄 건 설국열차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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